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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Nov 01. 2023

15. 산 <비밀과 죽음>

written by. DKS

깊은 산 외진 응달 짝, 눈 덮인 산속에 홀로 덩그러니 누워있는 사람아, 멀고 먼 길 떠나올 때 꽃 같은 청춘 쉬 간다고 했더니, 그리운 님 남겨두고 홀로 떠나올 줄이야, 해지고 날 저물고 어둠이 찾아오면, 그리운 님 생각에 하염없는 눈물은 어찌 그리 많은지, 이제나저제나 님 생각하면, 마음속 뉘우침은 어찌 그리 많은지, 비록 사랑하는 님을 남겨두고 여기에 홀로 누워있지만, 님 향해 뿌려지는 눈물은 과거 생전 설움의 눈물이요, 후회의 눈물일진대 님은 이내 맘 잊지 말고 꼭 기억이나 해주시구려.



우리 동네 어귀엔 고갯길이 있다. 그 꼬부랑거리는 고개를 한참 돌아 올라가면 고갯마루가 보인다. 거기서 오른쪽 길로 조금만 산속으로 들어가면 예전에 사용했던 공동묘지가 있다. 어릴 땐 상여가 고갯길을 돌아 공동묘지로 제법 많이 올라갔다. 그때마다 상여를 따라다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사용을 안 해서 남아있는 묘지엔 풀이 무성하다. 일부는 자손들이 이장을 해가고 그렇지 않은 묘들은 널브러진 채 주인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고갯마루엔, '한' 많은, 영혼들이 도깨비불처럼 떠돌고 있다. 그들 영혼이 세상을 떠나올 때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게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간이 갑자기 다가오는 죽음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어찌 죽음 후의 일을 미리 예견해서 수습할 수 있겠는가. 방황하는 그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죽음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처 다하지 못하고 남겨둔 말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사람들이 다 그렇진 않겠지만,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 내게 산에 나물을 뜯으러 가자고 보채셨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마지못해 어머니 손에 이끌려 산에 올랐다. 정부미 포대에 어깨끈을 맨 빈 자루를 메고 어머니 뒤를 따랐다. 산은 험했지만, 어머니는 능숙하게 산등성을 타고 오르내리셨다. 젊은 나는 어머니를 따라잡기가 너무 힘들었다. 어머니는 가뿐하게 한발 앞서서 산에 올라 나를 기다리셨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렇게 한참 어머니를 따라 정신없이 가다 보니 우리는 점점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머니랑 오르는 산은 전에 나무를 하거나 등산할 때 와봤던 산이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깊은 골짜기에는 처음으로 들어와 봤다. 웬만하면 이렇게 깊은 골짜기엔, 잘 들어서질 않는다. 힘도 들지만 길을 잃어버리면 집을 찾기 힘들어서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머니가 먼저 산에 가자고 말씀하시면서 반강제적으로 나를 데리고 오셨다. 산나물은 이른 봄부터 음력 5월 5일 단오절까지만 뜯는다. 단오가 지나면, 산나물이 억세져서 상품 가치가 없다. 그래서 단오절 전까지만 산에 올라 나물을 뜯는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어머니 뒤를 따라 겨우 어머니가 가고자 했던 목적지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해마다 봄이면 나물을 뜯었다. 그런 세월을 허수히 볼 수 없었다. 도착한 골짜기엔 미나리 향이 강하게 났다. 산나물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어머니는 준비한 칼을 꺼내서 참나물(산미나리)을 자르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가 잘라 놓은 참나물을 정부미 포대에 차곡차곡 담았다. 한참을 그렇게 나물 뜯기에 열중하신 어머니가 이마에 땀을 닦으시며 나를 돌아보시면서, 지금 이 자릴 잊어버리지 말고 잘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나중에 어머니가 안 계셔도 여기 와서 참나물을 뜯으라고, 여기는 참나물이 많이 나는 곳이라 잊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셨다. 사실 알고 보면 비밀 같지 않은 비밀이었지만, 어머니에겐 여기 이 장소에서 뜯은 나물로 자식들 공부시키고 살림에 보탬이 된, 어머니만 알고 있는 비밀의 장소였다. 나야 어머니처럼 나물을 뜯어 먹고 살 건 아니지만, 어머니에겐 소중한 비밀의 장소였고 그 장소를 아들인 내게만 은밀히 알려주신 것이다.



