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나를 부르다
서른 세 번 째 날.
Portomarin - Palas de Rei 24km. 팔라스 데 레이 Palas de Rei
오전8시 30분 출발. 오후 4시 30분 도착.
출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우리보다 앞서 걷고 있는 순례자가 자꾸 어제 건너왔던 다리가 있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시 가슴이 조여오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람. 영훈이는 이미 눈치를 채고는 뭐라 한 마디 없이 그저 내 앞을 지나쳐 저만치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결국은 따라가게 될 테니까 모른 척 걸어갔을 것이다.
역시나, 또 다리를 건너야 했다. 이번에 건너야 할 다리는 어제의 것보다는 짧고 크기도 작았지만 철교였다. 하지만 피할 수 없으니 따를 수 밖 에. 앞만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입에서는 알 수 없는 신음을 내며 건너야 했다. 숨이 차오는 신음이었다. 간신히 건너고 나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아...다시는 다시는 이런 다리를 건너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혜씨 어머님께서 길동무가 되어주셨다. 어머니를 통해 딸과 함께 살고 싶은 내 어머니의 마음을 보았다. 언젠가 엄마도 그러셨다. 같은 하늘아래 살고 싶다고. 너무 멀리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12일 쯤부터는 비가 많이 오고 있다. 이른 아침엔 서리도 내린다. 붉은 낙엽들도 나그네들의 발걸음에 밟혀 어느새 땅과 하나가 되어간다. 붉은 색도 노란 색도 저마다 도드라졌던 그 아름다운 색깔도 이제는 마르고 바래고 부서지고 빗물에 씻기면서 진흙 속에 파묻힌다.
세상 많은 것들이 이렇게 제 할 일을 마친 후에는 모두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낙엽을 보며 새삼 깨닫는다. 그래 그렇지! 이 모든 생명이 제 이름대로 살다가 그 끝을 보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세상 어느 죽음도 헛되지 않다는 것을 떠올리자 숙연해졌다.
떨어지는 낙엽 하나도 산속 어딘가에서 거름이 되어 숲의 또 다른 나무들에게 풀들에게 새로운 생명의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붙어 있는 낙엽이 살아 있는 것인가, 떨어진 낙엽은 죽은 것인가. 한 생명의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의 시작이 되어주고 생명을 이어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떨어진 낙엽이 죽었다고 볼 수 있을까. 그것이 또 다른 생명의 양분이 되고 있지 않은가.
죽는 것이 아니라 순환이지 않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화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생명, 어느 사람의 마지막 순간도 홀대할 것이 아니다. 또한 호상도 요절도 없는 것 아닐까. 그냥 육체의 죽음이다. 존재의 사라짐이 아니라, 다른 존재로의 변화인 것이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하늘 아래 모든 것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윤도현의 노랫말이 떠올랐다. 이 세상 아름다운 것들이 그리 오래가지 못함을 알면서도, 그 죽음 앞에 우리가 얼마나 교만한지. 살아있다는 아름다움에 매료될 것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맞이해야할 그 죽음이란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 설레는 새 삶의 시작인 것을 제대로 알고 싶다. 그리고 그 죽음이 우리에게 언제 찾아오더라도 슬프지 않을 만큼 건강하게 알차게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살아가는 동안도 겸허하게 살며 가을 낙엽이 주는 의미를 기억하고 싶다.
예배해야 할 이유를 배우고 가장 앞서 지켜야 야 할 성직자의 본분이 있는 내가 지금 그냥 걷고만 있다. 그리고 여기 선교사인 리사 부부가 함께 걷고 있다. 이들 선교사 부부와 목사인 나는 안식일에 여기, 길 위에서 그저 걷고 있다. 걷는 것이 전부인 우리들에게 예배는, 걸으면서 만나는 이들과 사랑을 나눔 그것이었다.
예배는 이미 살아 있었다. 예배를 하기 위해 굳이 모이고, 그 안에서 형식을 갖추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우린 찬양하며 걷고 있다. 성경을 이야기 하며 걸었고, 사랑하며 걸었다. 걷고 있는 우리는 매일 걷는 것을 잘 하기 위해, 그 길에서 만나는 이들과 사랑을 나누며 걷는 것에 집중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안에서 그분과 이미 하나임을 경험하고 있다. 감히 말하기는 그 걸음속에서 관계 맺음이 예배였다.
