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엔 까미노 민정 19

까미노 나를 부르다

by 강민정

마흔 한 번 째 날.

Olbeiroa - Corcubion 21km. 코르꾸비온Corcubion

오전 8시 30분 출발. 오후 5시 도착.

아름다운 라껠은 루르데스를 자신의 어머니인양 보살펴 드리고 있다. 어쩜 저렇게 친절할까. 밤늦게 잠자리에 들어 피곤한지 기침을 연신 하고 있는데도 괜찮다고 한다. 루르데스는 체(Che)까지만 걷고, 우리는 코르꾸비온까지 걸었다.

오랫동안 비가 내렸다. 이제 이틀째 걷는 루르데스에게는 매우 힘든 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판쵸가 아니라 우산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많이 힘겨워했다. 그러자, 라껠은 다시 루르데스의 침낭을 가져다가 메었다. 그리고 걷다가 기다려 주면서 그녀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걷는 내내 라껠은 먼저 앞서 씩씩하게 걸어가다가는 뒤돌아서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그녀는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었다. 경쾌한 그녀의 노래와 춤은 쉼이 필요한 우리들에게 언제나 상큼한 비타민이었다.


까미노는 처음 보는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또 그 사랑을 다시 나누어주는 법을 배우는 길이다. 영훈이는 집으로 돌아갈 때 자기 점퍼를 라껠에게 주고, 침낭은 내게 주고 갔다. 그가, “이렇게 친구를 두고 먼저 집으로 가게 되니까, 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주고 가고 싶네요. 다 주고 가고 싶어요. 배낭도 필요하세요?” 양말이고 스틱이고 주고 갔던 아구스틴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젠 알 것 같다.


힘겹게 도착한 알베르게는 산티와 아센에게 들었던 대로 아주 훌륭한 곳이었다. 순례자는 우리 둘 밖에 없는데 식사와 설거지까지 해 주셔서 오스피탈레로에게 미안하기까지 했다.

침대에 누우려고 하는데, 라껠의 전화가 울렸다. 마누이려니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알렉산드라의 전화였다. 그들이 지금 알베르게에서 함께 파티를 열고 있는데, 내가 라껠과 함께 있는 것을 알고는 마누가 전화를 연결해 주었던 것이다. 내일 피니스테레에서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기분 좋은 밤이다. 내일도 행복한 날이 될 것 같다.



마흔 두 번 째 날.

Corcubion - Finisterre 14km. 피니스테레 Finisterra

오전 8시 30분 출발, 오전 10시 40분 도착.

아침 식사 까지 챙겨주신 오스피탈레로 덕분에 우리는 속도 든든히 채우고 기념사진도 찍은 후 알베르게를 나섰다. 너무나 고우신 두 분 덕분에 아주, 아주 좋은 밤이었다. 추웠던 것을 빼고. 날씨도 추운데 넓은 방에 달랑 둘이서 자려니 온기라고는 느낄 수 없는 엄청 추운 겨울의 밤을 보냈다. 우리는 더없이 가까운 친구가 되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피니스테레에 거의 다 왔을 때쯤, 저 만치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마누였다. 마누에게 라껠은 딸 같은가 보다. 아내와는 이별한 듯 하고, 딸은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는데 라껠보다 어리다고 한다. 그래서 이 명랑한 여인이 자신의 딸 같은가 보다.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라껠 또한 행복해보였다.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죠와 클라우디아와 요나단과 인사를 하고, 가방을 풀어 놓은 뒤에 선글라스만 쓰고, 피니스테레까지 걸어갔다. 걸어가는 데만 두 시간 정도 걸렸다.


바다가 보이자 가슴 저 밑에서부터 무언가가 슬금슬금 기어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벅차오르는 감동까지는 아니어도 정말 땅 끝까지 걸어왔구나 하는 마음속 동요였다. 어쩌다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동행한 라껠이 고마웠고, 삶의 자리로 먼저 돌아간 친구들이 감동으로 되살아왔다. 이곳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했었기 때문에, 지금 혼자가 아니고 친구와 함께 있어서, 그래서 감동이었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처음 사귄 내 친구 아구스틴에게 문자를 보냈다. 드디어 피니스테레에 도착했다고.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는 연락을 못했지만, 스페인의 친구에게 여행의 끝자락에서 문자 하나 보낼 수 있음이 소소한 행복이었다.


잠시 후, 루시아가 와서 우리를 알베르게로 데려다 주었다. 자동차가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는데 저 아래에서 정상을 향해 걸어 올라오는 알렉산드라가 보였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차를 세워 달라고 부탁하고, 우리는 창문사이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오후에 알베르게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피니스테레로 향했다. 루시아는 추위에 지친 우리에게 따끈한 커피를 한 잔 사준 다음 죠와 마누가 있는 알베르게로 가서 함께 식사를 했다. 마누가 식사를 대접해 주었다. 다시 만난 친구들이 반가웠다.

알렉산드라를 다시 만나 바(Bar) 로 이동했다. 라껠은 처음엔 어색해했지만, 곧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시 대화를 나누고는, 라껠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러 먼저 올라 가겠다며 일어섰다. 알렉산드라와 사진을 보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알렉산드라는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마음이 ‘여기에서 멈추자’고 했다고 한다. 그녀의 말이 마음에 와서 닿았다. 몸과 마음이 하나로 되어있는 그녀가 참 귀하게 여겨졌다.

