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엔 까미노 민정 15

까미노 나를 부르다

by 강민정

서른 한 번째 날.

Triacastela - Sarria 17km. 사리아 Sarria

오전 8시 20분 출발. 오후 3시 도착.

쉴 만한 곳을 찾지 못해 오랫동안 쉬지 못하고 걸었다. 무엇보다 앞서 걷고 있는 영훈씨를 따라 걸어야 했기 때문에 숨이 가빴다. 그의 가방에는 고작 간식꺼리 밖에 없었기에, 배가 고플까 걱정이 되었다. 노력은 했으나 어찌나 빠르던지, 마을 어귀에 도착한 그는 한 시간 삼십분이나 우리를 기다렸다고 했다.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고, 잘 걸었다고 환히 웃어 주는 그가 고맙고, 또 한 편 그 젊음이 많이 부러웠다.

알베르게를 찾아 올라가는 동안 지혜씨가 자신의 스틱 두 개를 어머님께 드려 스틱을 짚고 걸을 수 있게 도와 드렸다. 맨 앞에 영훈씨가 걷고, 지혜씨, 그리고 어머님과 내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쿵’ 하며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어머님이 내 옆으로 쓰러지셨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일이었기에 분명히 어머님이 졸도하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어머님을 세우려고 하는데도 가방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잘 되지 않았다. 지혜씨가 조용히 다가왔다.

어머님 얼굴쪽에 다가가더니 “엄마~~ 창피하지?~” 하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도 어머님은 절대로 땅에서 움직이지 않고 길게 차려 자세로 엎드려 계셨다.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웠고, 피식 웃음도 났지만 크게 웃을 수 없었다. 입을 틀어 막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 때 어머님께서 웃음을 참으시면서 슬그머니 일어나셨다. 우리는 어머님을 부축해서 옆에 있던 돌 벤치에 앉게 도와 드렸다. 영훈씨는 멀리 앞서 걷느라 떨어져 있어서 이 상황을 자세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님께서 쳐다보시면서 “참지 말고 웃어~” 라고 하시며 본인도 웃으셨다. 당황스러웠다. 어머님이 쓰고 있던 모자의 챙이 길어서 다행이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어머님의 얼굴이 바로 시멘트 바닥에 닿을 뻔 했고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기다리고 있는 영훈씨에게로 걸어갔다. “세 분이 무슨 사진을 그렇게 찍으셨어요?” 하고 묻는 바람에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어머님은 그렇게 말하는 영훈씨에게 “어, 내가 땅 좀 샀거든. 그래서 도장 좀 찍고 왔어.” 하시는 것이었다. 그 순간 모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숙소에 도착 하자마자 밥을 지어 배를 든든히 채웠다. 따끈하게 만든 채소 샐러드와 지혜씨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오징어 국을 곁들여 먹었다. 뼛속까지 진하게 전해지는 따스한 국물 맛. 피곤이 싹 풀리는 것 같았다. 행복했다.

식사를 하고 침실로 올라왔더니 아시아 사람이 한 분이 계셨다. 우린 첫눈에 “한국분이시죠?” 했다. 진옥님이라고 하셨다. 하루에 40km 정도씩을 걸으셨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오늘 알베르게는 네 명이 한 팀을 이룬 후안마 일행과 또 다른 순례자 한 명을 포함해서 스페인 사람이 5명. 그리고 한국인이 다섯 명. 핀란드인 리사 부부. 스위스인 마누, 그리고 독일인 죠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였다.

이 길에서 만난 아시아인은 자신타를 제외하고 모두 한국인이었다. 이렇게 한국을 알리게 되는 것이구나 싶었다. 나 하나 걷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미지가 곧 국가 이미지가 되는 것이라 생각해보니 조심스럽기도 하고 또 잘 해야겠다는 약간의 책임감마저 들기도 했다.

지혜씨가 라껠이 나를 아래층에서 부른다고 해서 내려가 보려고 하는 그 때, 마침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가 왜 우리에게 왔을까 하고 궁금했다. 옆 자리에 앉게 하고 아픈 발을 만져주며 이런 저런 말을 걸어보았다. 발가락 상태를 보니 너무 안 좋아 보였다. 라껠의 뒤꿈치는 완전히 벗겨져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새로 밴드를 덧대 주었다.

라껠은 영어단어를 많이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단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대화를 중단한다거나 다른 화제로 돌리지 않았다. 라껠은 못 알아들으면 못 알아듣는다고 이야기 했다. “아이. 돈. 언. 더. 스. 탠. 드~" 이렇게 또박또박 말하면서 오히려 넉살 좋게 웃으며 우리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우리도 이 친구가 더 좋아졌다.

