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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May 10. 2022

캐디가 납작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소리와 분노》

윌리엄 포크너 《소리와 분노》(문학동네, 2013) 1930년 미국문학

이 소설은 20세기 초(1910년~1928년) 미국 중상층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모더니즘 소설의 걸작으로 꼽히는 윌리엄포크너(1897-1962)의 작품입니다. 지금은 한창 19세기 중반 문학을 읽고 있는데 현대적인 모더니즘 소설이 고파서 20세기 문학으로 잠깐 점프해보았어요. 《소리와 분노》는(문학동네,2013) 백치인 벤지섹션으로 시작해 네 섹션으로 구성됩니다. 콤슨가의 세 형제 벤지, 퀜틴, 제이슨, 그 아이들을 돌보았던 하녀 딜지섹션을 마지막으로 끝납니다. 캐디는 그들의 누이로 이야기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저자는 캐디를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습니다.


1. 언어가 아닌 감각으로 말하다, 벤지섹션

 소설은 첫장부터 벤지의 몸의 언어로 독자를 빠뜨립니다. 벤지는 언어 능력이 형성되기 전 지적발달이 멈추어 세살에 머물러 있는 백치입니다. 처음에 벤지 주변인물들에 대한 관계파악에 골몰하며 읽기 시작합니다. 벤지의 1인칭 시점이고 비언어적인 벤지의 의식을 언어로 옮겨놓았기에 시간과 공간이 시도때도 없이 의식의 흐름을 방해하고 인물소개도 없이 대화만 나오니 누가 벤지의 형제이며 누가 백인이고 흑인인가, 애네들의 나이대는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할 수 없어요. 그러다가...탁 놓아졌습니다. 벤지의 시선과 후각과 소리와 울음을 따라가다보니 나의 그런 파악이 다 소용없구나라는 걸 느꼈습니다.


(p.76) 시계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뒤에 서 있는 캐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지붕 소리가 들렸다. 비가 아직도 오네, 캐디가 말했다. 나는 비가 싫어. 다 싫어. 그러고 나서 캐디의 머리가 내 무릎 위에 왔고 그녀는 나를 붙들고 울고 있었고 나도 울기 시작했다. 그다음에 나는 다시 불을 바라보았고 그 환하고 매끄러운 모양들이 다시 움직였다. 시계와 지붕과 캐디의 소리가 들렸다.


그 때부터 짧고 직관적인 벤지의 언어에 빠져든 것 같아요. 모든 게 눈앞에 그려지는 벤지의 비언어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벤지에게는 두 부류의 사람만 있어요. 자신을 이해하고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말을 못하는 벤지는 소리와 울음으로 그것을 표현하지만 아무도 벤지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네요. 뒤섞인 벤지의 기억들이 두서없이 호명되는 열쇠는 단 한사람, 캐디였어요. 어린 시절 캐디와의 추억과 냄새,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난 캐디를 그리워하는 벤지가 보입니다. 소설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 두번째 섹션 퀜틴의 언어로 콤슨가의 맏아들이었던 그의 심리를 재현합니다.


2. 비언어에서 언어로 나아가다

(p.101) "커튼에 창틀 그림자가 보이니 일곱시에서 여덟시 사이일 것이며 시계 소리를 듣고 있는 나는 또다시 시간 안에 있는 것이다. 시계는 할아버지 것이었으며 아버지가 그것을 내게 주며 말하기를 내 너에게 모든 희망과 욕망의 능묘를 주니 네가 이것을 사용해 인간의 모든 경험이 결국은 부조리함을 알 것이며, 이는 네 개인적인 필요에 맞되 네 할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아버지에게 그랬던것보다 나을 바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니 마음이 아프구나. 내 너에게 이것을 주는 건 시간을 기억하라 함이 아니라, 이따금 잠시라도 시간을 잊느라는 것이요, 시간을 정복하려고 인생전부를 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직선같은 벤지의식에 푹 빠졌다가 퀜틴의 현재묘사를 읽으니 생경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소환되는 벤지의 기억들과 시간을 잊으라고 시계를 선물한 아버지의 조언으로 시작되는 퀜틴의 기억들. 벤지와 퀜틴, 제이슨의 섹션은 한 인물의 의식이 닿는대로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쓰여졌는데요, 퀜틴은 콤슨 부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지만 캐디를 향한 마음과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그의 심리가 '인동덩쿨'과 '그림자'로 대변되며 그를 따라다닙니다. 벤지는 의식의 흐름에 캐디와의 추억을 불러내지만 퀜틴의 의식은 아버지의 가치관이 옭아매고 있습니다. 독자에게 메세지를 전달하기 보다 의식 사이에서 대화 사이에서 그 상황을 유추해보도록 집중력을 요합니다.  


