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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틈 Nov 08. 2024

엄마, 그 책은 안돼요!

매번 쌓을 수만은 없어서...


"이 책 이제 안 읽잖아.

사겠다는 사람 있을 때 보내주자."

"싫어! 이 책 안 돼!

내가 아끼는 거란 말이야!"


아이야,

그 책 보는 걸 못 봤구먼...




가을은 독서의 계절...

이라고 책만 쌓았다간 큰코다친다.

얼마 전 분명 책 정리를 한 번 한 것 같은데

어느새 책장은 또다시 꽉 찼다.

그렇다고 읽을거리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꼭 내 옷장 같다.

옷은 많은데 입을 것은 없는 상태.

둘이 꼭 닮았다.


연년생 남매가 있지만 책 수준도, 취향도 다르다 보니

처분하지 못 책들이 있다.

큰맘 먹고 처분하려고

아이들이 다시 펼쳐보고는 제자리에 꽂아 놓기를 반복.

급기야는 거실 바닥 여기저기 책 벽돌이 쌓여갔다.


책을 팔 때도 매번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딩동!"

휴대폰 알람음에 얼른 채팅창을 열었다.

몇 주 전 당ㄱ*에 올린 책을 본 이웃님이

그 책을 사고자 한다는 연락이었다.


 팔릴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싶어 포장하려는데

아이가 눈치채고 달려와서 책을 얼른 낚아챘다.

내가 읽어줄 때 빼고는 들여다보지 않았던 책을

판다고 하면 싫다고 빼앗는 이건 무슨 심보란 말인가.


"집에 공간이 생겨야 또 새 책 들이지.

너도 그 편이 훨씬 좋지 않아?"

"싫어, 나 이 책 좋아한단 말이야!"

"이 책은 네가 읽는 걸 못 봤는데?"

"엄마가 읽어줄 때 좋은 책이란 말이야!!"


그때 알았다.

혼자 읽을 때 좋은 책이 있고

엄마가 읽어줘서 좋은 책이 따로 있다는 걸.

그러고 보니 아이가 팔기 싫어하는 책의 대부분이

그림책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매일 자기 전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서로 내 품을 차지하려 싸울 때면

엄마 다리가 두 개인 건 너희를 한쪽 다리에 하나씩

앉히기 위해서라고 달랬다.

찢어지지도 않는 다리 안으로 두 아이를 데려와

하나의 품으로 둘을 안았다.

가 책을 읽어주는 동안 남매는

형형색색의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알 수 없는 엄마의 말을 그림의 힘을 빌려 이해하면서

왠지 모를 희열을 느꼈으리라.

작가님이 숨겨둔 신기한 무언가를 그림에서 발견할 때면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어쩌면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은 엄마와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너희에게 그런 존재였단 말이지...?'




책을 사기로 했던 분에게 정중히 사과 후

판매 글을 내렸다.

과감히 식탁을 치우고 그곳을 그림책 공간으로 꾸다.

아이들이 자랄 때 맞춰 하나 둘 구해둔 책들.

자기 전 뽑아와 서로 읽어달라고 조르던 책들.

하도 읽어서 제본이 벌어지고 손 때 묻은 책들.

그런 책들로 아이들만의 세상만들어 주었다.


가을이 되니 해가 이곳 아이들 공간까지 들어온다.

볕으로 데워진 바닥에 엉덩이를 데고 앉아 놀다

그림책이 눈에 들어오면 얼른 뽑아 읽곤 한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 이 책 읽어주세요."


이제 혼자 읽을 때도 됐잖아...





사진출처 : 픽사베이 무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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