후안마도 잠깐 우리 방으로 들어 왔었다. 자신의 방에 콘센트가 없었는지 휴대폰 충전기를 우리 침실에 가져다가 꽂으면서 영훈씨에게 내일 아침 챙겨달라고 부탁을 하고 갔다. 모두 가까운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어느새 시간은 10시가 되었고, 알베르게가 소등을 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복병이 있었으니, 죠였다. 그가 그 시각까지 알베르게에 들어오지 않아서 오스피탈레로가 몇 번씩 침실로 와서 확인을 하다 지쳐 끝내 퇴근을 해 버린 듯 했다. 그래서 우리도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어서 와야 할 텐데.



서른 두 번째 날.

Sarria - Portmarin 21km. Portomarin 알베르게

오전 8시 30분 출발. 오후 4시 도착.

지난 밤 잠자리에 들기 바로 직전에 죠가 돌아왔다. 소등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창 밖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민정~민정~” 죠였다. 잠속으로 로그인 중이었는데 그 소리를 듣자마자 “어~” 하며 벌떡 일어나 잠결에 창문을 열려고 했다. 열리지 않는 나무 창문 사이로 펄쩍펄쩍 뛰며 두 손을 흔드는 죠가 보였다. 아마도 문이 잠겨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영훈씨가 일어나서 “목사님 제가 나가 볼께요.” 하고는 재빠르게 아래층으로 갔다. 잠시 후 죠가 올라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내가 누운 침대 앞으로 와서 벌 서는 아이처럼 두 팔을 번쩍 들고 무릎을 꿇었다. 어디 다녀왔냐고 물었더니, 인터넷카페에 갔었는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고 하는 것이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누나인양 야단을 치듯이 웃으며 말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기분이 참 묘했다. 문이 잠겼으니, 누군가를 불러야 했을 것이다. 만일 내 상황이었다면 영훈씨를 찾았겠지. 타국인이 나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생각해보니, 가끔씩 나도 그를 보고는 한국말을 하고 있을 때가 있었다. 영훈씨도 죠가 이젠 우리를 친구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고 했었다. 따스한 느낌이었다.

어제 시장을 보면서, 영훈이(이제는 좀 그를 가깝게 부를 때가 된 것 같다.)가 만다린(귤)을 먹고 싶어 했다. 만다린 한 망을 샀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지만 좀처럼 그 무게가 줄지 않았다. 토요일과 주일에 슈퍼마켓이 문을 열지 않을 것을 예상해서 이틀 정도 먹을 식량을 구입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가방에 나누어지고도 보조가방까지 꺼냈다. 그랬더니 영훈이가 보조가방을 자기 가방에 매달라는 것이다.

어머님께서 옆에서 들으시더니, 영훈이에게 짐을 주고 미안한 마음을 버리라고 하셨다. 그런데도 왠지 미안한 마음에 내가 들고 나갔는데 결국 알베르게 문 앞에서 보조가방을 영훈이의 가방에 매달았다. 영훈이는 “목사님 몸이나 챙겨서 오세요.” 하면서 성큼성큼 앞서 걷기 시작했다. 덕분에 천천히 가볍게 걸을 수 있었다.

때론 추워서 때론 배가 고파서 바(Bar)에 들리기도 했는데, 이젠 그냥 걷던 곳, 길 위에 앉아서 나름의 여유를 즐길 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소풍을 다니듯이 느림을 즐기며 우리는 간식을 내어놓고 나누고 있다.

너무 무리하게 멀리까지 걷지 않고 자기 생각에만 몰두하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며 걷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비가 오지 않는 날씨도 한 몫하고 있다.


사는 동안에도 여유 있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의 차이가 분명 있는 것을 잘 안다. 그러고 보니, 그 동안 걸으면서 참 여유가 없었다. 혼자 걷는다는 이유로, 혹은 생각할 것이 많다는 이유로, 쉼의 참 맛을 보지 못하고 걸을 때가 있었다. 하루 종일 걷기만 하면서도 여유가 없다니 걷기 전에는 상상조차 못한 일이다.


동네에 들어오는 길에 너무나 멋진 다리가 있었다. 정말 멋졌다. 그러나 내겐 너무 높고 너무 긴 다리. 보는 것 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눈 앞의 강은, 나의 눈엔 그저 한강만큼 커 보였다. 저기를 어떻게 건너란 말이야. 어머님도 현기증이 난다고 하셨다. 눈에 훤히 보이는 강과 다리의 길이가 눈 앞으로 가까이 왔다 멀어졌다 했다. 정말 아찔했다.

