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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쌤 Feb 06. 2024

시험접수 건망증

악!

갑자기 떠오른 생각 때문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공부를 좋아하는 이상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웬만해서는 시험 접수일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여러 번 확인하고 캘린더 알림에 알람 설정까지 해두고 꼭 신청해 왔다. 그런데 이 시험만큼은 접수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넘어가거나 또는 대기를 타다가 접수 시작 시간에 깜박해서 놓치기 일쑤였다. 바로 컴퓨터그래픽스운용기능사 실기시험이다.


바로 어제가 2024년 기능사 시험 중 첫 번째로 실시되는 실기시험 접수 시작일이었다. 희한하게도 접수 전날까지는 분명히 기억을 했는데 당일 오전 10시에는 늘 컴퓨터 앞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게 된다. 작년 3회 시험 때는 사회복지 실습 기간이었는데 점심때가 되어서야 생각이 났고, 4회 차 때는 9시부터 대기하다 10시에 다른 일이 떠올라 원서접수를 까먹어버렸다 .


아악! 소리를 지른 건 어제저녁을 먹던 5시쯤이었다. 밥 먹다 말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나를 보며 남편이 물었다.

"왜 그래요?"

"앗.... 오늘이 컴그기 접수날이었는데... 또 잊어버렸어요. 어제까지는 생각났는데..."


아직 시험을 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며 달래주는데도 어안이 벙벙해서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벌써 세 번째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는 내가 너무나 이상했던 것.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래전에 쳤던 워드프로세서 시험이 기억났다. 그때도 필기는 다소 평이하게 치른 것 같은데 실기시험날이 다가오는 게 되게 싫었다. 그렇다. 나는 실기 시험이 참으로 싫은 거다. 학창 시절 예체능과목에 실기 부분이 있어서 성적이 낮게 나오기도 했고 몸을 움직이는 걸 잘 못한다고 믿기에 걱정도 되고 신경도 많이 쓰게 되는 거였다.


하.. 그렇다고 시험을 아예 안 칠 작정을 나의 내부에서 하고 있다니 신기했다. 며칠 전부터 별일도 없는데 입술이 다 부르트고 목도 따갑고 신경이 예민해지던 게 이상하긴 했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나 보다.


앞선 글(↓)에서도 밝혔지만 컴그기 시험은 생각할 것도 주의할 것도 너무 많은 시험이다 보니 솔직히 말해 치지 않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전국에 있는 시험장에 설치된 포토샵 등의 프로그램 버전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 컴퓨터 사양이 어떨지 알 수 없다는 것, 개인 PC의 마우스나 키보드도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은 응시생에게 불안의 요소가 된다. 집에서 어떻게 공부했든 시험장의 환경으로 인해 실기시험의 당락에 큰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외부 환경으로 인한 문제들이 모두 시험을 치르는 개인에게로 책임전가 되다 보니 시험을 치르면서 계속 저장해야 하고 저장용량을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컴퓨터가 조금 느리네 하고 있다가 2시간 이상 창작한 작업물이 싹 사라질 수도 있는데 그 역시 응시자의 책임이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A4 종이에 프린트를 하고 나서 감독관이 제공하는 A3에 붙여서 제출하는데 이때에도 출력이 잘 되지 않을 경우 프린터나 컴퓨터 문제로 판명되지 않고서는 제3의 기회는 없다. 개인당 딱 두 장의 A4용지가 마련되어 있다.


이런저런 생각,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들을 너무 많이 들어버린 걸까. 시험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도 내 안에서는 스트레스를 받기 싫은 녀석들이 장난질을 쳤던 것 같다.


사실 접수 기간이 8일까지라서 기한이 남아 있다. 어제저녁 식사 후 접수 현황을 확인해 보니 미리 선정해 둔 '나의 1, 2, 3순위 시험장'에는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공지사항에 수험생이 너무 많이 몰리는 곳에는 추가 시험장이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조금씩 개설된다는 게시물을 발견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 10시 접속해서 현황을 확인해 봤다. 이번 학기는 대학원 일정이 잡혀서 서울에 있는 동안에 시험을 보려면 3월 19일에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그 외의 날짜에는 지방에서 봐야 했다. 저녁 시간 이후에 강의가 열리니 오전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날짜가 너무나 애매했다. 장소가 괜찮으면 버전이 구리고, 최신 버전이면 날짜가 안 맞고 정말 대략 난감이었다.


오전 10시 10분.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안 치련다 다짐을 하니 시험을 치려고 준비했던 것들이 조금 아까워졌다. A4로 공개된 문제를 A3로 만들어서 프린터기 위에 올려둔 것도, 이번만큼은 접수가 잘 되길 바랐던 마음도 떠올라 오후에 한 번만 더 접속해 보기로 했다.


점심 식사 후, 1시 반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대기를 탔다. 드디어 오후 두 시! 새롭게 떠오른 두 지역의 시험장이 눈에 띄었다. 인천과 울산. 날짜는 3월 20일. 서울에서 하루를 더 묵은 후 인천에서 시험을 치고 내려올 것인가, 아니면 집에 내려와서 자고 새벽 일찍 울산으로 갈 것인가.


서울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너 같으면 어떤 게 덜 피곤할 일정 같으냐고 물었더니 '그래도 잠은 집에서 자는 게 마음도 몸도 편하더라'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래서 울산으로 접수를 완료했다. 결제까지 끝내고 나니 맥이 탁 풀리면서 나른해졌다.


굳이 이렇게까지 접수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계속 미루면 필기시험 유효기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 전전긍긍했을 것 같아서라고. 그리고 2024년 시험 계획 중 첫 번째로 세워둔 시험 계획이 어긋나 버리는 게 속상하기도 했고 말이다.


접수가 완료되었다는 카톡 알림이 왔다. 하, 이제 드디어 시험 준비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접수가 안 되면 미리 공부한 것이 도루묵이 되기 때문에 접수일까지 미뤘던 거라 드디이 봉인이 해제된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버려서일까. 이미 시험을 다 치른 것 같은 피로함과 느긋함이 느껴진다. 접수가 이렇게나 어려워서야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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