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나를 부르다
스물여덟 번째 날.
Ponferrada - Villafranca del Bierzo 24km. 빌라 프랑카 델 비에르소 Villafranca del Bierzo
오전 8시 30분경 출발. 오후 4시 빌라 프랑카 델 비에르소 도착
영훈 씨는 내게 천사이고 선물이다. 그렇게 믿으며 함께 걷고 있다. 서로에게 천사로 왔고, 또 그 임무를 마쳤을 때에는 자신의 본연의 길로 떠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도착한 알베르게에서는 웃는 모습이 선한 스페인 남자와 예쁜 여자를 만났다. 정말 잘 어울려 보였다. 리사 부부와 죠도 함께 있다.
부엌이 없어서 바(Bar)로 이동했다. 어제 못다 한 인사를 나누려고 우리는 지혜 씨와 함께 나갔다. 그동안 걸었던 길에 대해 나눈 수다와 맛있는 식사가 만족스러웠다.
길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만나게 되며 추억이 생기고 훈훈해지고 기분을 훈훈하게 만드는 것 같다. 적절한 때에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만남이 선물임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 길에서는 지나치는 들풀도 그저 지나칠 수만은 없으니, 하물며 사람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이 길 어디쯤에서 만났을 지라도 또 어디쯤에서 다시 헤어지게 될 지라도 그 순간이 소중했다. 내 인생 어느 순간 어느 상황에 만나더라도 내 보물이고, 선물이고, 천사라는 것임을 기억해야겠다.
내가 목회를 이곳에서 해도 괜찮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회가 다른 것이 아니라, 삶 안에 하나 님이 원하시는 것들이 녹아들면 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걷는 내내 꿈을 꾸었다.
스페인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작은 집을 짓고 나그네들을 위한 방, 가족 방, 바(Bar), 마당을 가지고 농사짓고 밥 짓고 글 쓰고 노래하며 부모님과 함께 사는 꿈이었다. 내 삶은 앞으로 모두 꿈꾸는 대로 현실이 될 것이란 생각에 전율이 일었다.
스물아홉 번째 날.
Villafranca del Bierzo - O cebreiro 29km. 오 세브레이로 O Cebreiro
오전 8시 50분 출발. 오후 6시 오 세브레이로 도착.
아침 내내 분주하게 가방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영훈씨가 달려와 리사 부부가 밖에서 나를 기다린다고 전해주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리사 부부가 전도지 같은 것을 주었다는 것이다.
들어보니 두 분이 기독교인이라 하길래 우리도 기독인이라고 말했더니만 진심으로 기뻐하셨다면서 목사라고 고백하라고 달려 들어온 것이었다. 쑥스러웠지만 함께 나가서 나의 종교를 말씀드렸다. 그분들은 깜짝 놀라셨고,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오늘 유씨의 무릎이 많이 좋지 않아서 오 세브레이로까지 가기 어려울 것 같다 하시며 이별 인사를 하셨다. 그래서 기념촬영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헤어졌다.
지혜씨와 어머님은 다음 알베르게로 배낭을 먼저 보내기로 했다. 오늘 여정이 힘들기 때문에 다소 무리가 된다면 다음 알베르게로 짐을 보내주는 서비스가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짐을 지고 가기로 했다. 이 길을 걸으며 생각한 것 중 하나는 나의 짐은 내가 끝까지 지고 걷겠다는 것이었다. 때로 나누게 될 상황이 오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는 내가 가져온 짐들은 내가 매고 다녔다. 먹을 것들은 나누어서 지더라도, 내가 가져온 짐은 오로지 내 몫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모든 순례자가 그랬다. 아무리 남자 친구라도 대신 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가방을 멜 수 있는 몸은 하나이니까.
29km 정도를 걸었다. 비바람, 짙은 안개, 무섭기까지 했던 엄청난 경사의 오르막길. 긴 시간이었다. 험난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보인 산세는 정말 아름다웠다. 정말 아름다운 길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것저것 서러움이 몰려와서 갑자기 주체하지 못할 눈물이 흘렀다.
