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ㅇㅇㅇ
학수고대한 오늘이다. 무조건 일찍 일어난다. 아침준비를 한다. 아이들과 남편을 깨우고 그들이 밥을 먹는 동안 나는 이미 청소와 빨래 준비자세를 취한다. 일꾼들이 밥을 다 먹자마자 황급히 식세기에 그릇을 밀어 넣고 주말 내내 쌓였던 식탁 위의 것들을 다 소탕한다. 두 명이 일차로 현관을 나가고 한 명이 샤워실에 들어가면 이제 빨래를 돌린다. 여덟 시 반 베짱이까지 나가면 이제 본격적으로 로청이랑 같이 청소기를 돌린다. 나, 세탁기, 식세기, 로청이가 콜라보를 이루며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는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맨날 내가 한다면서 점점 축축해지는 어둠의 동굴 두 개를 드디어 열어젖히고 잡다한 쓰레기를 다 치우고 이불 걷고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하니 속이 다 시원하다. 바로 화장실에 가서 테무에서 산 욕실템으로 솔질을 하며 변기랑 타일 사이를 쓱쓱 문지른다. 썩 맘에 든다. 장비발로 곰팡이와 물때를 지운다. 스퀴즈로 물기를 닦고 전장에서 승리한 듯 거실로 돌아오면, 동지들이 여전히 춤추듯 각기의 기계음을 내며 일하고 있다.
이왕 시작한 거 방치된 냉장고를 점령해 본다. 얼음도 얼리고, 시든 야채와 안 먹는 국을 다 정리한다. 냉장고 속 음식쓰레기를 정리하니 2차 설거지 그릇이 또 나온다. 식세기님이 아직 바쁘시니 옛다 그냥 내가 보조자가 돼서 손으로 닦는다. 열심히 요리했으나 맨날 남는 잔반을 내 손으로 버리는 게 속상해서 애들이 남긴 밥과 반찬을 그대로 내가 먹었었다. 요즘엔 내 몸을 쓰레기통으로 여기지 말자고 생각하고, 웬만하면 그냥 버린다. 죄책감이 든다. 얼른 거실로 도망친다.
주방 가전과 거실 용품의 먼지를 후루룩 닦고, 쓰레기봉지를 동여매고 시계를 보니 오전 열시다. 미쳤다. 깨끗한 집에 나 혼자다. 찢었다. 티브이 소리도 없고 너무 행복하다. 밥통도 아예 씻어놓았는데 이 상태가 저녁까지 유지된다니 이거 실화냐. 화장실도, 거실도, 주방도 이대로 오늘은 정지화면처럼 나처럼 휴식하라고 명했다. 나의 모든 제군들도 이제 일을 마쳤고, 고요해졌다. 대충 땀을 씻고, 밖에 안 나갈 거니깐 향수를 치덕치덕 과하게 뿌려본다. 한층 집주인이 우아해졌다. 그대로 나는 소파에 드러눕는다. 세상에. 몇 시간이나 이 정적 속에서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다는 이 상황이 너무 벅차다.
찬란한 이 시간 그 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말라. 택배기사도 가스점검도 오늘은 안 받는다. 오늘은 반찬사고 장 보는 것을 포함한 모든 외출 업무와 시답잖은 대화를 삼갈 거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모든 행위를 거부한다. 다섯 시간의 자유다. 내가 눈 빠지게 오늘을 기다렸잖아. 드디어 와줘서 정말 고맙다.
오늘은 개학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