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엔 까미노 민정 18

까미노 나를 부르다

by 강민정

서른 일곱 번 째 날.

몬테 데 고소 Monte de Gozo

늦은 시각 일어나 가방과 침실을 정리하고 시내로 나섰다. 이 알베르게는 사흘 동안 머무를 수 있다고 했다. 오스피탈레로가 아주 친절한데다 한국어 인사말을 할 줄 아셨고 아주 살가운 사람이었다.

리사와 유씨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영훈이가 나만 보면 제발 울지만 말라고 부탁을 해서 그를 피해 도망 다녔다. 눈가가 촉촉이 젖어왔지만 들키지 않기 위해 참아야 했다. 다시는 이 길에서 헤어지며 울고 싶지 않았다. 부부는, 남겨진 순례자들에게 줄 만한 것들은 모두 꺼내주시고는 부엌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우리들을 사진에 담으셨다. 그리고는 무어 그리 급하신지 바쁘게 정리를 마치시고는 주춤하는 사이에 벌써 알베르게를 벗어나 저만치 걸어가고 계셨다. 두 분의 뒷모습만 보면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E메일을 보낸다고 해도 이제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이 있기는 한 것일까. 그 분들의 남은 생애 지금까지처럼 그렇게 멋지게 살아가시길 축복한다.


우리의 하루 시작은 역시나 카페 콘 레체였다. 라껠은 산티아고 시내의 예쁜 카페로 우리를 인도했다. 아침인데도 분주한 카페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안내소에 가서 버스 시간표를 알아 보았고, 지혜씨와 어머니의 포루투갈 여행 자료를 얻었다. 저녁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을 때, 루시아가 나타났다. 루시아가 우리를 점심식사에 초대한다며 라껠과 타고 오라고 차까지 건네주고 가셨다.

우리는 루시아의 초대에 감사하여 작은 초콜릿 상자 하나를 선물로 골랐고, 지혜씨 모녀는 예쁜 악세서리를 준비했다. 스페인식 해물볶음밥 빠에야를 해주셨는데 정말 훌륭한 맛이었다. 라껠의 아버지 델핀과 언니 라우라도 만났다.


맛있는 점심식사를 대접받고 한층 더 밝아진 우리 일행은 산티아고 대성당 광장으로 나왔다. 나와 영훈, 라껠은 시내를 구경하고 차 한 잔을 하고, 광장을 한 번 더 가보았다. 혹시나 알렉산드라가 와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 광장으로 가 본 것이었지만 만나지 못했다.

나와 영훈이는 기차표를 끊기 위해서 기차역에 다녀왔다. 알베르게에 도착하자, 마누와 죠가 함께 식사를 하자면서 많은 음식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지혜씨도 우리가 먹을 스파게티의 재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내일은 영훈이와 지혜씨와 어머님이 피니스테레까지 자동차로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그 동안 나와 라껠은 동네 구경도 하고 영훈이를 위한 선물도 함께 고르기로 했다.


산티아고.

마법의 도시 같다. 정말 이상하다. 도시 안에 그대로 갇혀 버리는 느낌이다.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가만히 있어도 만나고 싶은 이들을 하나씩 둘씩 다시 만나게 된다. 고도의 골목 안을 돌아다니다보면 순례자들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안부를 묻기도 하고, 안아주기도 하고, 토닥여주기도 하고, 아쉬워하며 헤어지는 것이 일상사이다. 때론 힘든 코스를 함께 하기도 했고 때론 진한 우정을 나누기도 했을, 못 잊을 친구들이 그리운 것 같다. 사는 동안 이 친구들을 또 다시 만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일 것이기도 하리라.



서른 여덟 번 째 날.

Santiago 오전 8시 20분.

여행 중 가장 늦게 일어났다. 영훈이는 아침부터 분주히 짐을 챙기더니만 자신이 사용하던 작은 침낭을 내게 주었다. 루시아가 이른 시간부터 알베르게에 오셔서 우리를 차에 태우고는 산티아고로 데려다 주셨다.


