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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May 17. 2022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읽기 전에 《파리의 우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문학동네,2015) 황현산 옮김

저는 사실 보들레르의 시보다 랭보의 시를 더 좋아합니다. 《악의 꽃》유명세를 타고 깊이가 부족한 저한테 너무 이르게 온 탓이지요. 집에 역자가 다른 《악의 꽃》시집이 두개나 있는데 이번에는 《파리의 우울》이라는 산문시집을 읽기로 해봅니다. 다행이 이 책은 황현산 역자의 주해가 각 산문시마다 있으니 보들레르에 대해 그 당시에 대해 같이 알아가면서 쉽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지요.

 

보들레르는 상징주의 시인의 시초로 언급되는 너무나 유명한 시인이지요. 1857년 보들레르의 《악의 꽃》시집이 출간되면서 시는 기존의 형식주의나 언어유희적 낭만주의에서 해방됩니다. 시라는 언어 삶의 철학과 관념, 인간 정신의 모든 것을 상징하고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도록 시인들 언어 연금술이 시작되는 것이죠. 아무래도 이 때부터 시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나 봅니다. 문학적 사유를 하지 않고 자란 저같은 사람에게는 한글로 번역했다지만 외국어처럼 보이는 대시들, 천천히 알아가고 있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산문시집은 형식적으로 에세이를 닮았기에 시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저같은 사람들이 다가서기에 좋니다. 특히 각 꼭지마다 해설이 있으니깐요^^ 이 산문시집에서는 <창문들>과 <취하라>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더군요. 지금 읽어도 150년의 시간을 타지 않고 사랑을 받을 만큼 간결하면서 수필의 편안함을 가지고 있네요. <창문들> 옮겨봅니다.

 

(p.102) 열린 창문을 통해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결코 닫힌 창을 바라보는 사람만큼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 한 자루 촛불로 밝혀진 창보다 더 그윽하고, 더 신비롭고, 더 풍요롭고, 더 컴컴하고, 더 눈부신 것은 없다. 태양 아래서 볼 수 있는 것은 언제나 한 장의 유리창 뒤에서 일어나는 것만큼 흥미롭지 않다. 이 어둡거나 밝은 구멍속에서, 생명이 살고, 생명이 꿈꾸고, 생명이 고뇌한다.

지붕들의 물결 저편에서, 나는, 벌써 주름살이 지고 가난하고, 항상 무엇엔가 엎드려 있는, 한 번도 외출을 하지 않는 중년 여인을 본다. 그 얼굴을 가지고, 그 옷을 가지고, 그 몸짓을 가지고, 거의 아무것도 없이, 나는 이 여자의 이야기를, 아니 차라리 그녀의 전설을 꾸며내고는, 때때로 그것을 내 자신에게 들려주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것이 가련한 늙은 남자였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의 전설 역시 어렵잖게 꾸며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잠자리에 눕는다. 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 속에서 내가 살았고 괴로워했다고 자랑스러워하면서.

어쩌면 여러분은 나에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 전설이 진실하다고 확신합니까?” 내 밖에 놓여 있는 현실이 어떤 것으로 될 수 있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것이 내가 살도록 도와주고,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내가 무엇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도록 도와주기만 하였다면. -<창문들> 전문


당시의 파리는 다시 왕권을 잡은 나폴레옹 3세의 대대적인 도시정비계획으로 파리가 최초의 신도시, 세계도시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도시의 풍경, 혁명의 후유증, 풍요와 가난으로 뒤엉킨 파리에서 포착한 짧은 장면들 보들레르 언탈바꿈되어 글 하나하나가 결코 가볍지 않게 다가옵니다.    


책의 거의 마지막쯤에 있는 <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라도>를 읽고 연달아 읽으면 좋다고 역자가 추천한 《악의 꽃》(민음사)의 <여행>이라는 시를 읽어봅니다. 욕망과 권태를 어쩌지 못하는 인간의  나고 싶은 마음 담고 있는 산문시가 <여행>이라는 시를 만나서 죽음에 대한 성찰만이 가장 값진 여행이 될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이 삶은 하나의 병원, 환자들은 저마다 침대를 바꾸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이 사람은 난로 앞에서 신음하는 편이 나을 것 같고, 저 사람은 창 옆으로 가면 치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아닌 저곳에 가면 언제나 편안할 것 같기에, 이 이주의 문제는 내가 끊임없이 내 혼과 토론하는 사안 가운데 하나이다.  - (p.128) Any Where Out of the World(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라도) - 첫머리

이어서 <여행>이라는 《악의 꽃》시집에 실린 시는 정말 한구절 한구절이 다 좋았지만 9페이지에 이르는 긴 시라서 그 중 한부분만 옮겨와 보아요.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에 지치고 허무주의에 빠진 저에게 오아시스 같은 시네요.   


VII

쓰디쓴 지식, 여행에서 끌어내는 지식이 이렇구나!

단조롭고 조그만 세계는,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언제나,

우리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권태의 사막에 파인 공포의 오아시스 하나를!


떠나야 하나? 머물러야 하나? 머무를 수 있으면 머물러라.

떠나야 한다면 떠나라, 누구는 달리고 누구는 웅크리니,

눈 부릅뜨고 지키는 불길한 적, 시간을 속이기 위함이라 !

딱하다! 저 방랑의 유태인처럼, 저 사도들처럼,


(중략)


VIII

죽음아, 늙은 선장아, 때가 되었다! 닻을 올리자!

우리는 이 나라가 지겹다, 오 죽음아! 출항을 서둘러라!

하늘과 바다가 비록 잉크처럼 검더라도,

네가 아는 우리 가슴은 빛살로 가득 차있다!


네 독을 우리에게 부어 우리의 기운을 북돋아라!

이 불꽃이 이토록 우리의 뇌수를 태우니,

지옥이건 천국이건 무슨 상관이냐? 저 심연의 밑바닥에,

저 미지의 밑바닥에 잠기고 싶다, 새로운 것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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