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팬레터 (스포 있음)
해진은 섬세하고 조용한 문인이다. 흰 얼굴과 지적인 외모에 다소 허약하며 글에 미친 사람이다. 세훈은 해진을 동경하는 작가지망생이다. 해진 선생님을 보기만 해도 너무 좋아서 떨리고, 해진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세훈은 해진에게 ‘히카루’라는 이름의 여자 캐릭터를 창조하여 자신의 존경을 투영하여 팬레터를 쓴다. 해진은 히카루의 편지글에 점점 감응하고, 히카루에게 사랑에 빠져버린다. 이후 세훈은 이 상황을 정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깊숙이 들어가 버린다. 둘은 글 안에서 누구보다 맹목적인 연인이 되었고, 현실에서 세훈은 편지 전달자로서, 해진의 근처에서 늘 맴돈다.
그 둘은 편지글 속에서 자유롭고 과감한 애정표현을 하며 서로를 보듬는다. 내 마음을 유일하게 알아주는 여인을 위해서, 글 쓰는 것에 점점 미쳐가며, 폐병으로 죽어가면서도 몸을 돌보지 않고 계속 글을 쓴다. 해진과 세훈은 순수했고, 누구보다 처연할 만큼 서로에게 격정적이었다.
히카루로서 해진의 마음 깊이 다가가고 싶은 세훈이 나는 너무 이해가 갔다. 어찌 보면 광기이고, 선을 넘은 죄악이겠지만, 해진의 편지를 받으며, 히카루로서 행복해하는 세훈의 표정을 보면, 사회적 시선이고 뭐고 그냥 나 역시 그들의 환영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란 형태가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을 때 그것은 금기가 된다. 이들은 그 사랑의 형태를 글로서 표현하고 서로를 탐닉하며 삶을 불태웠다. 글로서 마음 가장 깊은 곳을 찌르고, 내면을 불러내고, 글자로서 나뒹굴면서 육체적 쾌락보다 더 깊은 마음의 안도와 행복감을 느낀다.
글이란 게 도대체 뭘까. 글은 어디까지의 교감의 촉수가 있으며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을까. 해진이 글 안의 히카루를 사랑한 건지, 글을 쓴 세훈을 사랑한 건지는 내내 모호했지만, 극의 마지막 해진의 편지를 들으며 결국 나는 심장이 쑤시고 억장이 무너졌다.
팬레터 글 속에서의 사랑은 정상적인 사랑의 변질된 형태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정상은 과연 무엇일까. 현실에서는 서로 가면을 쓰는 세훈과 해진이, 글 속에서라도 욕망을 표현하고 그 섬세한 쾌락과 슬픔을 공명하며 숨 쉴 수 있다면, 글은 도구라고 절하하기엔 너무 큰 존재이다.
글로 마음을 더 잘 표현하는 사람, 말보다 글에 감명을 받아본 사람, 글자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격정적으로 휘감는지 아는 사람은 이 극에 감기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많은 덕후들을 양산한 이 매력적인 창작극이 눈 내리는 겨울에 좋은 극장으로 문득 찾아온다면, 혹시나 내 본진이 무대에 와준다면, 아.. 상상만 해도 그 아련한 넘버들에 취해서 난 이미 졸도할 것 같다.
‘해진의 편지’
*해진이 폐결핵으로 죽기 전 남겼던 전해지지 못한 편지
모든 일은 나로부터 비롯되었다.
잘못된 환상에서 깨고 싶지 않아서
언젠가부터 깨달았다.
어렴풋하게나마 내 주변을 감도는 그녀의 바람을.
그녀를 닮은 섬세함과 떨림
그녀와 다른 다정함과 순수
그 편지를 잡고 있어야 살 것 같아서
글자로 만든 성 안에서, 그래, 외면한 채
결국 우리들은 사랑의 모든 형태에 탐닉했으며,
사랑이 베풀어줄 수 있는 모든 희열을 맛보았노라.
나보다 훨씬 용감한 너를 보고,
나도 한 걸음을 겨우 떼어
여기 편지와 원고를 받아주면 좋겠다.
그녀에게 주고 싶던 꽃과 함께
새삼스레 말이 맴돈다.
너의 말들로 그때의 내가 버티었다.
그게 누구라도,
편지의 주인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결같이 너의 답장을 기다리마.
삼월 십칠일
해진으로부터.
https://youtu.be/rKDLyCMqsDs?feature=shared
https://youtu.be/FfKCslOucm0?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