도대체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아. 기억도 나지 않는 웬 사랑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말로 차마 다 못 할 어처구니없는 감정 같은 것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낼 모래 40인 나는 정말 꺼이꺼이 펑펑 울었다.
떠나간 사랑이 그리운 건지, 가족이 그리운 건지, 내 인생에서 찾지 못한 그 어떤 것이 그리운 건지, 도대체 무엇이 그립고 서러운 것인지. 한바탕 울고 나자 이젠 저 청년 앞에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할 것 다 하고 난 이제야 내가 가벼워 보일까 걱정이 된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경사 길을 오를 때 두 개의 마을을 지나쳐 버리는 완만해 보이는 산길로 택해서 올랐다. 자전거 길이었다. 그 길 중간쯤에서 쉬어 가려고 뒤를 돌아섰을 때, 반가운 얼굴들이 저만치 나타났다. 리사 부부였다. 오늘 아침이 마지막일까 싶어서 사진 찍고 헤어졌는데 다시 만나니 반갑기가 그지없었다.
1996년부터 10년간 러시아에서 그리고 10년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선교를 하였다고 한다. 아름다운 부부는 처음 만시아에서 만난 뒤로 매일 부러워하던 부부인데 게다가 선교사라고 하니 필연적 만남 같다. 두 분이 오늘 내게 천사였다.
반면 영훈씨에게 나는 너무 큰 짐이었던 하루였다. 두 분이 앞서 걸어가시면서 알베르게까지 안내해 주셨다. 두 분은 전에도 이 길을 걸으신 적이 있으셔서인지 여유 있어 보였다. 정상에 오를 때까지 쉬엄쉬엄 그러나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시면서 아직 젊은데도 힘들어하는 나까지 챙겨주시며 걸으셨다. 천사였다.
지혜씨 모녀도 함께 머물렀다. ‘대한민국 대표급 엄마표 유머’를 지니신 지혜씨 어머님은 이제 우리 모두의 어머님이 되셨다. 어머님의 유머는 만나는 순간순간 웃음을 멈출 수 없게 했다.
서른 번째 날.
O Cebreiro - Triacastela 21km. 트리카 스테라 Triacastela
오후 4시 도착.
폰페라다 오던 길에 짧은 인사만 했었던 남성분이 지난밤, 옆 침대에서 그의 친구들과 멈추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피곤한 데다가, 10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었기에 황당했고 잠을 못 자겠고 해서 약간 신경이 날카로워졌었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나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힘겹게 잠에 들었다. 제발 조금만 옆 사람도 생각해 주면 좋으련만 참 불쾌한 밤이었다.
이른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고 부엌으로 갔다. 한 남자분이 커피를 드시고 계셨다. 나 또한 구수한 커피 한 잔을 준비해서 샛별이 아직 반짝이는 하늘을 보러 밖으로 나갔다. 짙푸른 하늘과 그 위의 별들이 더없이 밝고 멋졌다. 예쁜 별들을 보면서 오늘은 날씨가 좋기를 기도했다.
푸른 하늘과 신선한 공기로 산뜻해진 몸과 마음으로 알베르게 문을 열려고 하는 그때, 아차 싶었다. 현관문이 자동으로 잠겨버린 것이었다. 아이고 이를 어쩐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틀어막고, 얼른 부엌 쪽으로 가서 아무렇지 않은 듯 작은 창문을 두드렸다. 다행히 안에는 아까 그 남자분이 계셔서 도움을 청할 수 있었다. 그분은 웃으시며 문을 열어주셨다. 고맙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고개를 들지 못하고 부엌으로 조용히 들어왔다.
잠시 후, 누군가 부엌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다가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나와 똑같이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고 밖에 나갔던 사람이 또 있었던 것이다. 안쪽의 현관문을 한 발로 벌려서 조심스레 받치고 동시에 밖으로 열리는 두 번째 문을 열어 그분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드렸다. 한참 웃었다.
