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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Apr 13. 2022

해석하기를 멈춘 친정의 봄

봄은 무엇으로 오는 걸까? 따뜻해진 바람? 온몸이 깨어나느라 며칠 몸이 쑤시면 나는 드디어 봄이 왔구나 한다. 한겨울 땅속에 묻혀있던 남도의 봄은 구정 날 설을 쇠러 내려오는 내 발걸음 소리에 깨어난다. 풀려난 염소마냥 날뛰면서 찾아간 밭은 이제야 녹았는지 초코칩쿠키처럼 촉촉해서 입을 맞추고 싶을 정도다. 이것이 냉이일까 저것이 냉이일까 고민되면 뿌리채 뽑아 냄새를 맡아보면 된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온 풀들을 뽑아 킁킁댄다. 고사리손이 헤치고 간 겨울 대지가 봄바람을 만나 헉헉 뜨거운 입김을 뱉어낸다. 아이들 볼에 말갛게 봄 냄새가 스며든다. 그 어미가 봄나물을 아는 체 해보지만 실상 어릴적에는 지천에 널린 봄 나물은 쳐다 보지 않고 살았다. 달래니 봄동이니 하는 것들도 도시어머니가 된 뒤에야 이름을 알았다. 늘 바빴던 친정 어머니가 하나하나 캐서 손질할 시간이 어디 있었으랴. 그런 추억이 없는 내가 뿌리 냄새를 맡아 보고서야 그래, 이게 냉이지! 하는 것도 뒤늦게 봄을 안 까닭이다.


  그 즈음 익숙한 기계음이 멀리서 들려올 것이다. 바다에 나가신 부모님이 짐 칸에 생 미역을 싣고 마을 언덕을 넘는 경운기 소리다. 산아래 바닷바람이 잘 드나드는 농로를 따라 울타리처럼 둘러진 말뚝에는 어제의 미역들이 마른 숨소리를 내면서 걸려 있다. 뻣대는 생미역꼭지를 잡고 기다란 몸뚱이를 줄에 눕혀 놓으면 밤사이 녀석들은 지쳐서 축 늘어진다. 다음날이면 눈물이 하얗게 말라있는 미역들을 어머니는 떨어지지 말라고 한데 모아 묶어주었다.  

 그렇게 채워지던 친정의 봄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전화였다. 나는 이미 열흘 전에 친정나들이를 끝내고 도시집으로 올라온 뒤였다. 큰애와 둘째는 새 어린이집에 적응하느라 돌쟁이 막내는 젖을 떼느라 아침마다 울어대는 날이었다. 그 소식에 나도 전화통을 붙잡고 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 장례식장에서 한뎃잠을 자던 어머니 상복에 묻어있던 향 냄새, 젖이 불어 단단해진 가슴에서 훅훅 끼쳐오는 열기, 부숴진 몸이지만 편안하게 잠들어 있던 아버지 얼굴을 어루만지던 내 젖은 손. 장례를 치르느라 3월에 건져올려지지 못한 미역들은 물거품이 되어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아버지가 있던 날의 봄은 그렇게 끝났다.  


  아버지 장례식을 마치고 올라와 며칠안되어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밤에 무서워서 잠을 못자고 있다고 했다. 안방 아랫목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등이 아른거려서 잘 수가 없다고 했다. 텅빈 거실 소파에서 자꾸만 아버지 헛기침소리가 들리고, 탁주를 마시곤 했던 식탁의자에서 술따르는 소리가 나는 것만 같다고 했다. 오랫동안 쓰던 물건이 사라져도 그 빈자리가 눈에 밟히는데 40년동안 같이 산 사람이 사라진 자리는 오죽할까. 그 사람이 내던 숨소리까지 간직한 장소과 물건들이 자식에겐 추억일지 모르나 그것들과 내내 살아가야 할 어머니에겐 고통이 된 것이다. 자식들이 모두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가버렸을 때 갑자기 훼손되버린 당신의 가정을 처연하게 바라보고 있을 어머니의 정면이 그제서야 보였다.

  "누나 애들이 아직 어리잖아, 애들이 집안을 시끌벅적하게 해주고 누나가 안방에서 엄마랑 같이 자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좋아지지 않을까?"


 어머니는 남편에 대한 상실감도 컸지만 아버지가 억압해놓았던 당신의 모든 권리들을 한꺼번에 안아들고 무거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 농사일과 바닷일같은 육체노동에만 전념했던 어머니와 은행업무와 돈관리, 각종 살림을 꾸려나가는 건 아버지가 도맡아 하다보니 생긴 문제였다. 모든 부동산에 어머니 이름이 처음 오르는 걸 도와드리고, 안방을 벗어나 작은방에 어머니 침실을 새로 마련해드렸다. 아버지가 하시던 농사일을 남동생이 도맡으면서 동네 사람들의 격려와 품앗이가 줄을 이었다. 아버지 생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이웃 사람들의 환대가 어색했다. 알고보니 지독한 구두쇠에 남을 못믿고 일욕심이 많았던 아버지는 이웃들과 품앗이하는 것조차 손해나는 일이라고 싫어하셨다고 한다. 어쩔수없이 마을 사람들도 담을 쌓고 지냈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눈치만 보던 이웃분들이 우리 아이들 먹으라고 과자며, 떡같은 새참을 보내준 것이다. 그동안 내가 머물다간 친정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 낯설었지만 그토록 따뜻하던 봄은 처음이었다.  

  다시 활기를 찾은 어머니는 몇 년전에 귀농하신 윗집 아주머니와 친구가 되셨다. 못자리를 보다가 논둑에 하얗게 돋아난 쑥이 여리고 예뻤는지 어머니는 쑥전을 부쳐먹자고 뜯어오시기도 했다. 남동생은 어머니와 살림을 합치면서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웠다. 산딸기가 빨갛게 부풀어오르는 늦봄, 아이들과 나는 아버지 49제가 되도록 친정에 머물렀다. 창고안의 오래된 짐들을 모두 모아 버리고, 냉이꽃이 핀 밭 한구석에 불을 지펴 아버지의 옷과 물건들도 몇가지만 남기고 모두 태웠다. 아마 그 자리는 몇년동안 풀이 자라지 않을 것이라고 어머니가 그랬다.


  그 봄 이후로 해마다 냉이꽃 피기 전에 맞춰 친정에 내려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 늘 자식을 뜨겁게 반기셨던 아버지와 누나를 맞이하는 남동생의 온도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계절에 대한 내 감각은 모두 어린시절에 만들어놓은 기억에 의존했다. 유년기에 축적해놓은 봄들을 다시 재현하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에 이른 봄마다 친정에 오래 머물렀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아버지 생전의 봄을 재현하지 못한 안타까움보다 남동생과 어머니가 새로 채색할 친정의 봄을 응원한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행복했다고 자위했던 친정의 봄들은 해석하기를 멈춘 과거의 낡은 계절이기도 했다. 새 씨앗을 받아 지난해와는 다른 냉이가 싹을 내는 일이 새봄인 것이다. 그러니 봄이 올때마다 몸살이 나야 맞다. 봄이 오는 소리가 새롭다면 지난 겨울 씨앗갈무리를 잘 한 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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