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땅콩 Jul 24. 2022

'여자의 일생'은 지금도 '어느 일생'으로 진행중

기 드 모파상 《여자의 일생》 1883년 프랑스 | 이동렬 옮김, 민음사

모파상의 스승 플로베르의 책을 읽었으니 제자 모파상의 책도 읽어봐야지요. 동료작가 에밀졸라의 작품도 연달아 읽기에 좋습니다. 《여자의 일생은 노르망디지역의(모파상 고향이라고 해요) 한 시골 귀족 외동딸로 자란 잔느의 결혼시점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의 30년을 그린 일생이야기에요. 꿈많던 소녀 시절에 꿈꾸는 결혼과 달리 난폭한 남편을 만나 미망인이 되고 하나뿐인 아들까지 방탕한 생활로 불행해지는 한 여자의 일생 이야기입니다. 국내에서는 '여자의 일생'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 제목은 'Uni vie' 어느 일생이 맞는 표기라고 해요.


고백독서클럽에서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이 하나같이 막장드라나 느낌이 나지만 끝까지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가 읽어보니까 그럴만도 하더라구요. 특히 바람기가 다분한 남편의 하녀 착취, 친구 부인과 불륜을 일삼는 걸 보면서 주인공 잔느의 일생은 회환과 환멸로 가득차게 되고, 삶의 이유인 하나뿐인 아들에게도 희망이 부족해보이고요. 망적이고 조금은 활기찬 조지앨리엇 작품의 인물들과는 달리 모파상은 염세주의적이지만 잔느의 심리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가는게 몰입은 훨씬 더 잘되었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이나 사건들을 개선시키기보다는 체념하고 그 흐름에 휩쓸려 생을 보내는 잔느가 답답하기도 하지만 또 어쩔수 없음을, 어쩌면 이것이 일반적인 보통의 삶이고 리얼리즘이 아닐까, 그 가운데 잔느가 행복을 느꼈던 자신의 옛집과 풍경. 바다를 그리워하는 모습들이 뒤섞인 30여년의 세월이 모여 인생이 좋은것만도 나쁜것만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제목에 '일생'이 들어가는게 딱이네요.


(p.342) 또 때때로 그녀는 자기가 늙었다는 것, 자기 앞에는 음울하고 고독한 몇 해 세월 말고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것, 자기의 길은 이제 다 걸어왔다는 것을 망각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럴 때면 그녀는 옛 이팔청춘 시절처럼 마음속으로 달콤한 계획들을 세워보고, 매혹적인 미래의 조각들을 맞춰 보기도 하는 것이었다. 뒤이어 냉혹한 현실감이 그녀를 덮쳐왔다. 그러면 무거운 물건이 떨어져 허리를 부러뜨리기라도 한 듯, 그녀는 욱신거리는 사지를 일으켜서 올 때보다 더 천천히 집을 향해 걸으면서 "오, 미친 노파! 미친 노파!"하고 중얼거렸다.


겉으로 봐서는 잔느의 일생이 우유부단한 선택과 행동으로 불행해졌을지 모르지만 알고보면 늘 우리도 그것들에게 지면서 살아가니깐요. 시시때때로 방황하고 들뜨고, 계획하거나 침울해지는 잔느의 순간 순간을 모르지 않으니깐요. 모파상이 염세주의적 세계관이라고 한다지만 저는 그안에서 한 사람의 일생에 대한 저자의 연민과 사랑을 느꼈습니다.  


(p.363) 모파상의 인물들은 자기 운명에 반항할 줄 모르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허무와 부조리에 대한 의식이 반항의 각성으로 이어지는 법이 없이 대체로 그들은 삶의 불행을 수동적으로 감내하는 인물들이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가는 주체적 존재라는 실존주의적 논리가 그들에게는 무의미한 말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작품해설중에서)


삶의 주인이 되어라, 주체적으로 행동하라는 구호가 늘 우리 삶을 채찍질하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선택은 내가 경험해 본 딱 그만큼의 영역 안쪽에 자리하죠. 모파상이 그린 어느 여자의 일생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진행중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쩔수 없이 자신을 끌고 가는 인생에 대한 한 여자의 회한을 이렇게 깊이 들여다 보게 된다면 감히 그런 구호를 외칠 수 있을까? 어떤 것이 폭력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들마치에 사는 젊은 세 여성의 사랑과 결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