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마흔 네 번 째 날.
산티아고 라껠 집 Santiago Raquel Casa 로 오전 7시 35분 버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아침. 바닷가 마을의 아침은 한적하고 좋았다. 가브리엘과 죠 두 사람이 우리를 배웅하겠다며 버스 정류장까지 나와 주었다. 왠일인지 시간보다 버스가 조금 일찍 도착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애틋한 인사를 나누었다. 라껠이 가브리엘과 애절하게 인사를 나누는 동안, 먼저 버스로 뛰었는데 기사님이 목적지를 묻는 것이었다. 산티아고에 간다고 했더니 다음 버스를 이용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뒤에서 힘차게 달려오는 라껠에게 손을 들어 멈추게 했다. 정류장에 덩그러니 남은 네 사람은 참 어색했다. 그리고 곧 숨 넘어갈 듯 웃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산티아고행 버스를 만나 타고 두 시간 남짓 달려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루시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빨래도 하고, 인터넷을 하러 카페에도 가고 신발도 구입하고, 이것저것 쇼핑도 했다. 저녁에 집에 와서 한글을 읽는 법과 인사말 등을 가르쳐 주었더니, 모두들 잘 따라했다. 세 모녀가 열정적으로 배우려는 자세가 가르치는 사람까지 기분 좋게 했다.
루시아를 위해 폴보롱을, 라우라를 위해 초콜릿을 준비했다. 자기가 가진 것은 무엇이든 챙겨주는 라껠 때문에 짐이 늘어나고 있다. 줘도, 줘도 부족한 것 같다. 자꾸 뭔가를 더 주고 싶다.
마흔 다섯 번 째 날.
Santiago - 마드리드 Madrid 야간 버스
평소처럼 일찍 일어났다. 라껠의 부모님은 이미 출근하고 계시지 않았다. 빗길을 달려 코르뇽에 다녀왔다. 중국인이 경영하는 일식집에 가서 초밥과 회를 먹었다. 회를 먹어 보았다던 그녀는, 사실은 먹지도 못하면서 선물을 하려고 동행한 것이었다. 내가 이런 배려 깊은 친구를 두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몇 번이고 다짐했다. 울지 않겠다고. 울면 좀 어떻다고 말이다. 애틋한 마음을 담은 편지도 어제 다 써 놓았고 오후에는 소박한 선물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라껠이 버스에서 먹으라고 보카디죠를 만들어 주었다. 폴보롱과 바나나도 잊지않고 챙겨주었다.
떠날 채비를 하고나서 식탁에 앉아 함께 저녁을 먹는데 그녀가 선물을 건넸다. 일기장이었다.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쳐다보다가 그만 두 사람 모두 울어 버렸다.
식사를 마치고 가방을 정리하는데 비행기표 예매확인티켓이 보이지 않았다. 굳이 그것 없어도 여권만 있으면 탑승이 가능할 수 있을 테지만 걱정이 되었다. 그러자 라껠이 공항에 직접 전화를 해서 연결해 주었다.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준비한 선물은 겨우 와인 한 병 뿐이었다.
가족들과 간단히 인사를 하고, 버스 터미널에 40분이나 일찍 와서 기다렸지만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버스가 왔고, 라껠은 또 눈물을 글썽였다. 버스가 돌아서 나갈 때까지 그녀는 그 자리에 있었다. 아쉬운 이별을 하고 나니 졸음이 쏟아졌다. 가방을 열어 보았더니, 종일 차안에서 들었던 스페인 여가수의 시디와 동영상 시디가 들어 있었다. 그립고 아쉬운 마음이 눈물에 녹아 같이 흘렀다.
마흔 여섯 번 째 날.
Madrid Barajas Airport
지난 밤 버스는 쌓인 눈길을 참으로 잘 달려 마드리드로 안전히 데려다 주었다. 더위가 채 가시기 전에 왔는데, 겨울을 맞이하며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마드리드 버스터미널에서 환승을 하고 바라하스 공항으로 와서 엄마, 동우, 순주, 라껠에게 전화를 했다. 순주는 아무래도 내가 독일보다 스페인이 더 어울리는 거 아니냐며 크게 웃었다.
라껠이 정성스레 싸준 보카디죠를 맛있게 먹고 비행기에 올랐다. 따스한 스페인 사람들과 보낸 한 달여의 시간이 솜 이불처럼 너무 너무 포근하다.
한 사람 한 사람 떠오른다. 이제 그들은 나의 추억 속에 깊이 남을 터이다. 또 만나게 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그때도 오늘처럼 살아왔을 날을 응원하며 인사해주겠지.
그리고 나도.
부엔까미노 민정.
부엔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