그녀가 내게 직업을 물었다. 언제 독일에 오고 싶었냐, 무얼 하고 싶냐고도 물었다. 목사라고 말했다. 지금의 교회 구조에 대해 고민이 있어서, 공동체를 만들고 천천히 사는 것, 즐기면서 사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확신에 찬 얼굴로 힘을 실어 주었다. 꼭 그렇게 하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그 때 연락하라고 했다.

그녀는 여기 스페인에서 일하고 싶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바쁜 독일 생활이 너무나 스트레스가 되고 있는데, 이곳 스페인에 와서 일 한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알렉산드라는 돌아가면 아버지께서 새로운 여인과 재혼을 하신다며 웃었다. 성격 좋고 멋진 알렉산드라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년에도 계속 여행을 하게 되면, 뒤셀도르프에 찾아 가겠다고 했다. 헤어지며 인사를 하는데 너무너무 아쉬웠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차마 놓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이제는 헤어져야 하는데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멀리 호텔쪽 입구로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쳐다보았다. 그녀도 뒤 돌아 보며 가던 길 가라고 손을 저었다. 못내 아쉬운 마음에 눈물이 흘렀다.

라껠을 위해 과자를 사들고 들어와 보니, 스파게티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가브리엘이 온다고 해서 양을 좀 더 준비했다고 했다. 7시가 다 되어도 그는 오지 않자, 배가 고팠던 우리는 먼저 먹기 시작했다. 거의 다 먹어 갈 때, 알베르게 현관문이 열리면서 “올라”하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아이고 세상에’ 하며 가브리엘이 온 것을 확인했다. 몇 젓가락 되지 않게 남은 스파게티를 데워서 그에게 주었다. 그는 엄청나게 감격해서 라껠을 쳐다보았다. 완전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다.

나를 위해서 음식을 만들고, 내가 좋아한다고 폴보롱을 사고, 초콜릿을 사는 친구 라껠. 오늘 나는 알베르게 기부금과 알렉산드라와 마신 커피값만 겨우 계산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준비한 견과류를 몰래 가방에 넣어줄 뿐이었다. 매순간 진실로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해 주고 있다.


내일은 이 카미노의 마지막 날이다. 죠도 합류하기로 했다. 셋이 만나서 저녁을 해 먹으려고 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건강하게 행복하게 걷고 싶다.



마흔 세 번 째 날.

Finisterre - Muxia 25km. 묵시아 Muxia

까미노여행 마지막 날. 라껠과 아침 식사를 하고 바(Bar)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여유롭게 출발했다. 가브리엘이 동행 했다. 한 번 입을 열면 도통 말을 멈추지 않는 친구였다. 그리고 사실 종일 나의 길동무 나의 친구를 넘보는 그 녀석이 그다지 예뻐 보이지도 않았다. 라껠에게만 정신 팔린 청년과 그와 이야기하느라 정신 없었던 그녀를 아무 생각 없이 따라 걷다가 길을 잃기도 했다. 그들이 가는 길이 맞을 거라고 그냥 믿고 걸었던 탓이었다. 우리는 코루코비온으로 되돌아가는 길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 길에서 피니스테레로 향하는 루르데스 그리고 아그네스와 요하네스커플도 만났다. 그러다가 결국엔 어느 맘 좋은 아저씨의 도움으로 차를 얻어 타고는 묵시아로 가는 어디 쯤 인가까지 이동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했는데.

우리는 특별한 냇물도 만났다. 평소에는 그리 깊지 않아서 큰 돌 다리로 건너는 곳 같아 보이는데, 비가 많이 와서 냇물이 불어 있었다. 우리는 이 차가운 11월의 냇물에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부치고 물이 무릎까지 차오른 돌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런데 제일 앞서 걷던 가브리엘이 그만 중심을 잃고 물에 빠져서 주저 앉아버리고 말았다. 그 뒤를 따르던 라껠이 강을 건너지 못하고 멈춰 서서 웃고 있었다. 문제는 제일 뒤에 있던 나였다. 차가운 물에 담근 다리는 얼고 너무 추워서 힘들었고, 바지가 젖어 짜증이 더했다. 혼자서 한 발씩 번갈아 들면서 얼른 앞으로 가라고 소리소리 지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짧은 다리로 돌다리 아래의 물속으로 첨벙 뛰어 들었다. 그리고는 앞서서 제일 먼저 밖으로 나와 버렸다. 두 사람은 키가 커서 괜찮았는데 키가 작은 나는 허벅지까지 적시고 말았다. 다리가 얼어붙는 줄 알았다. 라껠은 웃다가 가장 늦게 나왔다. 온통 젖어버린 가브리엘은 바지를 벗고서 속옷만 입은 채로 물을 짜야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강을 건넌 후, 물웅덩이만 보면 가브리엘에게 수영을 하라고 놀려댔다. 그 재미마저 없었으면 가브리엘이 참 미웠을 것이다. 참 속 좁은 나다.

가브리엘은 숙소에 도착하면 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했는데, 버스를 놓쳐서 결국 알베르게에 함께 묵게 되었다. 우리는 죠를 기다렸다. 스파게티를 함께 먹기로 했다.

채식주의자인 죠를 위해서 샐러드도 두 가지로 준비했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맥주도 준비했다. 그러나 죠는 이미 술을 조금 마시고 약간 풀어져 있어서 우리가 준비한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여행의 마지막 날’을 좀 더 즐겁게 보내고 싶었는데 가브리엘도 죠도 그런 분위기에 맞지 않게 어수선해 보여서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맙다는 생각에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