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한 방에서 한 이불 덮고 지내던 시절, 밤 9시면 어김없이 서로 읽어달라는 그림책에 파묻히곤 했다. 짧으면 30분, 길면 1시간. 그렇게 우린 그림책을 사이에 두고 알콩달콩 귀여운 신경전을 벌였다.(현실은 티격태격... 느낌 아니까...)
아이들에게 읽어줄 그림책을 고르다 보면 기억 저편에 있던,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한 그림책이 눈에 띄곤 했다. 나도 어렸을 때 책을 읽었구나, 새삼 신기했다. 이런게 운명인가 봐, 유치한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이 자라고 두 남매의 초등입학과 동시에 각자의 방이 생겼다. 그림책과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였을까. 두 방을 오가며 읽어주는 것이 버거워졌다. 매일 해야 하는 과제를 급히 끝내고 나면 시계는 벌써 10시를 가리켰다. 그럼 내 입에서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말.
"키 안큰다. 일찍 자라."
그나마 운 좋게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책을 펼쳐 놓으면 큰 아이도 이제 그림책 보다 문고판 책을 먼저 집어 들었다. 자연스럽게 나와 남편도 각자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사이 작은 아이는 엄마가 읽어주는 게 편하다며 들고 온 책이 <흔한 남매>... 고운 소리가 나갈 리 없는 선택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책장을 올려다보았다. 매번 책 정리할 때마다 버리지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보다 결국 다시 꽂아놓게 되었던 우리의 그림책. 아이가 기어 다닐 때부터 한 번도 잊은 적 없던 추억. 그림책을 올려다보는 내 눈에는 어쩌면 이제는 그 추억을 잊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서려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다녔던 유치원에서 평생에 한번 있는 졸업생 초대행사에 참석했다. 그림책과 숲을 사랑하시는 두 부부 작가님이 꾸려가는 곳이라 나와 아이들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은 곳이다.
작년에 졸업한 막내아이가 함께 1년을 보낸 담임 선생님과 타임캡슐을 열어보는 동안 부모님들은 강당에 모여 그림책으로 이야기를 꽃피웠다.
후~ 불면 멀리 사라져 가는 민들레 꽃씨를 넘어 그림책이 열렸다. 종이 한 장 한 장 사이로 마음을 흔드는 그림과 말이 오갔다. 그것은 내 눈과 귀로 서서히 스며들어와내 마음에 탁! 스파크를 튀게 했다.
"살다 보면,
많은 것들이 사라진단다.
변하기도 하고,
휙 지나가 버리지.
단, 한 가지만 빼고 말이야."
나에게 그 한 가지는 뭘까. 물론 그림책에서 말한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도 맞겠다.
하지만 나는... 나는...
그 한 가지가 무언지 고민하게 해 준 "그림책"이 아닐까.
이 자리에서 약속한다.
나는 매일 저녁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줄 것이다.
나는 다시 아이들과 지지고 볶던 그 이불속으로 기꺼이 들어갈 것이다.
나는 시간이 가면 더 이상 나에게 간지럼도 허용하지 않을 사춘기를 맞을 아이들을 위해 더 격하게 읽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