가슴이 아팠다. 갑자기 왜 이러시는지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설마 하는 생각에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말하자면 여기는 어머니가 영업하는 비밀의 장소였고 많은 노하우가 숨겨진 장소였다. 나는 땔 나무를 하러 산엘 많이 올랐지만, 어머니만큼은 아니었다. 어머닌 생업으로 이른 봄부터 단오절까지, 비 오는 날만 빼고 거의 매일 산에 올라 나물을 뜯으셨다. 어머니가 어둑해질 무렵 산길을 따라 한 자루 가득 나물을 짊어지고 오시면, 마중 나간 내가 대신 짊어지고 오기도 했다. 한 자루 가득 해온 나물을 마루에 쏟아 놓고, 외할머니는 종류별로 나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구분해서 마루에 널어놓고 나물이 시들지 않게 물을 뿌렸다. 그리곤 커다란 비닐로 덮어놓고서, 이른 새벽에 보따리에 조심스럽게 나물을 싸서 첫 버스로 경동시장에 내다 팔았다. 어머니는 나물을 해오시고, 할머니는 나물을 팔았다. 말하자면,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분업하신 것이다.



그날은 어머니의 신중한 말투에 침울해졌다. 나는 아무 말 안 하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따라만 다녔다. 참나물, 참취, 곰취, 두릅, 눈에 띄는 대로 뜯고 잘라서 거의 자루에 나물이 가득 찰 무렵, 참나무가 무성한 산등성에서 가져간 물을 마시면서 쉬고 있을 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저기 참나무 밑을 보라고 손으로 가리켰다. 그래서 참나무 밑을 보았는데, 내 눈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어머니는 서서 보지 말고 고개를 숙여서 옆으로 보라고 하셨다. 어머니가 알려주는 대로 보니까 정말로 더덕 순이 가랑잎을 사이로 기어 올라오는 게 보였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파릇파릇한 더덕 순이 무리를 지어 가랑잎을 뚫고 올라오는 게 보였다. 신기했다. 그때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더덕을 캐서 뿌리도 먹지만, 더덕 순을 잘라서 무쳐 먹기도 한다고 말씀하셨다. 마법 같은 일이었다 서서 보면 안 보이고 고개를 숙이고 옆으로 보면 보이고, 어머니가 마술 쓰는 비법 내게 알려주신 것 같았다. 어머니가 알려주신 비법대로 더덕을 찾았다. 더덕이 제법 많아서 신나게 캤다. 제법 씨알이 굵은 놈도 많았다. 어린놈은 다시 묻어주고 씨알 좋은 놈만 자루에 담았다. 역시 이 장소도 어머니가 알고 있었던 곳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잊지 않게 여러 번 설명해 주셨다. 여기를 찾으려면 저 등성이를 기준으로 해서 갈라진 이 골짜기로 들어서야 하고 오다 보면,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를 기준으로 여기를 찾아오면 된다고 하셨다. 사실 그렇게 귀가 닳게 설명을 해주셨지만. 여기가 어딘지 다시 찾아오라고 하면 못 찾아올 것 같았다. 어머니는 계속 설명했다. 나는 듣는 척하고 눈빛만 신중하게 굴렸다. 그렇지만, 건성건성 들었다. 긴 하루였다. 그렇게 어머니와의 마지막 산행은 끝이 났다.



나물을 한 자루 가득 해오긴 했지만,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고, 해온 나물을 널어서 펼칠 마루도 없어지고, 경동시장 가는 첫 버스도 없어졌다. 옛집은 사라지고 새집을 지어서 음식점을 하던 때라. 어머니와 해온 나물을 식당에 오신 손님들에게 반찬을 만들어 대접했다. 나는 평소에도 어머니와 산에는 잘 가질 않았다. 모처럼 어머니와 동행한 그날은 느낌이 안 좋았지만, 어머니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따라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어머니는 몸이 아프셔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자신이 죽음을 미리 예견하셨던지, 돌아가시기 전에 내 손을 잡고 산에 올라 본인만 알고 있는, 나물 돋는 그 자리, 정말로 소중한 자리를 내게 알려주셨다. 어머니는 거기서 나는 나물을 뜯어서 자식들 가르치시고, 풍족하진 않았지만, 살림에 보탬이 되었기 때문에, 돌아가시기 전 장남인 내게 꼭 알려주고 싶으셨나 보다. 그래서 나를 데리고 산에 올라 어머니만의 장소에서 나물을 뜯으며 유언처럼 말씀하신 거였다. 어머니의 그 마음, 살면서 자식들이 혹여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본인이 수십 년 동안 비밀로 지켜온 그 장소를 마지막으로 공개한 것이다. 입속에 든 밥알도 뱉어내어 먹여주시던 어머니의, 어머니와 마지막 동행한 그날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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