영훈이와 지혜씨 그리고 어머님은 알베르게에서 소개해준 기사님과 자동차로 피니스테레 여행을 떠났고, 라껠과 나는 알마에도 공원으로 이동했다. 공원을 산책하는 동안, 서로에게 스페인어와 한국어를 가르쳐 주었다. 파란 하늘, 잔디, 나무. 영훈이가 나중에 듣고서는, “좋아하시는 단어들만 가르쳐 주셨군요.”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

영훈이에게 줄 선물도 사고 커피숍에 가서 편지도 썼다. 라껠은 영훈이와 지혜씨 그리고 내게 한글로 이름을 써 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알려주었더니 글씨를 꽤 예쁘게 잘 썼다. 그리고 몇 개의 한국어 문장을 알려주어 영훈에게 인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지혜씨 어머님께서 사 주신 맛있는 저녁식사를 먹고 나는 영훈이와 기차역으로 갔다. 루시아도 왔다. 많이 섭섭했다. 그러나 나와 영훈이는 서로 웃어주었다. 몇 번이고 울지 않겠다고 다짐해서 그런지, 한국에 가서 꼭 만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참을 만 했다. 시작이라 시작이라 지금부터 만남의 시작이라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서른 아홉 번 째 날.

Santiago - Negreira 22km. 네그레이라 Negreira

오전 7시 기상. 오전 8시 Monte de Gozo 버스로 출발.

지혜씨와 어머님과 마지막 아침 식사를 했다. 라껠과 함께 준비한 카드와 선물을 드렸다. 두 사람이 버스를 타고 터미널 앞에서 내릴 때, 참았던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이제는 헤어짐도 익숙해지는가 보다.

라껠과 나도 곧 버스에서 내려 성당 광장으로 가서 피니스테레로 가는 첫 발을 디뎠다. 때로 얼굴만 봐도 웃고 친구들 이야기를 하다가 웃기도 하면서 서로의 모국어 단어를 가르쳐 주면서 걸었다. 그러다 문득 라껠에게 물었다. “왜 계획을 바꾸어서 피니스테레까지 가기로 한거야?” 그랬더니 어머니 루시아가 지난 18일 저녁에 민정과 같이 걸으면 어떻겠냐고 물으셨다는 것이다. 영훈이가 가고 나면 피니스테레에 혼자서 갈 수는 있을까 하며 마음을 잡지 못할 때였다. 그런 마음이었는데 라껠이 함께 갈 수 있게 되어 마음 한 편이 든든했었다.

라껠은 종일 나와 걸음을 맞추어 주었다. 뒤 돌아보다가는 고고(go!go!) 하기도 하는데, 그 모습이 영훈이 같았다. 아, 영훈아 보고 싶다.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라껠이 요리를 하겠다며 밥을 짓기 시작했다. 손도 큰 이 여인이 만든 저녁 식사는 루르데스(Lurdes/스페인)와 또 다른 순례자와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푸짐했다.



마흔 번 째 날.

Negreira - Olbeiroa 33km. 올베이로아 Olbeiroa

오전 8시 30분 출발. 오후 7시 도착했다.

루르데스가 우리와 함께 출발하기를 원했다. 이분의 자녀들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살고 있는데 피니스테레에서 다같이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라껠은 이 분과 함께 걷는 것을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점심 식사로 보카디죠를 준비했다. 그런데 라껠이 자꾸 공동의 물건들을 자기 가방에 다 넣으려고 했다. 점심 도시락까지도. 그래서 한 참을 뛰어다니면서 서로 뺏으려고 또 안 뺏기려고 난리였다. 결국 모든 짐이 그녀의 가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가벼운 과자만 챙겼다. 아이구 고마운 사람.

루시아가 우리가 묵은 알베르게에 들리셨기 때문에 불필요한 짐들은 모두 집으로 보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가방은 전혀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몸이 지쳐서인가 보다.

