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나를 부르다
서른 다섯 번 째 날.
Arzua - Pedrouzo Arca 19km. 페드로우소 아르카 Pedrouzo Arca
오전 9시 30분 출발. 오후 4시 30분경 도착.
아직 순례자들이 자고 있는 새벽, 지혜씨와 어머님, 영훈, 리사부부 각각의 머리맡에 초컬릿을 두고 가방을 정리했다. 그 사이 지혜씨는 일어나서 우리 일행을 위해서 샌드위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덕분에 아침을 맛있게 먹고 출발했다. 여유롭게 출발 했고 느린 사람과 맞추어 마음 편히 걸었다.
후안마일행과 함께 바(Bar)에 가서 카페 콘 레체를 한 잔 씩 한 후 여정을 시작한 우리는 이제 완전한 일행이었다.
마리의 뛰어난 상상력은 영훈이가 하는 말을 곧 잘 이해했었는데, 그것은 영훈이쪽도 마찬가지였다. 후안마의 노력은 더 가상했다. 그가 하는 말은 “끼익~, 후이잇~”하는 휘파람 소리와 그의 손가락 제스쳐가 90% 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의 소리와 제스쳐로 그의 뜻을 거의 다 알아듣는다.
우리는 이렇게 소통을 하고 있다. 속도를 맞추어 걸으며 서로를 알아갔다. 그만큼 헤어지게 될 아쉬움은 커지고 있는 듯 하다.
한 편, 어머님의 컨디션에 맞추어 걷겠다는 지혜씨는 아침에는 먼저 출발했었는데, 점심을 먹으려고 들른 바(Bar)에서 다시 만났다. 먼저 걸어간다 해도 후에 출발하는 이들과 만나게 되기도 하고, 느리게 걷더라도 어느 순간 그날의 선두가 되어 걷기도 했다.
바(Bar)의 주인장이 순례자의 크리덴시알에 직접 그림을 그려주었다. 그림이 예뻐서 모두들 크리덴시알을 꺼내들었다. 솜씨가 꽤 좋았다. 스템프가 꽉 채워가는 크리덴시알을 볼 때마다 왠지 뿌듯했다. 이렇게 오래 걸었구나.
지혜씨 어머님의 컨디션이 꽤 괜찮아 보여서 오늘 머물 알베르게까지 가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조금 걷다가, 우리 일행은 지혜씨 어머님께서 차 한 잔 권유하셔서 한 번 더 바(Bar)에 들어갔고, 후안마 일행은 밖에서 쉬고 있었다.
얼마 후, 마리가 들어오더니 먼저 출발하겠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이곳에서 음식을 먹을 것인지 아니면 차를 마실 것인지를 물었다. 무엇 때문에 묻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단지 차만 마실 것이라고 전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만치 낯익은 옷을 입은 두 명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동네 사람인가 했는데 후안마 같았다. 점점 가까이 오는데, 보니 정말 후안마와 라껠이었다.
우리를 보자마자 라껠은 나의 가방을, 후안마는 지혜씨 어머님의 가방을 풀어서 매고 걷기 시작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가방을 넘겨주긴 했지만, 너무 당황스럽고 또 고맙고 미안하고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이건 뭐지.
라껠이 나의 손을 잡았다. 감동이었다. 그녀의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따뜻한 손이, 아니 그녀의 따스한 마음이 나를 덮쳤다. 뭘 그렇게 잘 해줬다고 이 사람이 나에게 이런 사랑을 베풀어 주는가 하는 마음에 몸둘바 모른 채 그들과 동행했다. 어떤 말로도 표현 못할 감동이었다. 그들이 우리를 위해 다시 돌아온 거리만도 2km는 족히 되어 보였다. 피곤할 텐데.
그들의 따스한 사랑은 다시 걸어온 그 동기에서 더 크게 느낄 수 있었다. 후안마와 라껠이 각자의 일행들보다 먼저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각각 파트너인 마리와 루시아를 기다리다가 전화를 해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길을 잃어서 다른 방향으로 우회해서 오고 있는 상황이란 것을 전해들은 것이다. 그러자, 이들은 자신들의 파트너에게는 전화로 빠르게 오는 길을 일러주고 우리 일행이 혹시나 길을 잃을까봐서 마중 나왔던 것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따스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보니, 두 사람의 가방은 문 앞에 팽개쳐져 있었다. 우리들을 마중 나오느라고 가방을 던져놓고 온 것이었다. 뭉클했다.
