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그리고 '충'과 '서'
과거의 역사는 그저 흘러가버린 시간이 아니다. 과거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생각에 따라 역사가 갖는 함의는 무궁무진하다. 21세기 현재 우리가 고전을 공부하고 이로부터 현재에 맞게 끊임없이 재해석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로부터 배우고자 한다면 우리는 더 나은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현대에 필요한 철학적 사유의 근원을 유교에서 역시 찾아볼 수 있다. 유교문화는 단순히 중국의 문명만을 관통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문명 역시 관통하고 있다. 따라서 더더욱 우리가 유교 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대적 함의는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유교 문화에 대한 이해를 그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공자 사상에서 찾아보자. 혼란과 암흑기라 할 수 있는 춘추전국시대에서 문명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인간의 삶에 관한 철학을 제시한 공자의 사상이야말로 지금과 같은 현대사회에 많은 철학적 함의를 줄 것이다. 단순히 그가 유교 문화의 시발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자의 사상은 시대를 관통하며 지금의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핵심을 전해주는데 그 핵심은 바로 사람 그리고 공감이다.
공자 사상의 핵심적인 가치는 인문주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인문학의 핵심은 바로 인, 즉 사람에 있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의미는 사람을 사람답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가치를 이해하는 것. 여기서 사람은 혼자 있지 않다. 사람과 사람은 항상 같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으로 한층 더 확장된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사람 그 자체와 사람들간 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공자의 인문주의이며 공자 사상의 핵심인 ‘인’이라 할 수 있다.
공자 사상에서 인(仁)이라는 것은 한 인간의 개인적인 감성의 완성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완성된 개인의 감성이 사회와 공동체에 확산되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공동체에 대한 헌신으로 귀결될 때만이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는 의미다. 이를 잘 설명하는 것으로 공자 사상에서 ‘충’과 ‘서’가 존재하는데 ‘충’은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을 다해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즉 내면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서’라는 것은 마음이 같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과 내 마음이 같아지는 것. 즉, 나를 미루어서 남에게 미쳐 가는 외부로의 확산이다. 이러한 충과 서가 균형을 맞출 때 내외의 균형이 맞추어 지고 자신의 안에서 무한으로 확장되는 것이 밖으로 뻗어나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미치게 되고 결국 둘은 같아진다. 이때 공감이라는 것이 발생한다. 단순히 서로간에 머리로 하는 이해가 아닌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 같아지는 것이 바로 공감이라는 것이다.
공자의 이러한 사상은 그의 생애에서도 드러난다. 공자는 천하를 떠돌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이미 일찍이 공자는 학식과 자기수양을 쌓으며 세상의 인정을 받은 유학자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내적 수양에 대해서 개인적인 만족에 머물지 않고 노나라를 시작으로 끊임 없이 천하를 주유하며 자신의 성취를 세상에 투영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사회와 공동체에 대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더 나은 시대를 만들기 위해 평생의 삶을 보낸 것이다. 공감이라는 자신만의 철학을 겸비한 공자는 3000명의 제자를 거느렸다. 공자가 거느린 제자들은 공자의 가르침을 받아 어디선가 공감의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다. 이러한 리더십의 영향을 받은 자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의 리더십을 보일 것이다. 결국 공감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신의 개인적 수양을 넘어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같아지는 것이다. 이것은 제자를 거느리고 가르치는 것 역시 공자의 공감이라는 개념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비록 각 나라의 왕들을 통해 자신의 공감의 리더십을 완벽히 발휘하지는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가까워지려 노력하였다. 그가 말했듯이 군자가 지향해야 할 최고점인 ‘박시제중’은 요순임금도 못다 이룬 원대한 사업이지만 자신 역시 그들처럼 한없이 가까워지려 노력한 것이다. 내면의 끊임없는 수양과 더불어 사회와 공동체로 뻗어나가려는 노력을 계속해서 실천했다는 점은 공자의 사상적 가치가 단순히 사상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실제 그의 삶 속에 존재했음을 알게 해준다.
현대사회에서 개인과 사회는 극심한 갈등의 상황에 놓여있고 파편화되고 고립되어 있다. 개인은 사회로부터 고립될 뿐만 아니라 개인들 서로간의 관계 역시 점점 더 고립되고 파편화 된다. 이렇게 조성된 사회의 모습은 끊임 없는 갈등과 그로 인한 분열과 경쟁 때문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공자의 공감의 리더십을 현대 사회의 맥락 속에서 재생산 할 수 있을뿐더러 그 필요성 또한 절실하다. 개인은 자신의 개인적 성취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의 성취를 사회 속에서 공동체에 헌신할 때 비로소 그 성취가 완성되는 것이다. 개인의 내적 성취를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통해 사회 속으로 널리 발산시키면서 완전한 성취를 이룬 개인은 결국 타인과 같아진다. 이렇게 개인과 타인의 같아짐이 곧 공감이고 공감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공감의 리더십이고 갈수록 개별화되고 개인주의적인 양상이 첨예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큰 함의를 가질 수 있다. 이는 공감을 통해 개인과 개인 사이의 고립은 물론 개인과 사회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고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다.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현실적인 테두리 안에 공감의 리더십을 적용해보았을 때 이것은 직업정신으로 구현될 수 있다. 개인이 직업적인 소양을 쌓고 이러한 능력을 사회와 공동체에 널리 이롭게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선 직업정신 속에 윤리와 책임의식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어쩌면 막스 베버가 얘기하는 직업과 소명에 관한 의식과 일맥상통하는 얘기일 수도 있다. 이렇게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적 연관성은 2000년 전에 공자의 사상이 결코 역사 속에서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대를 지나며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던 공자의 공감의 리더십은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를 이롭게 할 수 있는 철학적 근간이 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