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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듣는치과의사 Feb 08. 2024

아버지의 응급실

당신에게 아버지란?


크리스마스 연휴 마지막 날

늦은 저녁 시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아내의 외할아버지가 소천하셔서 장례식장으로 갔다.

문상을 드리고 집에 와서 너무 피곤한

나머지 깊이 잠이 들었다.

이번 여행 기간 동안 아침 조깅을 하다

보도블록 턱에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그 이후 아침 달리기를 못했기에

평소보다 늦게 기상했다.

일어나서 핸드폰을 보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빨간 부재중 전화 표시와 모르는 번호까지

여러 건의 전화가 와 있었다.

'날이 추워서 병원에 수도관이 터졌나?

이름부터 아침 무슨 일이지?'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아버지께 급히 전화를 드렸다.

 

그러나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버님이 헬스장에서 쓰러지셔서

119 구급차 안입니다.

지금 병원 응급실로 가는 길입니다.”

다급한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아 나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지금 어디 병원으로 가시나요?

아버지 상태는 어떤가요? “

“0000 병원으로 가고 있습니다.

상태가 좋지 않으셔서 머리 검사를

해보셔야 할 거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거기로 바로 가겠습니다.”

 

다급히 전화를 끊고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전화받고 나도 지금 병원으로 가는 길이야.

이게 무슨 일이니?”

어머니의 걱정과 당황한 모습이 상상이 갔다.

“네 알았어요. 저도 빨리 갈게요.”

 

옆에 있던 아내가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본다.

“무슨 일이야? 아버지께 무슨 일 있어?”

“어 지금 쓰러지셔서 병원으로 가는 중이시라네.”

 

나는 황급히 옷과 가방을 챙기고

앱으로 택시 호출을 했다.

‘가볍게 어지러워 쓰러진 걸까? 많이 아프신 걸까?’

생각이 많은 상태로 택시 안에서의 시간은

참으로 더디게 갔다.

 

병원 정문 로비에 내려 직원분에게

응급실 위치를 다급하게 물었다.

“응급실 위치가 어디인가요?”

나의 상황을 직감적으로 알았는지

정확하게 위치를 알려주신다.

“앞으로 가서 오른쪽으로 돌면 나옵니다.”

 

응급실로 급하게 뛰어가서 말을 했다.

“저 김 00 환자분 아들입니다.”

“지금 배우자분이 오셔서 들어가 계신데

보호자는 1명만 들어가 실 수 있습니다.”

 

굳게 닫힌 응급실 문 사이로 어머니가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보인다.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니 아빠가 말을 못 해 어떻게?”

어머니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차분히 내가 말을 했다.

“엄마 보호자 1명밖에 못 들어가니 일단 나오세요.

제가 들어가서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어머니가 나오고 내가 응급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버지는 CT를 찍으러 가셨고

나는 응급실 의사에게 아버지 상태를 물어보았다.

현재 좌측 대뇌동맥 쪽에 문제가 생겨서

우측 반신 마비와 말을 잘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CT를 찍고 돌아오고 처음으로

아버지 모습을 보았다.

나한테 그렇게 호통을 치고

화를 내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으며

팔을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일 뿐이었다.

순간 중풍으로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시고

말씀을 더듬던 큰 이모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큰 이모부의 건강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지금 모습과 이모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보호자분 아버지 몸무게가 어떻게 되세요?

 아버님이 말씀을 못하셔서요.”

응급실 간호사가 내게 묻는다.

"아버지 75킬로 맞아요?”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며

입을 크게 벌리고 천천히 크게 말을 했다.

아버지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지만  

말을 못 하고 눈만 끔벅인다.

항상 큰 소리를 치고 자신감 넘치던

아버지가 어린아이처럼 누워서 말을 못 한다.

순간 가슴이 찡해져  울컥했다.

 

담당 의사가 CT 촬영 결과 뇌출혈은 아니고

뇌경색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MRI로 자세히 더 촬영해야 한다고 했다.

순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상태가 좋지 않아 바로 약물을 투여하고

응급수술을 진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아버지가 수술 전 검사를 받는 동안

나는 정신을 차리고 치과 실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지금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오늘 오전 진료 환자분 예약 조정을 부탁드렸다.

