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문학동네,2015) 황현산 옮김
(p.102) 열린 창문을 통해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결코 닫힌 창을 바라보는 사람만큼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 한 자루 촛불로 밝혀진 창보다 더 그윽하고, 더 신비롭고, 더 풍요롭고, 더 컴컴하고, 더 눈부신 것은 없다. 태양 아래서 볼 수 있는 것은 언제나 한 장의 유리창 뒤에서 일어나는 것만큼 흥미롭지 않다. 이 어둡거나 밝은 구멍속에서, 생명이 살고, 생명이 꿈꾸고, 생명이 고뇌한다.
지붕들의 물결 저편에서, 나는, 벌써 주름살이 지고 가난하고, 항상 무엇엔가 엎드려 있는, 한 번도 외출을 하지 않는 중년 여인을 본다. 그 얼굴을 가지고, 그 옷을 가지고, 그 몸짓을 가지고, 거의 아무것도 없이, 나는 이 여자의 이야기를, 아니 차라리 그녀의 전설을 꾸며내고는, 때때로 그것을 내 자신에게 들려주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것이 가련한 늙은 남자였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의 전설 역시 어렵잖게 꾸며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잠자리에 눕는다. 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 속에서 내가 살았고 괴로워했다고 자랑스러워하면서.
어쩌면 여러분은 나에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 전설이 진실하다고 확신합니까?” 내 밖에 놓여 있는 현실이 어떤 것으로 될 수 있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것이 내가 살도록 도와주고,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내가 무엇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도록 도와주기만 하였다면. -<창문들> 전문
이 삶은 하나의 병원, 환자들은 저마다 침대를 바꾸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이 사람은 난로 앞에서 신음하는 편이 나을 것 같고, 저 사람은 창 옆으로 가면 치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아닌 저곳에 가면 언제나 편안할 것 같기에, 이 이주의 문제는 내가 끊임없이 내 혼과 토론하는 사안 가운데 하나이다. - (p.128) Any Where Out of the World(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라도) - 첫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