어머님은 이미 걷기 시작하셨고, 영훈이와 지혜씨도 걷기 시작했기 때문에 한숨 지으며 서 있을 수 없었다. 아무 것도 보지 않고 그저 어머니 뒤를 따라서 걸었다. 눈을 들어 사방 어디를 보아도 시선을 둘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멀리 동네의 높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을 쳐다보며 걸었더니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걸었다. 그렇지만 곧 눈에서는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 내리고, 정신은 점점 혼미해 졌다. 아이고 세상에...이런 몸이 정말 정말 싫었다. 아무리 건널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며 걸어도, 가슴은 조여 오고, 숨은 차오고, 거리는 아직도 멀다는 생각에 눈물이 철철 흐르니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흐르는 눈물을 닦을 정신도 없이 꺼이꺼이 소리를 내면서 건넜다.

다리의 끝에 다다라서 겨우 겨우 눈 앞에 보이는 계단에 앉아 뒤를 돌아보았다. 그제야 크게 숨을 쉬었다. 그야말로 멋진 경관이 펼쳐져 있었다. 나에게는 숨이 멎을 것 같이 힘들었던 그 길을, 뒤돌아서 보니 장관이었다. 슬펐다. 즐길 수 없었던 내 자신이 너무 슬프긴 했지만, 뒤에 그것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다행이다 여겼다.

다시 크게 숨을 들이 키며 쉬고 있는데, 마을로 들어서기 위해 우리가 앉아 있던 계단을 올라가자고 누군가 제안을 했다. 돌아서 가더라도 그냥 옆길로 가면 좋겠는데. 하지만 일행 모두가 가겠다고 하니 혼자 다른 길로 가자고 하기가 멋쩍었다. 그래서 모두의 의견대로 계단을 오르기로 했다.

얼핏 보니, 중간에 한 번 정도 쉴 수 있도록 계단 폭이 넓게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설마 이걸 못 오르랴 하는 마음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계단의 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생각과 동시에 다리가 저려오고 가슴이 조여오면서 계단 뒤쪽에서 누가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 계단을 손으로 짚어가며 기어 올랐다. 그 처참한 모습은 영훈이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히고 말았다. 그렇게 씩씩하게 건넜던 그 새벽의 철교 경험은 어느새 멀리 사라지고 없었다.


알베르게의 순례자들은 자국의 음식을 요리해 먹으며 즐거워했다. 스페인 일행도 밥을 지어 먹었다. 생소한 외국인들이 우리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쌀로 밥을 짓는 것이 낯설었고 또 신기했고 또 가깝게 느껴졌다. 어떻게 먹는지 서로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한국 팀은 찌개를 끓이고 볶음밥으로 저녁 식사를 풍성하게 즐겼다. 좋은 음식 솜씨는 아니더라도 이것저것 재료를 이용해서 한국음식을 만드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늘은 스페인 친구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라껠이 나를 곧잘 따른다. 지혜씨와 많은 대화를 했다. 어머니와 딸, 그 오묘한 관계. 우리는 딸들만이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에 크게 공감했으나, 현실에서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많이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성도 했다. 말처럼 쉽지 않은 우리의 일상을. 이 세상에 어머니와 딸만큼 잘 통할 사이도 없으련만 왜 그렇게 힘든 관계인 것인지.

저녁나절 동네로 나와 커피숍에 들렀다. 우리는 각자 그동안 나름대로 공동체에 대해 막연한 꿈이나마 꾸면서 살아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육 문제에 대해, 함께 뜻 있는 이들이 모여서 건강하게 꾸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나누었다.

다들 아직 젊지만 결혼 후에 아이들 교육문제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교육비의 문제도 그 중의 하나였다. 결국 자본주의 안에서 뼈 빠지게 돈 벌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 에 없는 현실을 한탄했다.

그런 현실이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할 지라도 우리만은 그리 살지 말자고, 이 현실에 반하여 살아보자는 그런 소망과 도전을 갖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대화에 끼어 들어가 그런 소망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아직 내 스스로 그런 도전적인 삶 안으로 녹아든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국이든 그 어느 곳이든 지금의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가 자연 안에서 순리에 적응하면서 느리게 사는 삶을 시작할 때에야 비로소 할 말이 생길 것이다. 다만, 이 삶에 대해, 동경에 그치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싶다.


내가 꿈꾸는 삶이, 상생을 이루지 못하는 천박한 삶의 유형들에 부분적이나마 저항하는 것이라면 그러하다. 이미 살아내고 있는 이들이 있는 한, 결코 꿈이 아니라고 믿는다. 근시일내에 그 삶에 동참하게 될 것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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