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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원 Mar 05. 2023

<스즈메의 문단속>이 실망스러웠던 이유(1)

스포 有

<날씨의 아이> 이후 3년 반 만이다. 전작에서 느꼈던 아쉬움을 뒤로하고 훌륭한 작품을 선사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실망스러웠던 이유는 상업영화의 느낌이 물씬 났기 때문이다. 작화는 두말할 것도 없이 아름다웠지만, 피상적인 미감 그 이상의 것은 없었다. 2007년의 신카이 마코토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적은 예산으로 제작했던 <초속 5cm>의 인물작화는 몰입을 방해할 정도로 조악했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사연만큼은 애틋함이 넘쳤다. 하지만 이번 <스즈메의 문단속>은 무늬만 예쁠 뿐 알맹이가 비어있었다.

<초속 5cm>의 여주인공 아카리. 작화력이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이번 작품에서 신카이는 두 가지 정도의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그중 첫번째는 로드 무비를 택한 점이다. 이 포인트가 내가 이 영화에 대실망을 하게 된 직접적 원인이다. 왜냐하면 그 의도가 너무 불순하여 도저히 좋게 봐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주인공 스즈메는 규슈 출신이지만 에히메와 고베, 도쿄를 넘어 혼슈 북단에 위치한 이와테현까지 간다.  스즈메의 여정 동기는 지진을 유발하는 미미즈를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 미미즈에 대한 정보를 크게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저 '강력하지만 막아야 할 것'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제한된 정보에도 미미즈를 막겠답시고 가출하여 일본 전역을 떠도는 스즈메는 미미즈의 출현 원리라든지 하는것에 딱히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이 영화가 '치밀하게 짜여진 로드 무비'가 아닌, '로드 무비를 위한 로드 무비'라는 인상이 드는 지점이다. 굳이 로드 무비의 형식을 택할 필요가 없었지만 로드 무비를 찍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스즈메는 가는 곳마다 별 무리 없이 미미즈를 막아낸다. 물론 연출적으론 스즈메가 문단속에 난항을 겪는 부분들이 있지만, 관객들은 이미 이것이 '로드 무비'임을 알고 있기에 최종 종착역에 이르기 전까지 그녀에게 별일이 안 일어날 것임을 뻔히 알고 있어 긴장감이 덜하다. 이러한 로드 무비의 한계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제작진이 로드 무비를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왜냐하면 로드 무비가 신카이 마코토의 작화력을 뽐내기에 가장 적합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스즈메가 여정을 떠날 때마다 새로운 장소들에 대한 배경 작화는 우리 눈길을 사로잡는다. 외국인인 우리 입장에서도 이런데 디테일한 면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일본 국내 관객들은 오죽할까. 다만 문제는 이 여정이 시각적 유희를 제공해주는 것 외엔 딱히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세리자와를 만나기 전 규슈에서부터 도쿄까지의 여정은 분량 때우기의 느낌이 강했다. 

그래도 세리자와의 오픈카로 떠나게 되는 여정은 괜찮았다. 예컨대 세리자와의 올드한 플레이리스트라든가..

예컨대 규슈에서 만난 동갑내기 소녀와 고베의 마담은 지나치게 소모적으로 쓰였다. 이들은 마치 넷플릭스 시리즈 연속극에서 에피소드마다 접하게 되는 일회성 등장인물같은 존재였다. 이들은 관객들의 지루함은 덜어줄지언정 그 본질은 분량을 채우기 위한 조력자 1, 2에 불과했다.

또 아무리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라지만 음식씬을 너무 남용하는 느낌이 들었다. 음식, 그중에서도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일식이라면 보는 이로 하여금 일정 이상의 만족감을 보장해주는 도구다. 일종의 '사기템'인데, 그 사기성의 빈번한 활용은 제작자들의 방만을 의심케하는 부분이다. 감자샐러드를 넣은 야끼소바 씬은 확실히 <날씨의 아이>의 감자칩 볶음밥 씬만 못했다. 장면 하나하나를 대하는 세심함이 부족한 채 기계적으로만 구성했디는 소리다.

또 초반 로드무비에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는 고양이 다이진은, 사기성의 대명사같은 존재였다. 어느 누가 가 모에화된 고양이를 싫어하겠는가? 누구에게나 호감일 캐릭터를 그려넣어 관객들의 눈을 홀리게 하는 것은, 마치 7번방의 선물이 관객을 꼬집어서 눈물을 유발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다른 동물도 아니고 뻔하디뻔한 고양이라니. 물론 귀여웠고 그래서 더 신카이가 미웠다.


정리하자면 영화 속 스즈메의 여정은 '세상을 구한다'라는 막중한 사명을 핑계삼아 여정의 동기는 확보했을지언정, 관객에게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함으로써 그 여정의 가치를 눈요기에 불과한 것으로 격하시켰다. 그리고 그 눈요깃거리들마저 기계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공산품이었다. 그 공산품들은 아름다운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신카이 마코토의 최대 장점으로 꼽히는 아름다운 작화는 도리어 그를 작품을 작화주의의 한계 속에 갇히게 했다. 그가 한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 작화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 다면적으로 훌륭한 예술작품을 만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신카이 마코토는 작화주의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는커녕 '로드 무비'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의 세일즈포인트만 부각했다. 형식뿐 아니라 디테일까지도 노골적으로 상업적 성공만을 추구했기에 나는 그 의도가 불순했다고 말한 것이며, 따라서 나는 <스즈메의 문단속>을 좋은 영화로 평가할 수 없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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