후안마가 영훈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후안마는 산티아고에 있는 호텔에 자신의 자동차를 미리 보냈다고 한다. 알메리아로 돌아가려면 마드리드를 지나가야 한다며, 영훈이가 마드리드 영사관을 들러야 하는 상황을 알고서는 같이 동승하자고 제안을 했다. 마음 씀씀이까지 정말 진국이다.
알베르게 순례자들이 저녁식사 때, 함께 파티를 열었다. 스위스 아저씨가 요리를 하신다고 나서셨다. 그의 이름은 마누라고 했다. 모두가 약간의 회비를 걷어서 내일 아침식사까지 준비할 수 있도록 했다. 슈퍼에 따라가서 후안마와 라껠을 위해 마음의 표시로 작은 초콜릿을 하나씩 준비했다. 고마운 마음만큼 해 줄 수 있는 것이 적었다.
저녁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후안마가 무엇인가에 집중해 있는 것이 보였다. 죠의 안경을 고쳐주고 있었다. 죠의 안경테가 부러지고, 렌즈가 부서졌는데 그것을 섬세하게 붙여주고 있었다. 강력본드로 붙여주는 그의 모습을, 오랜만에 레게머리를 감고 터번을 올린 죠가 다소곳이 앉아서 고마운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예뻤다. 예쁜 여동생이 오빠를 쳐다보는 듯 했다.
마누가 지은 밥 양이 적을 듯 보였는데, 모두가 먹고 만족할 만큼 풍성했다. 리사는 후식으로 쿠키를 기꺼이 내어 주셨다. 산티아고 입성일을 앞 둔 밤, 누구도 내일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잠자리에 돌아와서 이 침대 저 침대를 오가면서 서로의 주소와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내일이면 어떻게 헤어져야 할 지 알지 못하지만 이 밤, 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이야기꽃이 쉬 지지 않았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런데, 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시간이 좋고 또 헤어짐이 아쉬워서 이 길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기분이 묘하다.
아름다운 선물은 마음에 감동을 주고 추억을 새겨서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 흔적이 이 길을 오래 기억하게 할 것이다. 어릴 때 소풍가기 전날 밤 같이 이상하게 설레고, 늦을까봐 걱정 되었던 바로 꼭 그 밤 같다.
서른 여섯 번 째 날.
Pedrouzo Arca - Santiago de compostella 22km. 몬테 데 고소 Monte de Gozo
오전 9시 30분 출발. 오후 4시 도착.
어제 알베르게의 방 구조는, 네 개의 침대가 두 개씩 문이 없는 하나의 공간 안에 독립적으로 구분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다. 좁은 공간안에 네개의 침대에 나그네가 꽉 차다 보니 아주 작은 소음도 그 안에서 고스란히 울렸다. 지난 밤, 잠을 설쳤다.
하품을 해대며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걷기 시작했다.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서 일행 중에서도 제일 늦게 걸었다. 숨까지 차 올라서 중간 중간 쉬며 걸어야 했다. 거의 눈을 감고 걷다가 눈을 뜨고 걷다가 반복이었다. 그래도 지혜씨 어머님께서 앞 서 가시면서 간간히 기다려 주시고 돌아봐 주시며 챙겨주셨다. 그러다보니 뒤 따라 오던 순례자들이, 혼자 뒤쳐진 나에게 컨디션을 물어봐주곤 했다.
바(Bar)에 들어가 잠시 쉬다가 나왔지만, 계속 뒤쳐져서 눈을 반쯤 감고 걸었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저 만치서 후안마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의 스틱을 달라고 했다, 자신이 들어 줄 테니, 가방 밑으로 손을 넣어서 엉덩이에 뒷짐을 지고 걸으라고 했다. 가방이 무겁고 어깨가 아픈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방법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후안마와 대화하며 걸었다.
그는 곧 경찰 공무원 시험을 보게 될 거라고 했다. 여동생이 있는데 그녀는 특수학교 교사라는 것 같았다.
