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남 사랑 고백 퇴치법 1탄
밥은 먹고 다니니?
결혼 전 6년 동안 성인반 영어 강사를 했었어요. 토익이나 토플처럼 시험 관련 강의를 하면 20-30대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들이 수강생의 주를 이루지만 제가 일했던 곳은 스피킹, 리스닝 위주의 실용 영어를 강의해 20대부터 80대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수업을 들으러 왔었지요.
내 돈 내고 시간 쪼개 수업 들으러 오는 수강생치고 진상인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었어요. 어딜 가나 똥 밟는 상황은 있기 마련. 간만에 썰 좀 풀어볼까요?
쉬는 시간 한 선생님이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날벼락을 동반한 봉변을 당하려는지 “야 인연아~ 너 누구야?”라는 중년 여성의 고요 속의 외침이 울려 퍼지는 거예요. 지금 이순간 마법처럼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쏘머즈가 되어 통화 내용을 경청하게 되었죠. 당황한 선생님이 “저기 누구시죠? 어디에 전화하신 거죠?”라고 되물었지만 “너 인연~ 일하는 데가 어디야?”라며 프로 협박러처럼 캐묻더군요. 인생 몰입도 Best 3 안에 드는 진귀한 순간이었어요. 그 중년 여성은 대답할 시간 따위 주지 않고, “너 누군데 남의 남편한테 문자질이야? 어디서 오라 가라야?” 박력도 넘치셨죠. 그 선생님이 끼부릴 상은 아니었는데 남모르는 재주가 있었나보다며 '임성한 받고 김은희 걸어!' 모두가 신명나기 시작했어요.
선생님은 비련한 목소리로 “저기 진정하시고, 어디에 전화하셨는지... 저 선생님이거든요.” “뭐? 야 인연아 니가 선생이야? 니가 무슨 선생이야? 선생이 남의 남편한테 내일 꼭 오라고 문자질을 해?” 이 말을 끝으로 인연을 소중히 여기시는 사모님은 뭔가 잘못 짚었다 싶었는지 갑자기 폭언을 멈추더라고요. 아줌마! 조금만 더 힘을 내! 우린 좀 더 화끈한 명장면을 원한다고! 우리의 가련한 선생님은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저기... 여기 영어 학원이고요, 저는 영어 선생님이에요. 오해하신 거 같은데 결석하지 마시라고 문자보낸 거예요.” 아쉽게도 사태 파악이 잽쌌던 사모님은 “아 네. 알겠습니다.”하고 황급히 전화를 끊었어요. 바람둥이 남편 휴대폰을 뒤져보다가 ‘내일은 꼭 나오세요.’라는 선생님의 문자를 술집 마담의 문자로 오해한 것이었죠.
마무리가 싱거워 별점 3개 반에 그쳤던 사건이지만 끼부리는 유부남 수강생에겐 아무리 장기 결석을 해도 문자를 보내면 안된다는 교훈을 남겼죠.
다음으로 제가 겪은 유부남 진상 스토리를 들어볼까요? 자~ 일단 위로의 박수를 치면서 다같이 구호도 외쳐보아요~ 울지마! 울지마!
성인반 강의 시작한 지 3개월 되었을 때의 일이에요. 모 대기업 차장님께서 어찌나 얌전한 얼굴로 수업 내내 호응을 잘해주시던지 고마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종강날엔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길래 흔쾌히 근처에 있는 인도 레스토랑에서 만나 탄두리 치킨을 뜯어 먹고 있었어요. 내 정신 세계가 뜯길 줄은 꿈에도 모른 채...별다른 특이점 없이 그저 일상 얘기를 주고받다가 퇴근하고 뭐하냐 묻길래 개봉작이던 ‘맘마미아’를 보러 간다고 대답했죠. 식사가 다 끝날 무렵 눈빛이 느글느글해지더니 익숙한 발연기로 “어? 선생님~ 잠깐 손 좀 줘 보세요.”라며 개수작질을 하더라고요. 왜냐고 물으니 자기가 손금을 볼 줄 안다고요. “아아~ 저도 손금 볼 줄 알아요.”라며 노련하게 차단했는데 슬쩍 제 손을 잡고 손바닥을 누르면서 이 부위에 살이 많으면 자식복이 좋다고 말하더라고요. 네놈이 가루상이더냐? 가루가 될 상이냐고?
느낌은 쎄한데 이 정도로 종강날 지랄을 떨자니 유난인가도 싶어 그렇게 밥을 먹고 헤어졌어요. 퇴근 후 맘마미아를 보고 집에 와서 IT 강국답게 컴퓨터를 켜고 개인 홈페이지와 메일을 확인했는데, 했는데...그런데......
명조체로 가지런히 ‘가루상(가명)입니다.’라는 메일이 와 있더라고요. 무슨 메일까지 보냈댜 하면서 열어 본 메일엔 입틀막이 아니면 읽을 수 없는 엄청난 문장이 쓰여 있었어요.
‘지금쯤 맘마미아를 보며 재미있어할 우리 윤미를 생각하니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지네.’ .........우리.... 윤미이이???
너 내가 가루가 될 상이라 했지? 사람이 당황하니까 처음엔 1음절 밖에 안 나오대요. 야! 뭐? 와~ 쒯! 샹~ 가루샹~
분노가 무르익자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찍는 것도 아닌데 방구석에서 진짜 독백이 터지더라고요. “이쉬키 미친 거 아니야? 뭐어? 우리 윤미? 와아~ 이 가루샹쉬키!” 안 그래도 아까 지랄을 못한 게 한으로 남을 것 같았는데 절호의 찬스가 왔으니 답장을 안 할 수 없잖아요? 어디서 감히 반말이냐며 사과 필요 없고 해봐야 받아줄 생각 없으니까 할 생각도 말라고, 내 눈앞에 띄지 말라고 친절한 금자씨처럼 메일을 보냈죠. 강력하게 나올 줄 몰랐는지 벌벌 떨면서 회사나 가정에 알려질까봐 깨갱대던 꼴이란... 너 내가 뇌섹녀인 줄 알고 풍기문란을 일으켰나본데 네놈이 건드린 건 뇌관이야! 손금만 볼 줄 알았지 사람 볼 줄 몰랐구나?
그 후로 유부남 수강생과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식사를 하지 않는 철칙이 생겼다지요.
진상을 갱신하는 유부남들은 그 후로도 몇 명 더 있었는데 한가할 때 다시 이야기 들고 돌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