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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듣는치과의사 Apr 15. 2024

나는 왜 치과의사가 되었을까?

18년 치과의사 생활을 돌아보며


나는 군 면제다.

친구들은 군 면제를 부러워했지만,

면제를 받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어릴 적 나는 아토피를 심하게 앓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 이불에 굳은 피딱지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몸을 긁다 밤새 잠을 못 자 학창 시절

나는 늘 피곤함에 절어 있었다.

나는 아토피를 감추려고 한여름에도

긴팔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한여름 진물이 난 자리에 땀이 배면

그때의 쓰라림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사흘이 멀다고 병원을 찾던

내게 의사의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았다.

의사의 말은 건조했다.

치료는 해주겠지만 나의 고통까지 공감할 시간은

없다는 말이 행동에서 들리는 듯했다.

 

고등학교 때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책상에 앉았는데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가슴을 움켜쥐고 가쁜 숨을 내쉬는데

마침 집에 온 아버지가 나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겨질 수 있었다.

동네 의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기흉이었다.

나는 바로 대학병원으로 또 한 번 이송되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응급실 한구석 차가운 침대에서

부분 마취를 시행하고 폐에 튜브를 달았다.

기흉은 키가 크고 마른 남자에게 자주 발생한다.

폐 가장 위쪽에 폐를 둘러싼 얇은 막이 있는데

이 작은 공기주머니가 찢어지면서 발생한다.

당시 나는 공부 스트레스에다 피부염까지

심해진 터라 몸 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았다.

결국 기흉으로 난생처음 입원을 하게 되었다.

폐에 튜브를 달고 힘없이 걸어 다녔다.

그때도 나는 친절한 의사를 만나지 못했다.


인생 두 번째 입원도 느닷없이 찾아왔다.

음식을 잘 못 먹었는지 급체를 했는데

처음에는 이러다 낫겠지 싶어 참았다.

하지만 낫기는커녕 상황은 심각해져

변까지 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단순 급체라 하기엔 상황이 심각해 정밀 검사를 했다.

하지만 뚜렷한 원인을 발견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

끙끙 앓고 있는데 침대로 다가온 레지던트가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콧구멍 속으로

튜브를 밀어 넣었다.

위에 관을 집어넣어서 음식물을 빼내려 했던 것 같다.

어린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코로 튜브가 들어가니

놀라고 아픈 나머지 몸에 심한 경기를 일으켰다.

그때 레지던트는 나를 진정시키려 하기는커녕

뒤통수를 치며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억은 다르다.

의사 입장에서는 치료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어린 나이였던 내게 그날의 기억은 썩 좋지가 않다

태어나 경험한 두 번의 입원으로 의사라는

직업인들에 대한 나쁜 선입견이 생겼다.

‘친절하고 실력 있는 의사는 tv 속에만

존재하는 건가?’ 아마 이때였던 것 같다.

내가 의사가 된다면 최소한 환자가 자기 상태를

잘 이해하도록 성의껏 설명하는 의사가 되자고 말이다.

 

고통은 당시에는 정말 피하고 싶은 순간이지만

그 고통의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성장해 있다.

친구들이 병역 면제를 받아서 부럽다고 하지만

나는 건강한 몸으로 당당히 군대에 가고 싶었다.

원래 내 꿈은 전투기 조종사였다.

어릴 적부터 하늘을 동경했다.

건강치 못한 몸 때문에 진로를 바꿀 수밖에 없었고,

삼수 끝에 의대에 진학할 수 있는 점수를 받았다.

원서를 놓고 고민할 때였다.

아버지께서 치의학과에 넣어보라고 권하셨다.

당신께서 치과 사무장으로 오래 일을 해보셔서 치과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잘 알고 계셨다.

나중에 개원할 때도 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생각이 치과 쪽으로 바뀌었다.

비행기 조종사가 꿈이었던 청년은 그렇게

치과의사가 되었다.