그러는 사이 언제나처럼 죠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러 왔다. 폰페라다에서 만난 스페인 모녀와 비에르소 산장에서 만난 커플도 부엌으로 들어왔다. 통성명을 한 후, 네 사람의 이름을 외웠다. 후안마와 마리 커플, 루시아와 라껠 모녀. 하지만 네 사람은 내 이름 하나 외우기를 힘들어했다. 듣기에도 생소한 언어여서 더욱 그랬을 것이라 이해되었다. 그저 이름 하나 외워줬을 뿐인데 머리 좋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먼저 밖으로 나왔는데 영훈씨는 그제야 스페인 일행들과 인사하며 이름을 주고받고 있어서 결국, 일행 모두가 함께 출발했다. 스페인 모녀, 대한민국 모녀. 모녀들의 출발은 보기에 참 아름다웠다. 부러웠다.
라껠의 발이 많이 불편해 보였다. 걷는 것은 잘하는 것 같은데, 운동화가 작은지 꺾어 신고 걷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 가서 자리에 앉아 쉬어야 했고, 한 남자가 그녀를 도와주었다. 어머니 루시아는 발이 아픈 딸은 다른 나그네에게 맡기고 자신의 걸음에 충실했다.
남자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라껠의 상처에 밴드를 붙여주었다. 그의 이름이 궁금했다. 헤수스라고 했다. 어쩜 이름도 헤수스(Jesus)라니. 그는 라켈의 발을 치료해주고는 성큼성큼 그의 길로 먼저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마리가 힘들어하며 걸음을 잘 떼지 못했다. 후안마는 그런 그녀를 부축하기보다는 그냥 앞서서 걸어갈 뿐이었다. 영훈씨가 조용히 말했다. “보세요, 어머니가 딸을 버리고,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를 버려도 저는 목사님 안 버리잖아요. 전 목사님 안 버릴 거예요.” 어찌나 웃음이 나고 또 미안했는지 모른다. 늘 버릇처럼 말했었다. ‘나 버리지 마라~ 이젠 혼자 걷기 싫다.’
나는 비교적 짧은 거리인데도 여느 때와 같이 당연하다는 듯 제일 늦게 도착했다. 어제 함께 알베르게에서 묵었던 사람들 중 90퍼센트 정도는 다시 모인 것 같았다. 오랜만에 영훈씨와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그동안 우리는 따로 걷거나, 내가 울기라도 하면 격려를 해주거나 하는 정도여서 며칠 째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영훈씨는, 걸음이 너무 느린 나를 달래며 걸어보고자 이런 방법 저런 방법 바꾸어가며 노력했다고 했다. 혼자 앞서 걷다가 기다려도 보고, 계속 대화를 나누며 걸어도 보고, 뒤에서 걸어도 보고, 여러 가지 방법을 해 봤는데 오늘은 대화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멋진 친구인가. 고마웠다.
지혜씨 모녀와의 동행도 내게 힘이 된다. 어머님의 생생한 유머감각은 시간이 갈수록 내용도 다채롭다. 모두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라껠과 루시아 모녀와 후안마와 마리 커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좋아지는 사람들이다. 혼자 걷고 있지 않음만도 고마운데 좋은 이들과 함께 하니 더욱 행복하다.
지혜씨는 공대 졸업 후 연구소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녀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는데 유치원 교사였다. 그녀의 결심이 그녀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그녀는 새로운 삼십대를 맞는 중요한 시점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이곳을 찾은 것이었다. 잘 해내리라 믿는다.
헤수스 생각이 났다. 자신이 가진 것으로 남을 돕는 사람. 마르코(Marco/벨기에)와 첸초의 친구에게 한방 파스를 붙여주었던 일이 생각난다. 그리고 산티 부부와 친구들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던 것도. 내가 나눌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몇 배로 사랑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내가 받은 사랑도 만나게 될 또 다른 이들과 나누게 될 것이다. 이 길이 마음을 나누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