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젖어 강제 구매했던 『일놀놀일』
나는 책 덕후다.
머리가 아프고 숨고 싶을 때
답을 구하고 싶을 때
책만큼 무결한 의지대상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도서관을 주기적으로 찾는 편이고,
신간 코너는 꼭 살펴보는 편이다.
그중 작년쯤 대출했던『일놀놀일』이라는 책.
사실 그림이나 만화가 삽입된 책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하얀 건 종이요, 검은 건 활자인 고지식하게 글자만 빽빽이 있는 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매 꼭지의 글 앞에 웹툰처럼 만화가 삽입되어 있는 이 책에 흥미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얼른 반납해야지라고 결심한 순간
이 책에 물을 엎질러 버렸다.
평소에 대출한 책은 깨끗이 봐야 한다는 강박에 장마철에는 비닐 안에 빌린 책을 넣어 가지고 다닐 정도인데
흔히 하지 않는 대형 실수였다.
황급히 닦아봤지만 이미 책은 물은 흡수한 지 오래였다.
물은 머금고 마른 책은 2배 정도 통통해졌다.
그럼 방법은?
내가 사야지!
KBS의 도서관의 정책은 책을 오염시키거나 훼손하면 똑같은 책을 내가 구매해서 드리고,
망가진건 내가 회수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바로 이 책을 구매해서 받아서 새책으로 제출하고
물을 머금은 책은 내 소유가 되었다. 첫인상이 맘에 썩 들었던 책은 아니었기에 책을 좋아하는 나지만 엄청 기쁘진 않았다. 그래서 집 책장 한 켠에 꽂아두고 몇 달간 잊고 살았다.
그리고 최근 있었던 출간 미팅.
레퍼런스 도서에 이 책이 있었다.
엇.
물론 읽었고,
읽었다고 못해 우리 집 서재에 있고,
물에 퉁퉁 불게 한 죄로 직접 주문하고 새것과 맞교환하고 내 차지가 된 책인데.
새롭게 써야 할 내 책과 관련된 문서에 언급되다니.
엄청난 인연이 아닌가 싶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뵙는 출판사 직원분들 앞에서 호들갑을 떨 순 없었지만,
책과 사람사이에도 신묘한 인연이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냉담했던 이 책과 첫 대면의 감정을 이겨내고 다시 펼쳐 들었다.
이게 웬 걸.
책 끝을 접을 인사이트들이 굉장히 많았다.
(내 기준) 그림이 너무 많고, 얻어갈 거리가 많이 없을 거라는 오만한 과거의 나 자신이 후회됐다.
그래서 할 일이 몹시 많은 오늘이지만,
인상 깊은 문장은 하나하나 직접 타이핑해서 옮겨 적어두었다.
사람과의 인연은 때로 부대끼고 상처를 남기지만
책과의 인연은 나를 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감사하다.
*내 인생의 방향과 목표가 명확하지 않고 인생의 가치관이 흐릿할수록, 또렷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린다. 그 목소리를 무른 나를 예리하게 파고들어 힘들게 하곤 했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빈틈이 많고 주관이 없을수록 누군가의 개입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을
*“(중략) 마감 없는 삶보단 마감 있는 삶이 낫고, 괴로워도 주기적으로 시작과 끝이 있는 게, 끝없이 펼쳐지는 자유보다 나은 것 같다.” -칼럼니스트 정성은
*최고의 영감은 마감
*이제 우리의 일상은 인내하며 생산하는 것과 소비하는 즐거움으로 나뉘지 않는다. 생산을 하면서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한다. (중략) 생산 과정을 놀이로 만들 수 있을까? 돈을 버는 과정이 나를 나답게 하는 창조의 행위가 될 수 있을까?“ 『숲 속의 자본주의자』 중에서
*30년 넘게 사전을 만든 작가 안상순은 『우리말 어감사전』(유유)에서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는 시선의 향방에 있다고 말한다. 자존심의 시선은 ‘나의 밖’을 향하고 있고, 자존감의 시선은 ‘나의 안’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자존심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자존감은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더 중요하다. 즉, 자기 긍정이 타인의 평가에 기대어 있는 게 자존심이라면 오로지 스스로에 대한 평가로 이루어지는 것이 자존감이다. 그렇다면 타인의 한마디에 쉽게 무너져 내리는 나의 자존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있기는 한 걸까?
*어느 날 유튜브에서 티키틱의 <네 인생은 편집본, 내 삶은 원본>이라는 영상을 봤다. 소셜 미디어를 보면 남들은 좋은 집에서 살고, 연애도 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내 삶은 마치 편집되지 않아 지겹게 흘러가는 1인칭 CCTV 같다는 내용을 위트 있게 노래한 영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