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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미 Oct 29. 2021

유부남 사랑 고백 퇴치법 2탄

밥은 먹고 다니지 마라



지난 1편에서 말씀드렸듯이 전 6년 동안 성인반 영어 강사로 일을 했었죠. 진상 유부남 가루상씨를 소개한 이후 많은 분들이 다음 진상을 알려달라며 수없이 DM으로 문의를 주신 적은 없지만 2탄을 들고 왔습니다.


가루상 사건 이후 유부남들에게 철벽을 쳤더니만 한동안 태평성대가 찾아왔지요. 안일했던 탓일까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두 번째 진상이 2년 만에 등장했어요.


11시 클래스에 한가해 보이는 60대 할아버지 한 분이 등록을 했는데 이미 일 년 이상 학원을 다니면서 어린 학생들과 마치 ‘우리는 깐부야~’ 이런 표정으로 친구도 먹으시고 비록 영어는 못하셨지만 리액션계의 대부기도 했지요. 아무리 단답형을 말해도 김흥국으로 빙의되어 '아아~', '으아~' 추임새를 넣어 주셨는데 알고보니 그 분은 판소리 명창으로 무려 인간 문화재였어요.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강의도 하셨고요.


2주째 되는 토요일 꼭두새벽부터 휴대폰이 울려 확인해보니 ‘굿모닝, 나의 여왕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라고 문화재씨가 문자를 보냈더라고요. 휴대폰 만든 사람 누구야? 나와!


자 다같이 천천히 심호흡 시작! 후우~~ 하아아~~ 후우~~~ 하아아아~


'나의 여왕님'은 상당히 거슬리는데 노령의 문화재한테 ‘이게 무슨 애티튜드야?’ 이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유니클로 보고 놀란다고 가루상 때문에 너무 과민해진 건가 싶기도 하여 난감하더라고요. 그저 친분의 표현 방식이겠거니 짧게 ‘문화재씨도 좋은 주말 보내세요.’ 답문을 보냈더니 다음 날부터 3주 동안 문자로 판소리를 하더라고요. 그 길고 절절했던 내용을 요약하면 여왕님은 참으로 아름다우시고 그리하여 반했단 거였죠. 와아~ 예쁜 한글만 써있는데 왜 이리 기분이 더럽지? 주변에 인간 문화재한테 고백 받아본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해 터놓을 곳도 없고 내가 이승에서 이런 경험까지 해보는구나 환장하겠더라고요. '이리 오너라~ 맞고 놀즈아! 진상 진상 진상 내 진상이야~'


이거이 인간 문화재가 아니라 문화재 인간이었구만! 양심이 있어야지 원빈은 저렇게 생겼는데도 돈을 준다고 난린데 아니~ 이 문화재 인간은 그 나이에 그 지경으로 생겨서 뭬야? 심지어 빈손으로 여왕님? 100억 가꼬와! 돈은 받고 저놈을 매우 쳐라~!!


상대가 내 피를 말렸는데 왜 내가 매너를 지켜야 하나요? 돌직구를 강속구로 날렸어요. 나 니 여왕님 아니니까 앞으로 판소리 문자 보내지 마시라고.


이 인간이 명창 아니랄까봐 대응도 쩌렁쩌렁했는데, 제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서 탈퇴하겠다고 그걸 협박이라고 하더라고요. 롸잇 나우 탈퇴하라 했더니 멈칫하면서 지금 내가 부인이랑 사이가 얼마나 안 좋은 줄 선생님이 아냐고 징징거려요. 이 무형 문화재가 진짜 무로 돌아가고 싶나... 김장철마다 생각나게 어디서 질척거려? 그게 나랑 뭔 상관이냐니까 이번엔 몰려다니는 그룹의 어린 수강생들한테 제 흉을 보고 다니더라고요. 아으 동동다리~ 그냥 다소곳이 사약을 들라! 근데 보는 눈이 다 거기서 거기라 주변 학생들이 서서히 문화재를 피하기 시작하니까 말할 상대가 없어진 문화재 인간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요. 아아~ 아허이~~ 으흐흐~ 어어이히 (협찬: 여인천하 ost)


인간 문화재랑 싸우는 게 저라고 속편한 일은 아니었지만 고등학생, 대학생 제자들에게도 이랬겠구나 생각이 스치면서 갸들은 이거 그냥 당하고만 있었겠는데 싶으니까 싸우자! 이기자! 무~찌르자! 가 되더라고요. 무생채로 만들어 버려도 시원찮을 인간!


이런 희귀 사연까지 겪었으니 이번 생엔 노모어 진상이라 확신했건만 한 마리 더 겪었답니다. 다음에~ 이너피스가 찾아와 수전증이 사라질 때 천천히 들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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