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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 Nov 13. 2020

승객이 잠든 사이


서비스를 막 끝낸 비행기 안, 조명이 꺼지고 나는 이것저것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마친 후 멍하니 서서 어두운 기내를 바라보았다.


지구의 불이 꺼진 시간, 어두운 밤에도 비행기는 구름을 가르며 묵묵히도 날아간다. 밤 비행은 막 비행기를 탑승한 승객에게도, 그리고 이 정도의 시차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신하던 승무원에게도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비행이다. 벌써 첫 번째 여정을 마친 후 이번행에 갈아탄 환승 승객은 전 비행의 여독과 함께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첫 여정을 시작한 승객은 여행 준비로 고단했을 하루의 긴장을 풀며 비행기 좌석에 의지한 채 단잠에 빠져들었다.


깜깜하고 적막한 기내를 조심조심 걷는다. 가끔 들려오는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가 마치 우리 모두를 위한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통상 6시간이 넘어가는 비행에서는 승무원에게도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그리고 그 휴식의 장소는 때때로 조종실이 되어주기도 한다.


모든 것이 잠이든 기내와 달리, 조종실은 활기가 넘친다. 계속되는 무선 교신 소리, 조종실 천장까지 이어진 기계장치들의 불빛,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조종사들의 열 일하는 모습까지.. 조종실은 항상 기내와는 다른 분위기로 승무원들에게 색다른 휴식을 선사해준다.(반대로 아주 바쁜 낮비행에서의 조종실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아주 조용한 곳이 되어준다.)


아랍에미레이트에서 호주로 가는 하늘길, 항로 때문인지 밤 시간 때문인지 이 노선은 비행기에서 은하수를 볼 수 있는 편으로 꽤 알려져 있었다. 그날, 인상 좋은 파란 눈의 기장님은 조종실 불빛을 어둡게 줄여주면서 내게 은하수를 맘껏 구경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전면이 확 트인 조종실에서의 천체 관람, 나는 신이 나서 왼쪽, 오른쪽 창문을 돌아가며 어린아이처럼 창밖을 구경했다.


어두운 밤하늘을 순항하는 비행기 주위로 큰 별들이 유유하게도 하늘을 빛내고 있었다. 멋진 시간을 선물 받은 나는 그 누구보다 행복했다. 감사를 전하고 조종실에서 나오는 발걸음이 어째 무거웠다. 그 빛나던 큰 별들이 내 눈 속에, 그리고 가슴속에 촘촘히 박혀서 나와 같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빈 좌석 하나 없는 만석의 비행기, 하지만 모두가 잠들어있는 조용한 기내를 다시 걷는다. 그리고 저기 기다란 창문에 기대어 잠들어있는 한 승객의 머리 뒤에 떠있는 별을 바라본다.



'우리는 모두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누군가는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헛된 것을 좇는 사람이라 말했다. 나는 이상하게도 오랜 시간 그 말을 잊어버리지 않으려 계속 중얼거렸다. 그 누군가 덕분에 감성에만 치우쳐진 나라는 사람이 조금 더 이성의 균형에 맞춰 살아올 수 있었으니까.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 말고, 다시 내가 아는 사실만을 생각하기 위해서.


호주로 가는 우리 비행기.

앞으로 남은 비행시간은 일곱 시간여.

착륙 전, 마지막 서비스는 아침식사.

호주에서는 이틀간 체류.

돌아오는 비행기도 만석.

나는 기내 면세품 판매 담당.

그리고.

또 밤샘 비행.


그럼, 나

또 은하수를 볼 수 있을까?


그래서, 결국


'나, 그리고 우리 모두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실수로 삭제되어 재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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