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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실패를 대하는 자세

<오색찬란 실패담>_정지음 지음

by 편은지 피디

<젊은 ADHD의 슬픔>으로 유명한 정지음 작가의 또 다른 책이다.


스스로는 실수 투성이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정지음 작가.

책 곳곳에 솔직한 위트와 통찰이 보여서 여러 군데 필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뉴스 기사 댓글 창에서 반나절 만에 500개의 악플을 받았을 땐 부모님이 정말로 걱정되었다. 혹시 둘이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것을 아닐까……. 속상한 한편 창피하기도 했다. 욕먹는 것 자체보다 욕먹는 내 모습을 누구나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첫 번째 필사 부분.

첫 책 <젊은 ADHD의 슬픔>의 성공 후 달렸던 악플에 관한 이야기다.


악플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유명세의 높고 낮음과 무관하게 많다. 우스갯소리 아닌 우스갯소리로 "안 유명해도 공황장애가 와요."라고 얘기했던 예능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 걸 겪기에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은데 왜 저래...'라는 표정이나 말투자체가 또 큰 상처를 줄 가능성이 다분할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욕을 먹는 경우는 부지기수인데 왜 하필 공개적인 악플에 더 큰 데미지를 받는가에 대한 작가의 고찰은 '욕먹는 내 모습을 누구나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수치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악플은 공개적이다.


나를 아끼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관심 없는 사람도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여기서 온갖 잡념과 좌절이 피어난다.


*나는 인생을 상대로 일종의 블러핑 bluffing을 시도했던 것 같다. 내면적 파산 상태를 감추기 위해서. 내 젊은 날엔 후진 패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는 걸 외면하기 위해서. 오히려 다채로운 인간인 척 감정과 내 언어를 과장하고 부풀렸다.

내면적 파산 상태를 감추기 위한 블러핑.

20대 때 특히 많이 취하게 되는 행동 패턴인 것 같다.


SNS가 일상화되면서 더욱 가속화된 양식으로 행복을 자발적으로 전시하고

남의 행복을 염탐하며 내면적인 허탈감을 느끼고, 다시 또 과장된 이미지로 그것을 덮는 것의 무한 반복.


*시간이 지나 실제로 삼십 대가 된 지금, 현실은 어린 날 상상하던 납작한 행복과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나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은은하게 불행하다. 가진 것도, 되는 일도 없는 일상 속에서 그나마 덜 불행한 날을 대충 골라 행복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납작한 행복'이라는 말이 재밌었다.

기록할 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나이 정도가 되면 최소한 25평 아파트에 결혼해서 자녀 하나쯤 두고 살겠지 하는 막연한 행복에 대한 기대치. 그것을 납작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입체적이지 않은 이유는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디퓨져의 나무 스틱이 향을 뿜어내듯 여기저기서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그게 맞다고 간접적으로 배우고 깨달아 나도 모르게 뿜어내게 된 생각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그나마 덜 불행한 날을 대충 골라 행복으로 여기며 살아간다'는 씁쓸한 고찰.


*성공한 유머는 모두를 웃기지만, 실패한 유머는 모두가 웃는 가운데 딱 한 사람만을 울린다고 한다.
*물론 연애 상담은 고민 상담 자체를 좋아하는 내게도 다소 버겁고 보람 없는 일이었다. 이상하게 누구든 연애 문제에서는 자기 멋대로 하기 위해 남의 의견을 묻곤 했다. 대체 왜 그러는 건지 이해하진 못했다. 그러나 둘 사이 연애란 어차피 내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이해한 참이었다.

자기 멋대로 하기 위해 남의 의견을 묻는 사람들.

소위 말하는 '답정너'들이다.


그러나 듣고 싶은 말이 명확함에도 의견을 구하는 사람의 초조함과 불안도 이해해보려 한다.

어차피 그렇게 할 거지만, 조금 더 확신의 무게를 추가하고 싶은 알량한 불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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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잦은 실패로 점철된 인생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표현하는 작가의 용기는 얼마나 대단한다.

우리 모두는 또 누군가는 그 용기를 내지 못해서 끙끙 앓으니 말이다.


또한 실패를 해도 그것을 대하는 온도는 너무도 다르다.

스스로의 실패는 황급히 수습하고 덮기 바쁘지만 타인의 실패는 판관 포청천이라도 된 듯 큰 몽둥이를 들고 엄벌에 다스리기 바쁘다.


나 또한 그러고 있진 않은지 떠올려보면 한 없이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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