출발하고 한 시간 정도 되었을까, 갑자기 걸음을 멈춘 라껠이 루르데스의 침낭을 자신의 가방에 묶기 시작했다. 루르데스가 어깨의 통증으로 아파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엔 짐작도 하지 못했던 일이라 라껠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이내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라껠을 도왔다.

얼마나 예쁜 친구인가. “함께 갈 거니까, 나는 강하니까” 라고 말하며 종일 그렇게 이웃의 침낭까지 두 개를 맨 채 걸었다. 아이를 업은 여인 같았다. ‘남의 짐을 들어주는 사람’ 라껠. 그녀가 내 가방을 들어 주던 날도 그렇게 예뻤다. 그녀의 발을 치료해 주었던, 헤수스의 도움을 몇 배로 갚고 있는 라껠. 사랑스러웠다.

그녀에게 그동안 못했던 질문을 했다. 그녀는 아침마다 약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어디가 많이 아프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머리하고 가슴이라고 했다. 걷는 것이 라껠에게 좋다고 의사가 조언했다고 했다. 우리는 그 어떤 단어 보다도 사랑한다는 말을 제일 많이 한다. “사랑해 라껠” “사랑해 민정” “아이 러브 유 소 머치”

이탈리아인 가브리엘을 만나서 함께 동행 했다. 마누와 죠는 피니스테레에 도착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틀 뒤에 피니스테레에 도착하게 되면 그 때까지 기다릴 테니 함께 식사 하자고 연락이 왔다.

알베르게에 도착하기 전에 바(Bar) 에 들렀다. 가브리엘은 이탈리아 청년이었지만 스페인 남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스페인어를 꽤 잘했다. 그는 루르데스와 많은 대화를 했다. 라껠과 마주보고 앉아 있는 우리의 양쪽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대화에 방해가 될까봐 마주 앉은 우리는 듣고만 있었다. 그러자 곧 라껠이 갑자기 말했다. “아이 돈 언더스탠드.” 그리고는 나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 스페인어를 못 알아듣는 나를 배려하는 것이 느껴졌다.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라껠의 전화기로 큰 마음 먹고 아구스틴에게 전화를 했다. 그가 받을지도 걱정이었고 내 목소리를 기억이나 할까 긴장했는데, 인사를 하자마자 그는 내 목소리를 알아차렸다. 어찌나 기뻤는지. 그라나다에 여행을 다녀오느라고 내가 보낸 메일을 이제야 보았다고 했다.

언제 올 거냐고, 꼭 왔으면 좋겠다고 그 얘기만 계속 했다. 크리스마스에 라껠과 함께 가도 좋겠냐고 물었다. 여자친구와 가족들과 보낼 시간에 내가 함께 해도 좋겠냐고 했지만 그는 좋다고 했다. 고마운 친구. 보고 싶은 친구. 너무 그립다. 그는 줄곧 “I hope so"를 연발했다. 다행이다. 이건 뭐지, 가슴이 뛴다.

가브리엘이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걸어오는 길에 분주히 산속을 뛰어 다닌다했더니 산속에서 버섯을 구해 온 것이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루르데스와 가브리엘은 계속 스페인어로 대화를 했다. 그러자 라껠이 그들에게 뭔가 이야기를 했다. 함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영어로 대화하라고 했거나, 작은 소리로 조금만 자제해 달라는 뜻으로 보였다. 두 사람이 내게, 영어가 잘 안되어서 스페인어로 우리끼리 하는 것이었는데 미안하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랑과 관심을 받는 느낌이 참 행복했다. 영어를 잘 못하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마저도 배려해주니 말이다.

저녁을 먹고 가브리엘이 자신의 커다란 탬버린을 가지고 왔다. 피곤에 지친 순례자들을 위해 따스한 벽난로 옆에서 아주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라껠의 멋진 연주였다. 그녀는 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