 

나는 고정된 내 공간에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5살 어린아이가 넘어지면서

앞니가 부러져 울며 들어오기도 하고,

100세가 넘으신 할아버지가 위태롭게 매달린

두세 개의 치아로는 더 버틸 수 없어

틀니를 하러 오시기도 한다.

우리 치과에 음식을 배달하는 배달원도

환자로 오고, 소개를 받고 일부러

먼 시골에서 나를 찾아오기도 한다.

 

치과는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지만,

그전에 환자와 의료인이 사람으로

만나는 공간임이 전제되어야 한다.

환자와 의사 간의 위계가 있으면

환자는 의료인을 경계하고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얘기해 주지 않는다.

치과는 환자들이 병원에 머무르는 시간이 다른 진료과목에 비해 무척 길다.

어떤 치료의 경우에는 2시간 넘게 치료를 할 때도 있다.

적어도 30분은 걸린다.

환자와의 시간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적인 서로의 면모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치과의사는 다른 진료과목 의사보다

더 친절하고 인간적인 직업인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지혜는 지식과 경험이 합쳐질 때 생긴다고 한다.

지식이 많다고 하여 지혜로운 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환자를 만나면서 각기 다른 성격, 개성, 인생사를 가진 이들의 감정을 다뤄가며

긴 치료를 반복하는 동안

내 안의 나를 많이 들여다보게 된다.

환자에게 다정한 나도 있지만,

삐딱하고 뾰족한 나도 있다.

환자를 통해 모난 나를 알아차릴 때마다

얼마나 뜨끔했는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환자는 스승이고,

진료는 환자가 주는 가르침이다.

나는 이 귀한 경험들을 치과라는 공간에서 배운다.

 

치과는 참 어려운 곳이다.

무서워서 어렵고, 어떤 이에게는 부담이 되어서 어렵다.

한 번에 수십수백만 원도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경계심을 갖는 곳이 치과다 보니

여러모로 무섭고 어렵게 다가오는 공간인 것 같다.

이런 두려움을 풀어주는 것도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편안한 실내 장식이나 소품들로

기분을 느긋하게 해 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환자들이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속마음을 알아차려

그들이 편안하도록 먼저 이야기를 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의사도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같은 체온을 가지고 있다.

나는 사람 대 사람으로 환자를 만나고자 노력한다.

치료할 때 환자의 기운을 북돋우며

긴장을 풀어주려 노력한다.

말을 걸지 않으면 상대도 말을 해오지 않는다.

마음을 줘야 그 마음의 길을 타고

상대의 마음도 오는 것이다.

환자에게 의사의 가벼운 응원은 큰 힘이 될 수 있다.

 

힘들 때 나 또한 환자에게 에너지를 받기도 한다.

완전 틀니를 하신 80세 고령의 할머니가

6개월에 한 번씩 검진을 받으러 오신다.

흰머리에 등이 굽은 할머니는 쇠잔한 기력에도 맑은 웃음은 아이 같다. 우리 병원의 오랜 단골이다.

검진을 잊지 않고 틀니를 살피러 오신다.

할머니의 검진 날짜는 핸드폰이 아니라

종이 위에 꾹꾹 눌러 적은 글씨로 기록되어 있다.

오실 때면 꼭 박카스 한 상자를 들고

병원 데스크 직원에게 건네신다.

그만 사 오시라 말씀드려도 한사코 이번에도

할머니의 손에는 박카스 한 박스가 들려있다.

이 뭉클한 감정의 근원은 인간에 대한

정중한 예의와 사랑이 아닐까 싶다.

연세가 나보다 훨씬 많은 분이지만

도움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예의를 다하려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나는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를 배운다.

박카스는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교환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진료를 마치면서 할머님은 정말 상냥한 말투로

“원장님 건강하세요. 밥 잘 먹게 해 주어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해주신다.

인자하고 아이 같은 표정을 지닌 할머니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진료로 지친 나에게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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