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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쌤 Jan 20. 2024

이사와 사회복지사 1급 시험

후편

사회복지사 시험을 벼락치기하다!



이사 다음 날, 외출 후 피곤함으로 잠이 든 남편을 안방에 놓고 나와 70% 정도 남았던 3 회독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왜 그리 잘 가는지 저녁 먹을 시간이 되도록 40%가 남아있다. 식사를 후딱 하고 잠시 쉬었다가 내일 시험 보러 갈 준비를 끝내고 다시 책상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피곤하고 정신없을 줄 알았으면 내년으로 미룰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슬쩍 들었지만, 접수를 취소하기 싫었고 한 달 전 예매해 둔 기차 티켓을 취소하기 귀찮았기에 그냥 가자며 나를 다독였다.


밤이 늦도록 공부하는데 왜 이렇게 재미가 있는지. 며칠만 더 있었다면 정말 합격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에 무척 아쉬웠다. 몇 시간 못 자고 일어나서 시험 보러 가야 하고 시험이 끝나면 이 공부를 멈춰야 하니 그것 역시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나머지 40%를 모두 본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동하면서 볼 책과 필기구, 살던 집에 다시 가져다 둘 물건까지 모두 챙겨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히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남편은 아직 팔과 등이 아팠지만 새벽에 나가는 아내를 위해 함께 동행해 주었다. 아직 동트기 전이라 어둑어둑했지만 집 근처의 도로는 꽤나 속도감이 있었다. 많은 분들이 일하러 가시나보다 하며 포항역으로 향했다.


출발 전 시간이 남아 대합실에서 1교시 과목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사 1급 시험은 8개 과목을 3개 교시에 나누어서 치른다. 1교시에 2과목, 2교시와 3교시에 3과목씩으로 되어 있다. 많은 수험자들이 1교시에 시험 보는 과목, 즉 <인간행동과 사회환경>이나 <사회복지조사론>에서 과락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발달과 심리, 통계에 관련된 내용이라 까다로운 느낌이 들어 나도 그 두 과목 공부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포항이 출발지인 관계로 15분 일찍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객실 안에서도 계속 기출문제와 핵심 요점을 읽었다. 기차가 동대구역에 다다랐다. 얼른 내려서 편의점에서 물과 간식을 구입했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복지사 1급 시험 중 점심시간이 사라졌기 때문에 20분이라는 쉬는 시간 동안 교실에서 먹을 수 있는 것들로 골랐다.


택시에 올라 목적지를 말씀드린 후, 한숨을 돌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충분히 공부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스트레스가 되는지 속이 쓰린 것이 느껴졌다. 차 창 밖을 내다보았다. 해가 떠서 사방이 잘 보였다. 자세히 보니 시험장 근처가 너무 낯이 익었다. 알고 보니 예전에 다른 시험을 치러 두 번이나 왔던 곳이었다. 학교 이름을 잊어버려 아예 모르는 곳에 잘 도착할 수 있을까 불안했던 게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긴장이 점점 가라앉았다.


시험장 근처 골목에 들어가니 차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천천히 이동 중이었다.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몰려든 수험생이 꽤나 많은 느낌. 전날 카톡으로 안내받은 내용에는 나의 시험실은 18실이라고 했는데, 학교에 들어가 보니 4층이라고 해서 헉소리가 나왔다. 놀란 가슴을 달래며 씩씩하게 시험실로 올라갔다. 운동 부족인지 숨이 찼다.


최근에 봤던 시험은 영어능력시험이 많았는데 높은 가격부담에도 불구하고 항상 교실의 반쯤 자리가 비어있었다. 그런데 사회복지사 시험은 달랐다. 우리 교실에 배치된 모든 수험생이 응시했고 쉬는 시간에도 떠드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확실히 직업이나 임금과 직결되는 자격증 시험이라 그런 것 같았다.


드디어 시험 시작! 시간이 없어서 예상모의고사를 풀고 오지 못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평소에 기출문제 위주로 풀이를 해서인지 시험문제가 꽤나 어렵게 느껴졌다. 핵심 개념을 읽고 기출문제를 풀고 3 회독을 했음에도 낯선 느낌이 드는 문항이 많이 시간도 많이 소요되었다. 그래도 1교시와 2교시는 무난하게 시험을 잘 끝낸 느낌이 들었다.