“지금 저희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응급실에 계십니다.

일단 출근하셔서 첫 타임 환자분들 예약 미루어 주세요.”

“아버님 상태는 어떠세요?”

“지금 응급 수술 들어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응급실 담당 신경과 의사가 보호자를 찾는다.

밤새 피곤하여 잠을 못 잔 얼굴과 말투로 의사는

수술에 대한 설명 후 동의서에 대한 서명을 받는다.

그 순간 신경과 레지던트의 짠함이 밀려오면서

환자 보호자로서는 약간의 서운한 감정이 올라왔다.

조금만 나의 이런 절박한 심정을 이해해 주며

“보호자분 많이 놀라셨죠?”라는 한마디의 말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응급실에서 동의서 서명을 다 마치고

나는 이동 침대에 누운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3층 수술실로 향했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가족을 수술실에 들여보내고 초조해하는 모습이

실제로 나의 현실이 된 것이다.

수술이 잘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나는 다시 나의 직장인 치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응급실 대기실에 계신 어머니와 교대하고

나는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그리고 치과로 전화를 했다.

“환자분 예약 언제까지 미루었어요?”

“원장님 10시 30분 환자분까지는 미루었습니다.”

“네 이제 저 치과로 들어가니까

더 이상 예약 변경 안 하셔도 됩니다.”

 

택시 안에서 온갖 생각이 들었다.

‘수술 후 아버지의 상태는 어떨까?

후유증으로 아버지는 잘 걸을 수 있을까?’

나는 의사로서의 책임감에 아버지와 함께 하지 못하고

직장으로 와 나의 다른 환자분들을 진료해야만 했다.

나의 마음은 아버지가 수술받는 병원에 있었지만

나의 몸은 내가 진료하는 병원에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가부장적이시고 욕도 잘하신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랑 대화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밖에서는 매너 있고 젠틀한 분이지만

집에서는 호랑이 같은 분이었다.

한 번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는 평소대로

무언가를 사 먹으려고 용돈을 달라고 했다.

그때 손님이 오셨을 때였다.

손님이 가신 후 나는 아버지께

손바닥이 터지도록 맞았고

늦은 밤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갔던 기억이 난다.

이유를 알 수 없이 맞은 나는 억울하고 무서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가 때린 이유는

손님이 오셨을 때 내가 기회를 노려

용돈을 받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돈을 달라고 한 나는 손님이 오셔서 그런 것이 아니라

원래 하던 대로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본인 고집이 강하고 누구에게라도

호통을 치며 강인하던 아버지였다.

 

병원으로 돌아오고 나서 환자를 보면서도

내 정신 한쪽은 아버지 생각으로 가득했다.

창가로 비스듬히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늦은 오후였다.

진료실 문이 열리면서 힘겹게 느린 걸음으로

들어오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50대 중반 정도라고 했으나

보기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였다.

깡마른 얼굴, 오랫동안 낮볕을 보지 못해 창백하리만큼 하얀 얼굴,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무겁게 끔벅이는 눈, 남자는 혼자 걷지 못해 아내의 부축을 받아 겨우

한 걸음씩 걸을 수 있었다.

남자는 비스듬히 들어오는 창가의

햇살을 받은 얼굴은 튀어나온 광대에

그림자를 지우며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그 남자 환자분을 치료하며 수술 후 아버지 모습을 상상하며 순간 가슴이 찡해졌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끊어질 수 없는 인연이다.

나와 아버지의 관계는

사랑과 증오가 얽힌 애증의 관계라 생각한다.

지난 세월이 사랑이었건, 원망이었건

막상 죽음이라는 사건에 맞닥뜨리니 순간

아버지에 대한 나의 모든 감정은

한 줌의 재처럼 타 사라지는 듯했다.

그때 내게 남은 감정은 오직 염려였으며,

그것은 순수하고 본질적인 인간이 인간으로서 느끼는 진실한 사랑의 감정이었다.

시계가 멈춘 듯 그날 하루는 내게 가장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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