포크너에게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건 벤지, 퀜틴, 제이슨에 이르기까지 1인칭시점으로 풀어냈음에도 그들 각각의 인물에 독자가 완전히 빠져들도록 언어를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것입니다. 한사람 한사람의 의식을 읽고 빠져들면서 작중 모든 인물에게 공감을 합니다. 어른이 된 그들에게 어린시절이 자꾸만 호명되는 것처럼 우리 마음을 이루는 것은 내가 지나온 전 생애이므로 의식은 그것을 그대로 보여주죠. 현대문학에서는 종종 보는 구조지만  지금읽어도 시대를 초월한 굉장히 독특한 구조입니다. 


소설이 처음엔 비언어에서 언어로 나아가다가, 마지막 딜지섹션에 가서는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끝납니다. 어떻게 하면 인물에 빙의되듯 이런 글을 쓸 수 있나요. 딜지섹션에 와서야 독자는 그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되고 결말에 다다릅니다. 콤슨가 네명의 자식 중 캐디만이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내지 못한채 남자형제들에게 호명됩니다. 캐디를 어떤 사람으로 내 앞에 데려올 것인가는 독자의 몫인 셈이죠.


3. 다시 맨 첫장으로, 새롭게 발견되는 이야기들

1928년의 콤슨가를 바라보는 마지막 딜지섹션에 와서 독자는 익숙한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전체를 조망할 수 있지만 그러기엔 분량이 너무 적습니다.  한번 읽고는 해소되지 않은 부분이 넘 많아서 해설을 읽었지만 그래도 답답해 처음부터 재독했습니다. 

이 소설은 책 끝페이지가 끝이 아니네요. 적어도 앞으로 다시 돌아가서 벤지섹션을 다시 읽어야 아하~ 하고 끝이 납니다. 저는 벤지섹션에서 두서없이 나오는 인물, 섞이는 시간들에 혼란스러워하며 그저 벤지와 캐디의 사이, 캐디가 어릴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가늠하며 퀜틴섹션으로 넘어갔는데...두번째로 읽을 때는 모든 인물들과 사건들, 더 많은 게  보이네요.


퀜틴섹션 다시 읽고서야 그와 아버지와의 무력한 관계, 퀜틴에게 가닿지 못하고 허공에 뿌려지는 형이상학적인 조언들,  캐디를 생각하는 마음, 자신을 키운 흑인하인들에 대한 애착들이 보여서 안타깝게 읽었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잘못된 자식사랑, 자기 가문에 대한 허영심과 피해의식 같은 것들이 네명의 자식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모두 불행해지지요.


(p.137)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이런 애들이 생겨났을까 벤저민으로도 벌은 충분했는데 이제는 캐디까지 더이상 내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니 제 엄마인데 내가 저 때문에 고통을 겪었는데 저를 위해 꿈을 가지고 계획을 세우고 희생을 했는데 내가 음침한 골짜기로 내려갔는데 저가 눈이 밝아져 그 뒤로는 이기적으로 내 생각은 조금도 안 해요 캐디는 어떤 때 보면 내 자식인가 싶어요 제이슨은 달라요 내가 처음 품 안에 안고부터 줄곧 한순간도 나를 슬프게 하지 않았어요 그때 난 알았어요. 제이슨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구원이 되리라고 내가 지은 죄가 무엇이는 벤저민으로 그 벌은 충분히 받은 줄 알았어요 내 자존심을 버리고 자기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결혼한 데 대한 벌인 줄 알았어요


중간에 끼여서 반항한번 못해보고 어머니를 위해 살아온 셋째 제이슨이 그제서야 보였습니다. 비뚤어진 심보,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것에서 이득을 계산하며 주변사람들을 괴롭히는 제이슨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이슨처럼 어린시절을 보냈던 제 남동생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아 반성을 많이 했어요. 결국 동생은 제이슨처럼 마지막까지 어머니 옆에 남아 있어요. 두 모자가 썩 잘맞는 동거인이 아님은 분명하지만요.


 제이슨을 방치하고 피해의식을 심어준 어머니는 제멋대로인 제이슨을 따끔하게 야단치지 못합니다. 하인 딜지보다도 유약하고 답답한 엄마입니다. 이 가정에 아버지는 왜 이렇게 존재감이 없는 건가요.(큰아들 퀜틴만 바라본건가요?)

이런 가정에서 벤지의 어머니 역할을 떠맡았던 캐디. 어머니의 절망과 분노, 짜증을 감당하며 제 안의 채워지지 않는 사랑을 혹독한 사춘기를 겪었을 캐디. 자신의 어린시절을 온통 채웠던 누이가 망가지는 것을 구하지 못해 스스로를 포기한 퀜틴, 곳곳의 의식에서 불려나오는 캐디가 너무 사랑스럽고 안쓰러워서 힘들었습니다. 캐디가 납작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두번 세번 읽어야 하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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