그 많은 스페인 사람들 중에 안달루시아 지방 사람 그것도 알메리아인들을 세 명이나 만났다. 아구스틴도 알메리아 사람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더 호감이 갔었나 보다. 비에르소 산장에서 처음 만나고 두 번째 알베르게에서는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고. 세 번째 알베르게에서는 함께 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나란히 이야기하며 걷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일행이 되어 헤어지는 것은 꿈도 꾸지 않고 걸었던 것 같다.
오후 12시 40분경 드디어 모든 순례자의 고향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광장은 순례자들의 환호성으로 시끌벅적했다.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서로 껴안고, 외로웠던 순간마저도 꿋꿋이 걸음 걸음 디뎌온 그 깊은 마음들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렇게 경계심 많아 보이던 스위스 아저씨 마누가 우리 일행에게 먼저 달려와서 인사를 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예민한 아저씨는 없고, 어느 때보다 다정한 사람이 서 있었다.
이 감격의 광장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영훈이가 그리도 좋아하는 존피에씨. 그는 며칠 전에 50km 정도 걸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삼일 전에 도착해서 여느 순례자들처럼 이 도시 곳곳을 산책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바라던 목표점에 왔다면 이제 또 다른 길을 가는 게 맞을 텐데, 왜 더 머물고 있을까. 그들은 함께 걸었던 동지들을 기다렸다가 축하해주고, 헤어져 있어서 못 다 했던 이야기를 나누는 듯 했다.
광장 한 가운데 앉아서 성당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드디어 도착했다는 감격의 눈물도 없었고, 큰 감동이 몰려오지도 않았다. 그저, 아직 더 걸어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다. 오직 마음에 요동치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함께 걸으면서 사랑하게 된 이들과 건강하게 여행을 마치고 이곳에 함께 도착해 있다는 그 자체였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는 다른 순례자들을 따라 성당으로 들어가서 완주증을 받아 들고 나왔다.
일행은 알베르게를 몬테 데 고소로 정했다. 라껠은 어머니 루시아와 함께 산티아고에 있는 집으로 갔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오던 길로 10분쯤 역행해서 알베르게에 갔다. 알베르게 옆에 후안마와 마리가 머물 호텔이 있었다. 라껠 모녀와 다른 일행들과 저녁 시간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다시 광장에 모인 일행들은 저녁 미사에 참석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나에게 미사는 별로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다. 내게 있어 예식은 보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었기에. 그래도 결국 다른 이들을 따라 나섰다. 날씨도 무척 추워서 딱히 앉아서 기다릴 곳도 없었다. 커다란 향로가 예배당을 가로지르자 사람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그 모습이 장관이어서 미사를 드리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사가 끝나기 전에 우리는 모두 밖으로 나왔다. 내일이 마리의 생일이라 해서, 마리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영훈이와 라껠이 케잌도 준비했다. 우리는 먼저 루시아가 대접해 주시는 뿔뽀를 먹었다. 산티아고에 사는 토박이로서 나그네들을 대접하고 싶어 하셨다. 이후 라껠이 다른 장소로 안내해서 그곳에서 파티를 열었다. 파티는 마리의 선물이었다.
여행지에서 현지인들이 주는 사랑이 참 고마웠다. 언제라도 내가 머문 곳으로 찾아오는 외국인 친구들이 생긴다면, 나도 그들에게 따스하게 대접해야겠다. 오늘처럼.
루시아가 지혜씨와 어머니를, 후안마가 나와 영훈을 알베르게로 데려다 주었다. 후안마와 마리와 아쉬운 이별을 해야 했다. 좋은 기억을 남겨준 사랑스런 친구들을 꼭 안아주고, 혹시라도 성탄절에 스페인을 다시 찾는다면 꼭 연락하겠다고 하고는 헤어졌다.
알베르게에 돌아와 보니, 리사부부도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영훈이는 후안마 일행과 마드리드로 가지 않고, 우리와 함께 여기 산티아고에 더 머물다가 파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내일은 쇼핑도 하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걷기는 마쳤지만, 아직 아쉬움이 남는 순례자들의 마음의 걸음은 멈추질 않는다. 이 도시는 이상하다. 어떻게 이 도시를 빠져나가 다시 걸을 수 있을까. 마음 한 편이 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