2교시와 3교시 중간의 쉬는 시간은 이른바 간식타임이다. 감독관이 답안지를 회수한 후 교실을 나서자 대부분의 학생들이 물이나 음료수, 빵 같은 간식거리를 슉슉 꺼내 들었다. 각자 책을 보면서 간단히 요기하는 모습은 고등학교 이후로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계속 이런 분위기에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한 조각 남은 빵을 입에 넣어 씹으며 혼자 웃었다.


마지막 3교시 시험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앞선 시험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시험지를 열었다. 3교시에 포함된 <사회복지정책론>, <사회복지행정론>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공부할 때도 뭔가 특별히 외울 것보다는 문제를 잘 읽으면 답이 보이는 기출 경향이 있어서 아주 어렵지 않은 듯 느껴졌다.


그런데! 마지막의 마지막 과목인 <사회복지법제론> 파트를 풀면서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시험지가 바뀐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읽어봐도 답을 알 수 없는 이 느낌. 법안을 직접 보고 따로 빡빡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절대 답을 맞힐 수 없는! 그 느낌! 예전에 공무원 시험 준비 할 때 <행정법> 과목 문제를 풀던 딱 그 느낌이었다! 독학으로는 통과하기 어려울 것 같았지만 '설마...' 하면서 마킹을 위해 사인펜을 집어 들었다.


시험을 끝낸 전체적인 느낌은 못 보진 않은 것 같은데 뭔가 확답을 못하겠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오후 5시가 되면 가답안이 나오니까 그때 답은 확인하는 걸로 하고 바로 택시를 타고 바로 대구집으로 이동했다. 원래 있어야 할 곳에 다 설치해두고 나니 무척 홀가분해졌다. 고양이도 안 된다, 개도 안 된다, 못질도 안 된다 하면서 입주하기 전부터 까칠하게 굴던 주인이었다. 그래서일까 만나본 적도 없는데 늘 그를 떠올릴 때면 뾰족한 기분이 되곤 했었다. 이제 영원히 안녕! 유후~!


포항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기다리던 5시가 되었고, 가답안이 업로드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험지와 빨간 볼펜을 꺼내 채점에 돌입했다. 사회복지사 1급 시험은 과락 제도가 있고 전체 합산 점수가 60%를 넘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다시 말해 각 과목 25문제 중 10문제 이상 무조건 맞는 답을 골라야 하고, 전체 점수가 120점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1교시와 2교시의 5개 과목은 무난하게 과락과 60% 선을 넘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3교시도 잘 봤겠지 기대하며 채점을 이어갔다. <사회복지정책론>과 <사회복지행정론>도 괜찮은 점수를 확보했다. 느낌이 이상했던 마지막 과목 <사회복지법제론>을 확인할 차례.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많이 틀린다고?', '25문제 중에 14개나?' 점수가 11점 밖에 되지 않는 결과를 믿을 수 없어 다시 한 문제 한 문제 정확하게 살펴보았다. 아뿔싸.... 다시 보니.. 11점이 아니라 10점이었다!


아아아아악! 이럴 수가! 사회복지사 1급 시험은 가답안을 제시한 후 정정기간을 거친다. 만약.... 그래서 10점이 9점이 된다면 나는 전체 점수가 140점이 넘었음에도 과락에 걸려 불합격하게 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살면서 이렇게 시험 외의 변수가 갑자기 등장해서 공부에 방해를 방해받았던 적도 없지만, 이렇게 한 문제를 두고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되는 상황에 빠져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게 해 주시려고 부단히 애쓰신 엄마의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시험 가채점 결과를 알려주며 황망해하는 나에게 가족들은 그동안 수고했다며, 이사하면서 공부해서 그만큼만 해도 너무 잘한 거라고 감사하자고 해주었다. 그 말이 위로가 되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정정기간을 거친 후, 2월 중순 최종정답이, 3월 20일에는 최종합격자가 발표된다. 상황도 상황이고 여러 가지가 공부에만 집중할 수는 없는 여건이었지만 이사와 시험을 모두 끝내고 나니 일단 홀가분하다.


내년에 다시 응시할 일이 제발 안 생겼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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