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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고객님 Nov 27. 2020

인류애가 사라지는 순간들

공항에서 볼 수 있는 이기주의자

인류애가 사라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면 인간에 대한 실망감이 느껴지는데, 어떤 마음으로 이 사람들을 대하고 답답한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는 내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다.



양심은 어디로 갔나요 고객님?


우리 항공사는 유, 소아를 동반한 고객들에게는 무료로 아이의 유모차와 카시트를 수하물로 부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아무리 무거워봐야 유모차와 카시트 둘 다 10KG 안팎이기 때문에 항공사에서도 무게 제한을 따로 두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항공사가 하는 사소한 배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배려를 악용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이 두 명과 함께 캐나다로 ‘선교’를 하러 가는 가족이었다. 무료 허용 수하물에 해당하는 짐 23kg  8개를 다 부쳤는데 아버지가 짐을 더 내려놓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큰 박스를 올려놓았는데 무게가 35kg이었다. 첫째 아이의 유모차 란다. 다음 짐은 30kg. 이번엔 첫째 아이의 카시트란다. 그렇게 둘째 아이의 유모차 30kg, 카시트 28kg을 더 올려놓았다. 누가 봐도 박스 속의 짐은 유모차와 카시트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재차 확인했지만 박스 속의 짐이 유모차와 카시트가 맞단다. 나는 매니저님을 불러 상황을 설명하고 모두의 동의하에 박스를 뜯어보기로 했다. 역시나 카시트와 유모차와 함께 온갖 잡동사니들이 뒤섞여있었다.
“고객님 이 짐은 저희가 유모차와 카시트로 부쳐드릴 수 없습니다. 이대로 짐을 보내시겠다면 저희는 운송 거절을 하겠습니다.” 그제야 부부는 부랴부랴 추가 수하물 요금을 내겠다고 했다. 근데 그 마저도 반 값에 해달라고 생떼를 부렸다. 인류애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저분 서울대 나왔는데요?


여름 성수기인 어느 날, 옆에서 일하는 선배에게 어머니와 9살 정도 된 여자아이가 함께 왔다. 고객에게 여권을 받아 체크인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딸에게 “딸~ 너는 공부 열심히 해서 이런 일 하지 말고 비행기 타고 출장 다니는 사람 해~” 다들 못 들은 척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다행히도(?) 그 선배는 서울대 출신이었고 현장 근무가 끝나면 지겹도록 비행기를 타고 출장 다니는 업무를 맡게 될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이 어머니 말고도 종종 체크인 업무를 하는 우리를 대놓고 무시하거나 은근히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카운터에는 현장 근무를 하고 있는 대졸 공채부터 해외 지점장 파견을 앞둔 차부장님, 특수 외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직원 등 능력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생각보다 많이 당해서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웃고 쿨하게 넘기지만 다른 사람을 무시하면서 본인의 자존감을 높이는 사람을 마주할 때면 씁쓸하다.


정말 휠체어가 필요하신 거 맞으세요?


항공사에는 교통 약자를 위한 서비스가 준비되어있다. 휠체어 서비스도 그중 하나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카운터에서부터 비행기 좌석까지 휠체어로 직접 모셔다 드린다. 필요시 기내 안에서도 휠체어를 사용할 수 있고, 도착해서도 수하물 찾기까지 직원이 일대일로 붙어서 끝까지 케어해준다. 그런데 이 휠체어 서비스를 다른 서비스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멀쩡히 걸어와서 휠체어 서비스를 신청하는 경우,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도착해서 말이 안 통하는 국가에서 입국 심사에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도착해서 자신의 무거운 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서다. 그렇다고 해서 항공사는 고객님 정확히 어디가 불편하신데요?라고 물어볼 수 도 없다. 이 점을 악용해 휠체어 서비스를 본래의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악용으로 정말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휠체어 서비스를 신청한 사람이 같은 편수에 여러 명이라면, 직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정말 몸이 불편한 사람이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은 단 한순간도 하지 않으면서 본인의 이기심만 드러낼 때, 내 속에서는 천불이 난다.


일하면서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실망감, 환멸감, 허탈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날에는 오늘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어요 라고 회사에 오래 근무하신 매니저님들께 하소연하기도 하는데, 그때 들었던 인상 깊은 말이 있다.
“그냥 흘려버려~ 그 사람들 행동 하나하나에 스트레스받으면 너만 손해야.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있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들은 계속 그렇게 살다 보면 어디선가는 부끄러움을 깨닫게 될 거야.”
그 이후론 그런 사람들을 마주할 때는 최대한 내 감정을 소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매니저님의 말씀대로 언젠간 자기 행동이 부끄러운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기회가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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