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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틈 Dec 02. 2024

엄마는 맹수가 되었어!

나도 사람인지라...


설거지하는 남편 옆에서 딸기를 씻었다.

올해 첫 하우스 딸기라 크고 맛있다.

그래서 비싸다.

첫째를 배에 품고 입덧을 하던 시기

이 비싼 하우스 딸기로 버텼던 겨울.

그때를 추억하며 딸기 씻은 물을 따라 버리

꼭지를 따내었다.


딸기냄새(?)를 맡은 막내가 부엌으로 출동했다.

그런 막내에게 아빠가 입을 열었다.


"OO아, 엄마가 너희 주려고 딸기 씻는다~!"

"와~~~!! 엄마, 나 많이 줘!"

"너희는 좋겠다. 이런 엄마가 옆에 있어서."

"근데 아빠, 엄마 요즘 무서워.

엄마가 맹수가 됐어."




아무 말하지 않았다.

나의 침묵은 일종의 암묵적 긍정언어였다.

남편은 "에이~ 설마!"라며 내 편을 들고자 했지만

정작 나에게는 일말의 반박을 할 의지도 없었다.


매일 같이 아이와의 대화를 글로 쓰고 있어서

크게 오해하시는 분도 계셨겠다.

실망하실 수도 있지만 이쯤에서 고백해야겠다.



그렇다.

나도 사람이다.

글만 보면 매일 인상 한 번 안 쓰고

나긋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타이를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SNS를 통해 는 모습과 현실이 다르듯이 말이다.


아이 앞에서 맹수가 되는 나를 떠올려 본다.

맹수도 그런 맹수가 없다.

마음을 사정없이 할퀴고 물고 늘어진다.

머리로는 나도 안다.

나에게는 이 아이들에게 털 끝만큼의 상처도

줄 권리가 없다는 것을.

오히려 내 아이이기 때문에 더 사랑해 주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는 사실도 말이다.


하지만 불쑥 솟아오르는 내 감정을 주하지 못할 때

부모로서 미숙함 느끼곤 한다.

때의 수치심도 함께 아이에게 쏟아버린다.


이런 내가 아이와 차분히 대화한 경험을 쓴다.

어쩌면 이것은 또 하나의 다짐일 것이다.

다시는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나에 대한 불만을 아이에게 쏟아내지 않겠다.

부모로서 떳떳한 모습으로 아이 앞에 서겠다.



지금 아이에게 그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왔다.


"미안, 엄마가 요사이 짜증도, 화도 많았던 것 같아.

그건 인정. 우리 OO이가 많이 불안했겠다."

"좀 그렇긴 하지. 그래도 내가 잘못한 것도 있으니까."

"네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심하게 화낼 정도의 일이었을까? 엄만 우리 OO이가 그렇게 잘못하는 아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누나도 그렇고."

"그럼 딸기 큰 거 나한테 주면 엄마를 용서해 주지."

"아니, 딸기는 둘 다 공평하기 줄 거야!"



나도 사람이다.

사람이라 실수도, 잘못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어른의 용기"를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부모로서 아이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떳떳한 모습이기 때문에.


그래서 말인데

OO아, 오늘도 미안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무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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