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
지금,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코로나로 2020년 죠슈아의 12월 24일도 고독해졌다. 혼자 침대에 누워 천정을 쏘아보고 있노라니 Christmas is all Around가 Billy Mack의 감미롭고 유쾌한 목소리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태림이와 함께 들었던 노래임을 기억해 낸 죠슈아는 ‘태림인 뭐 하고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흥분하고 있을 때, 태림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죠슈아~ 너무 보고 싶다! 그래서, 나 지금 죠슈아를 만나러 갈 거야! 혹시, 도이 노부히로 감독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영화 봤어? 지금 보려고 하는데, 같이 볼까?”라고 태림이 달콤하게 유혹하자 기분 좋아진 죠슈아가 바로 대답한다.
“그래~ 이런 것이 연말의 분위기이고, 이런 것이 진정한 친구의 우정이라고 할 수 있지~ 태림! 영화 보고 다시 연락할게!”
영화를 다 본 후 죠슈아의 머릿속에는 유독 해바라기의 잔상이 남아 있었다. 여주인공 미오와 남주인공 타쿠미가 넓게 펼쳐진 해바라기 밭 안에서 결혼을 약속하며 키스를 나눴고, 훗날 아들 유우지에게 엄마를 기억하라는 의미로 앞마당에 심은 씨앗도 해바라기였다.
‘나에게도 기다리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찼던 사랑이 있었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묘하게도 Don McLean의 Vicent가 감미롭고 절절하게 흘러나온다.
대학시절의 죠슈아가, 빈 강의실에 앉아 Don McLean의 Vicent를 들으면서 빈센트 반 고흐의 <Fifteen Sunflowers in a vase-꽃병에 꽂힌 15송이의 해바라기>, (1888) 작품을 모작하고 있는 그(죠슈아의 첫사랑)의 옆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이내 해바라기 작품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다.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에는 14송이의 해바라기라고 쓰여있어 우리에게 혼돈을 주는데, 이 편지를 쓴 후 추가로 더 그렸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프랑스 남동부에 위치한 Arles(아를)의 작고 노란 집에서 <Fifteen Sunflowers in a vase-꽃병에 꽂힌 15송이의 해바라기>, (1888)의 작품을 감쪽같이 똑같이 그리고 있는 고흐의 모습이 보인다. 도대체 왜 그는 같은 그림을 또다시 재현해내고 있는 것일까?
고갱과 같이 작업을 하며 화가공동체 생활을 하던 고흐는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흐리멍덩한 술주정뱅이로 표현한 고갱에게 분노하며 큰 싸움을 하게 되고, 자신의 오른쪽 귀(귓불이라는 설도 있다)를 잘라 버렸다.
이 소식을 접한 고갱은 즉시 아를의 노란 집을 떠나버렸지만 (이는, 1888년 12월 24일로 고흐와 같이 산지 9주 만의 일이다), 고흐가 자신을 위해 그려 방에 걸어주었던 30호짜리 해바라기 그림을 갖고 싶다고 고흐의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고흐는 이 그림 대신 (자네가 편지에 ’ 노란 바탕에 그린 해바라기’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걸 갖고 싶다고 썼더군. (중략) 그동안 일어났던 일을 생각해 볼 때 이 그림을 자네에게 줄 수 없을 것 같네. 그러나 이것을 선택한 자네의 안목을 높이 평가하는 뜻에서 똑같은 해바라기 그림을 정확히 다시 그려주겠네. (중략) – 고흐가 고갱에게 쓴 편지 中 일부), 복제한 해바라기 그림을 고갱에게 선물한다.
(고흐는 고갱이 떠나고 나서 고갱 방에 걸어주었던 해바라기 그림 2점을 거의 그대로 복제한 3점의 그림[서명이 없는 1점이 그려진 시기는 고갱이 떠나기 전에 완성했거나 떠나기 전부터 그리고 있었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을 더 그렸는데, 2점은 Vincent 서명의 위치가 다르게 나머지 1점은 서명이 없이 그렸고 실물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형태나 색상의 사용이 아주 약간 다르게 표현되었다. -고흐는 이를 répétition 반복이라 말했다. 이로써 고갱과 관련된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은 총 7점이다.)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에 푹 빠져 있던 죠슈아는, 태림에게 전화하기로 한 사실을 깨닫고 정신이 번쩍 뜨인다.
“태림!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반 고흐의 해바라기>에서 해바라기는 기다림과 설렘, 희망, 일편단심의 변치 않는 순수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 같아~ 사실 내가 고흐의 해바라기를 애정 하기 시작한 건 대학시절의 내 첫사랑 덕분이긴 하지만 말이야!”라고 죠슈아가 말하자, 태림은 깔깔깔 웃더니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다.
“죠슈아~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는 다른 그림과 마찬가지로, 불꽃같이 소용돌이치는 그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어! 하지만 미술사적으로 더 큰 의미는, 꽃을 통해 삶의 덧없음을 표현해냈던 당시 예술가들의 관념에서 벗어났다는 데 있었다고 해~ 꽃이 피어나고 시든 모습뿐만 아니라, 끝없이 무수한 해바라기 씨들을 통해서 삶의 영원성을 이야기 한 천재성에 있다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아!”
그러자 죠슈아가, “맞아~ 사랑하는 나의 빈센트 반 고흐!”라고 맞장구를 친다.
죠슈아는 어둑어둑해진 밤하늘의 총총하게 빛나는 별들을 보면서 <해 뜰 무렵 밀밭에서 수확하는 사람>, (1889) 작품 속의 일꾼을 그리며 고흐가 한 말을 떠올려 본다.
“난 이 일꾼에게서 죽음의 이미지를 보았다. 하지만 이 죽음은 전혀 슬프지 않다. 모든 게 금빛으로 빛나는 한낮 밝은 태양 아래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참고 서적 빈센트 반 고흐 , 신성림 옮김《반 고흐 영혼의 편지:불꽃같은 열망과 고독한 내면의 기록》, 예담, 1999 / 마틴 베일리 , 박찬원 옮김,《반 고흐의 태양, 해바라기》, 아트북스
참고 영화 도로타 코비엘라 / 휴 웰치맨, 《Loving Vincent》,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