우리는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로 숙소를 정했다. 후안마 일행과 함께 알베르게 옆에 있는 호텔 바(Bar)에 가서 순례자 메뉴로 저녁 식사를 했다. 바(Bar)에 오가는 길에도 또 돌아와서도 우리와 후안마 일행은 서로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힘들고 지치는 ‘길’이라는 여정에서 남는 것은 사람뿐인 듯 하다. 그 하루의 피곤을 잘 아는 순례자들이 서로의 어깨를 한 번 만져주고, 안아주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지 모른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은 선물이고 천사의 도움이 아니고 무엇이랴.
긴 여정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나의 여행길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이 맴버들과 서서히 정리를 해야 한다. 매 순간 여기 있는 소중한 친구들과 정성껏 인사 해야겠다.
서른 네 번 째 날.
Palas de Rei - Arzua 29km. 아르수아 Arzua
29km. 오랜 만에 오래 걸었다. 많이 힘들었다. 오후까지 장갑을 벗지 못할 만큼 날도 많이 추웠다. 멜리데에서 뿔뽀(Pulpo/문어)를 먹어 보겠다는 의지 하나로 모두 열심히 걸었다. 뿔뽀를 먹으러 가는 길에 후안마 일행과 동행했다. 뿔뽀는 정말 맛있었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무교동의 매콤 달콤한 낙지가 눈앞에 아른거렸고 입가엔 침이 고였다.
우리 일행은 평소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점점 걸음이 느려졌고 힘이 들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영훈이와 지혜씨가 훨씬 앞서가고 있었고 나와 어머님은 너무 지쳐 있었다. 두 사람이 먼저 도착해서 식사를 준비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저만치 앞에서 영훈이가 되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된 일인가 물었더니, 날이 어두워지자 지혜씨가 어머님 걱정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영훈이가 걱정이 되었던지, 우리와 함께 걷기 위해 다시 되돌아왔고 지혜씨는 식사를 준비하러 먼저 가기로 한 것이었다. 다시 돌아온 영훈이는 어머님께 힘을 북돋우며 걸었다. 어머님도 훨씬 나아지신 것 같았다. 사실 나도 지쳐서 어머님께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하고 있는 찰나였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우리는 지혜씨도 다시 만났다. 날이 너무 어두운데다 가로등마저 없어 앞이 보이지 않자 지혜씨도 더는 혼자서 가지 못하고 우리를 기다렸던 것이다. 결국 넷이서 걸었고, 영훈이가 조금 앞서서 마을로 들어가 알베르게를 찾아냈다. 영훈이는 짐을 풀고 우리들에게 돌아와서 동행해 주었다.
알베르게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바(Bar)가 있었는데, 식사를 하고 있던 스페인 일행들이 알베르게로 들어가는 우리를 알아보고는, 후안마와 라껠이 숙소까지 와서 식당의 위치를 말해주었다. 오늘은 너무 지쳐서 식사를 만들어 먹을 힘조차 없기도 했는데 잘되었다 싶었다. 그리고는 라껠이 안아주면서 괜찮냐며 다독여 주었다. 눈물 나게 고마웠다. 어린친구의 품이 따스했다. 그 사이 지혜씨는 지치신 어머님의 온 몸을 마사지 해드렸다. 영훈이와 둘이서 바(Bar) 에 다녀왔다. 며칠 만에 먹어보는 순례자 메뉴. 꿀맛이었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보니 후안마 일행들이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영훈이에게 저들이 모여 있는 데로 가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져 보라고 했다. 이들은 늘 그렇듯이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결코 대화를 중단하지 않았다. 서로 대화를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저들을 통해 배운다. 마음이 열려있는 한 언어는 이미 문제가 아니었다.
지혜씨는 내일 여정을 어머님의 속도에 맞추겠다고 한다.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딸이 아름다웠다. 영훈, 지혜씨와 어머님, 리사 부부에게 간식으로라도 마음을 주고 싶었다.
오늘은 영훈이가 종일 기특했다. 알베르게에 지혜씨를 먼저 보내고 다시 길을 돌아오기도 하고. 또 알베르게를 찾아내고는 다시 뛰어와서 함께 걸어주기도 하고. 대견했다. 지치고 힘든 길을 걸을 때, 누군가 옆에서 걷고 있기만 해도 힘이 난다. 실로 걷는 내내, 혼자인 때가 결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