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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Jan 25. 2024

프로페셔널의 조건

내 실력을 키우고, 주변 탓을 하지 않아야


치과에 다녀왔다. 간단한 스케일링이 목적이었다.


어느 치과를 가야하나. 원래 다니던 병원이 워낙 예약잡기 어려워 지도 앱에서 치과라고 검색하니 치과 옆에 치과 있고 그 옆에 치과가 또 있다.


 지역 까페에서 누가 초성으로 남긴 XXXX 치과가  잘한다는 댓글 달랑 한줄에 낚여 병원을 정했다. 나도 이럴때면 어디 낚이기 딱 좋은 소비자가 확실하다.


병원 안 벽에는 누가누가 잘하나 경쟁하듯 온갖 학위와 수료증, 졸업증명서 등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오늘 간 병원은 여기에 더해 고등학교 이력까지 박아놨다. 이 동네 출신임을 어필해 친근하게 느끼게 하려는 걸까? 아니면 어릴때부터 꾸준히 공부 잘해서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증빙인가?


그 의중이 뭘까 궁금해 하며 환자보다 의료진이 더 많은 썰렁한 병원이 남는 게 얼마일까 궁금해 할 무렵 내 이름이 불렸다.


-


XXX님 이쪽으로 오실께요.


앳된 얼굴을 한 직원 - 아마 치위생사이겠지?-이 나를 안내했다. 원장님이 바쁘셔서 검진 전 스케일링 먼저 한다고 하네.


안기만 하면 긴장되는 치과 진료 의자에 누웠다. 치과에서 유일한 내편은 양치 세면대라는 이야기가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났다. 사실 의자는 잘못이 없다. 내 얼굴 위에 구멍뚫린 초록색 도포가 덮히고 벌린 입으로 차가운 금속이 닿는 순간 그때가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공손히 꽉 마주잡는 때다.


스케일링이 시작됐다. 문제가 생겼다. 시작한지 딱 1분밖에 안되었는데 그 앳된 얼굴의 치위생사의 손길이 좋지 않게 느껴졌다. 필리핀 보라카이의 해변에서 충동적으로 마사지를 받았을 때 마사지사의 첫 손길에서 이건 아니다 느꼈을 때와 비슷했다.


이걸 여러번 해봤지만 계속 목에 물이 고여서 넘어갔다. 꼴깍. 나도 모르게 마시게 된다. 처음 몇번은 그려려니 넘겼던 치위생사의 목소리가 짜증이 묻어났다. 또 꼴깍. 환자분 코!로 숨 쉬세요! 너 때문에 진료가 잘 안된다는 어투다. 잠시 멈추고 석션을 빨대처럼 물으란다. 갑자기 입 속이 어딘가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 불쾌하다.


이제까지 이런 적은 없었건만. 살짝만 내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진료를 하거나 석션을 조금만 더 안쪽으로 놓으면 좋을텐데. 아무리 비염인이라지만 이런 질책은 받은 적이 없었단 말이다. 비염인의 자존심에 스크라치가 갔다.


결국 위생사가 내 말을 듣고 석션을 좀더 깊숙히 위치하고 나서야 조금 편해졌다. 끝나고 나니 등에 땀이 났다. 스케일링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니! 고문을 당한 기분이었다.


-


프로페셔널의 기준이 무엇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노련함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데 뉴스 생방에 나오는 기자들이 입이 어는 추위라고 방송사고를 내면 안 되고 의사들이 삐끗해서 수술 잘 못 할 수 없는 것처럼.


일이 잘 되지 않았음에 그 누구의 탓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어떤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나의 내공을 쌓는 것이 프로의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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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후 그 치과를 방문하여 그 위생사가 또 있다면 아마도 미래의 그녀는 더 노련해져있으리라 믿는다. 시간과 연습만이 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역시 5년, 10년 후 더욱더 노련해진 경력자가 되어 있기를.



별 거 아닌 경험으로 나 자신을 또 돌이켜 본다. 나는, 당신은, 우리는, 프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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