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내내 남편이 태국으로 출장 가있는 바람에 몹시 바빴습니다. 월요일부터 틈틈이 재택알바도 하고 언니 선물을 같이 고르러 쇼핑몰에서 만나 안어울리게 자투리시간에 책도 읽었어요.
수요일 밤에는 며칠 요양하는 바람에 한달 가까이 못만난 글방 사람들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짧은 산문을 안주 삼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책방 짙은에서 꾸려가고 있는 이 글방은 올해 3월에 2기 모집을 했어요. 저는 1기때부터 함께했고요. 모두 여섯사람인데 현직 작가님도 같이 하고 계셔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15줄이내의 짧은 글을 썼는데 내 마음이 잘 표현되지 않아서 힘들었어요. 마침 오은 시인의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를 읽고 있었는데 그 갈증이 해소되었어요.
나름 뭔가를 깨우치고 '한층 올라갈때마다 내가 나를 너무 덮어버려서' 숨막히는 요즘이었거든요. 그렇게 너무 과한 나들과 SNS안의 다양한 너들에 대한 성찰이 담긴 시들도 눈에 띄었고, 단어를 이용해 자유자재로 안과 밖을 넘나드는 오은 시인의 표현법이 참 부러웠어요. 그 시집을 들고 금요일 오전에는 짙은책방 시모임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투명하게 보였어요. 거기다 오은 시인의 어떤 따뜻한 끝머리 시구들이 저를 위로해주더라구요.
(중략) 사방이 불투명해지는 지금
물감이 바닥을 박차고 일어나 내 손바닥 위에서 흐르기 시작한다면 바닥이 융기해서 나를 들뜨게 한다면
캔버스를 활짝 펼쳐
기꺼이 너를, 너로써 후원하고 싶다 - 오은 <물감>중에서
내가 나로써 감당하기 힘들 때, 또 너무 벌거벗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숨고만 싶을 때 그런 것들까지 모두 '나'의 한 부분으로써 바라보고 울부짖으며 끌고가는 힘을 새기는 시모임이 됐어요.
지금처럼 나를 살아있게 하는 말들을 스크랩하고 그 조각들을 꼭 껴안고 새로운 생각들이 또 그것들을 부수게 될 때까지 안아주겠다는 시인의 마음이 제 마음이고 그러네요. 이 시집 지금의 제 고민과 내밀하게 맞닿아 있어서 모임 끝나고 나서 다시 읽었네요. 놓치거나 내맘대로 해석하게 있구나 또 새롭더라구요.
이런 사춘기를 겪는 와중에 4학년 딸은 언어사춘기가 오셔서 날마나 나랑 말꼬리잡기 다툼을 많이 했어요. 말투나 말길이가 짧아지는데 <언어 사춘기>의 저자 김경집은 초등4학년때 '어른의 언어'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고 해요. 안되겠다 싶어서 저녁 먹고 코뿔소책방에서 초청한 김경집작가 특강에 다녀왔어요.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라는 책을 읽었을 때 깨닫긴 했지만 시대는 온갖 SNS로 소통하는 글쓰기가 기본인 시대로 접어들었죠. 하지만 아이들은 구술위주의 '영상'에 길들여져서 문자문화와 멀어지고 있고요. ㅠㅠ '컨텐츠시대'에 컨텐츠를 소비만 할건지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갈건지는 비판과 협력, 소통과 상상력을 키우는 인문학적 소양이 결정한다는 것이죠.
이 두 책은 출간된지 5년도 넘었어요. 그 당시에 읽을 때는 큰애가 아직 어렸어서 이참에 다시 읽으려고 꺼냈습니다.
엄마들이 학벌과 입시위주의 현 교육이 정답이 아니란 것을 다 알지만 그렇다고 다른 길에 대한 모색 또한 막막하죠. 그러다 불안해지고 중간이라도 하자 싶어서 부랴부랴 뒤처지만 않게 쫓아가고 있고요. 작가님은 교육현장과 입시, 취업현황을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진단해 주신 후 또렷한 교육 방안을 제시하셨어요. <엄마 인문학>은 왜 엄마이고 인문학이 열쇠인지 그런 강연을 묶어서 낸 책이고요, <언어 사춘기>는 문자문화, 즉 언어 근육을(외국어가 아니에요) 키우기 위한 처방들이 들어있어요. 이번 강의에서는 책에는 싣지 않은 '컨텐츠시대'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크고 작은 실천방법들이 참 좋았어요. 다음 달에 새 책 출간을 앞두고 있으셔서 조만간 또 오셔서 어제 못했던 질의응답시간을 갖기로 했으니 기대가 됩니다.
아무튼 이런 인문학적 사유를 할 수 있는 동력은 역시 지역공동체이고 그 가운데 우리 고장은 책방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요. 엄마로서 아이들의 시대적 흐름에 의제를 제기하고 청년들이 스스로 생을 버리지 않고 살만하다 느끼는 곳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기지개를 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