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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듣는치과의사
Feb 07. 2024
우리 병원 건물에는 요양원과 데이케어센터가 있다.
아침 출근길에 건물 입구에서 센터로
줄지어 들어가는 어르신들을 뵙는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직원들의 안내를 받는 것을 보면 나이만 다르지 마치 유치원 같다.
갈수록 직원 수도 늘고
할머님 할아버님도 늘어나는 것 같다.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치매 인구도 늘어난다는 것을 나는 매일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우리 병원에도 고령의 환자분들이 많다.
어느 날 수척하신 할머니 한 분이
따님과 함께 방문하셨다.
오랜 기간 치료하지 않은 탓에 무너진 잇몸 사이로
돌출된 치아 뿌리들이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살릴 수 있는 치아가 없어서 결국 남은 치아들을
다 빼고 틀니를 해야 했다.
빼야 할 치아를 가늠해 보니 20개는 될 듯싶었다.
발치만 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할머니는 같은 건물에 있는 요양원에 입원 중이셨다.
“어머니께서 치아를 빼는 게 힘들지 않으실까요?
연세가 많으셔서 걱정이에요.”
곁에 선 따님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하다.
차트를 넘겨보니 연세가 곧 아흔이시다.
게다가 치매도 진단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 번에 2, 3개씩 며칠 나누어서 빼면
큰 무리 없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목소리에 낮고 온화한 숨을 태워
최대한 안심하도록 말하고자 했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는 될 수 있으면
따뜻한 말이 오가는 게 좋다.
건조한 내 말 한마디에 감정이
실리지 않았다 해도 그 말은 흩어지지 않고
환자의 귀와 눈가에 내려앉아 스며들기 때문이다.
차분히 설명을 다 듣고 나서야
따님은 어머님을 모시고 돌아갔다.
다시 내원했을 때 할머님은 따님이 아닌
요양보호사와 진료를 받으러 오셨다.
발치는 수척한 육체의 힘듦을 고려하여
하루에 2,3개씩 나누어 천천히 뽑기로 했다.
나이가 들고 몸이 쇠약해지면
인간은 심적으로 약자가 된다.
약자는 역설적으로 강하다.
보통의 강자는 약자에게
보호 본능을 느끼기 때문이다.
몸이 쇠잔해갈수록 그래서 노인은
짜증이 많은 아이로 변해가는 것이다.
치매 환자들은 감정의 기복이 더욱 심하다.
할머님은 요양보호사와
선생님의 부축을 받고 힘겹게 진료실로 들어섰다.
혼자서는 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치료 도중 양치질도 혼자 못하셔서
누군가 옆에서 도와드려야만 했다.
양치질을 할 때마다 다물어지지 않는
입꼬리 한쪽으로 줄줄 물이 흘렀다.
그런데도 다행히 할머님은 치료를 잘 받으셨다.
발치 치료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환자가 몰려 할머님의 발치할 치아에 마취를 하고
잠깐 다른 환자분을 보러 갔다.
생각보다 환자의 치료가 길어져
죄송하게도 할머님을 기다리게 했다.
신경이 쓰여 진료 중 힐끗 돌아보니
할머님의 표정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시간이 길어져 요양보호사 분과같이 대기실에서
기다리시라고 진료실 직원이 안내를 해드렸다.
다른 환자의 진료를 서둘러 마치고
할머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그 자리에 할머님은 계시지 않았다.
그런데 진료 체어에 갈색 물질이
희끗하게 묻어있는 게 아닌가.
이게 뭔가 해서 닦아보았더니 그것은 변이었다.
치매가 있고 몸이 쇠약해지면
배변활동을 조절하지 못한다.
그래서 요양원에 있는 어르신들은
기저귀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날 할머님은 기저귀를 차고 오지 않으신 것이다.
요양보호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대기실에서 환자분을 다시 진료 체어로
모시고 온 것이다.
남자 요양보호사가 할머님을 부축하여
체어에 앉히고 나서야 할머니가
변을 본 것을 알게 되었다.
“원장님 어머님이 변을 보신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당황한 듯 얼굴을 붉힌 요양보호사가
나직하고 빠른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요양원까지 다시 다녀오시면
시간도 걸리고 어머님이나 보호사님도
힘드실 거 같은데 제가 빨리 발치해 드릴게요.”
배변을 본 채로 치료를 하는 것이
나로서는 불편한 일이나,
할머니 입장을 생각해 보면 당장
서둘러 치료해 드리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을 했다.
오랜 치과의사 생활을 했지만
환자분이 변을 보신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빨리 치료를 해드리지 못해 생긴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 불만 없이 진료 체어를 정리하고
소독해 주신 선생님에게도 너무 감사했다.
그 후 다행히 할머니는 문제없이
나머지 발치까지 잘 마쳤다.
발치가 이루어진 후에는 임시틀니를
만들어서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할머님이 임시틀니 만들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하기 싫다고
떼를 쓰는 통에 도무지 치료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선은 보호자와 상담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해서 일단 이날 진료는 마무리하였다.
이튿날 할머니가 다시 내원했을 때는
첫날 뵈었던 따님과 함께였다.
대기실에서 모녀가 손을 꼭 잡고 기다리고 계셨다.
어쩐지 오늘 어머님의 표정이 무척 해맑아 보였다.
요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다 보니
한 번씩 아들딸이 병원을 찾을 때마다 그렇게
마음이 아이처럼 밝아지는 것이다.
서로 손을 꼭 쥔 그 모습을 보니
어머님의 마음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상담실로 두 분을 모셨다.
“저번에 치과에서 일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님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신다.
나는 할머님의 민망한 이야기를 꺼내기
미안하여 작게 이야기를 한다.
“아 네. 어머님이 힘드시지요.”
“다름이 아니라 어머님이 발치는 다 하셨고 임시틀니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입안에 틀을 넣고 높낮이를 맞추어야 하는데
어머님이 자꾸 안 하시려고 하시네요.”
나는 지금 상황을 따님에게 말씀드렸다.
“엄마 지금 이가 없어서 매일 죽만 먹잖아요.
이제 이거 만들어서 고기나 맛난 거 먹어야지요.
엄마 잘할 수 있지? 한번 다시 해보자.”
따님이 어머니를 아이 다루듯이 손을 잡고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담을 마친 후 할머님의 한 손은 따님이
다른 한 손은 내가 붙잡고 진료실로 걸어간다.
“엄마 나 보고 싶어서 치료 안 받으려고 했네. 선생님이랑 내 손 잡고 싶어서 못 걷는 척하는 거 아니야?”
따님이 치매 어머님께 싱거운 농담을 건넨다.
그날 할머님은 치료를 잘 받고 가셨다.
앞으로 남은 치료가 걱정이긴
하지만 한고비를 넘겼다.
치매가 걸리면 근래의 기억부터 잊어버린다고 한다.
예를 들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사위나 며느리, 아들과 딸, 배우자, 부모님 순이라고 한다.
본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마지막이다.
할머님의 기억은 사라지지만 사랑이란 본능만은 잊히지 않고 여전히 몸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할머님이 따님을 만나고 손을 잡으며 좋아하시는 표정이 모녀가 병원 복도를 돌아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눈가에 아른거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