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 대상 건 5. 박세민 자살 기도 사건

시리즈: 국제시간여행자연합 ITA

by 그린


[20XX년 6월 14일] 홍다현

세민아, 내가 말한 대로 문자 내역 잘 보고 있지?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까 계속 확인하면서 잘 기억해 둬. (14:20)


중요한 건 어디 따로 적어 놔도 좋고. 나는 이제 수기 아니면 영 못 믿겠더라. (14:21)


일단 저번에 네가 일을 쳤던…… 아니, 사고가 났던 날짜랑 똑같은 날짜로 와 봤어. 장소도 똑같을까 싶어서 그때 그 체육창고로 와 봤는데 여기엔 아무도 없어. 다른 곳도 한번 살펴볼게 (14:23)


쉬는시간에 너희 반으로 가 봤는데 교실 안에도 없었어. 애들 말로는 네가 점심시간 지나자마자 조퇴했다고 그러는데. 벌써부터 이상하지? 내 기억에 너는 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단 한 번도 조퇴나 결석 같은 건 한 적이 없었는데. (14:50)


이상해. 너희 집에 아무도 없어. 너희 부모님은 네가 조퇴한 줄도 모르셔. 이러면 찾아야 할 범위가 감당 안 되게 확 넓어지는데. (15:25)


너 잠깐 다녔던 학원 건물 1층부터 5층까지 뒤져 보고 오는 길이야. 화장실이랑 비상계단도. 그런데 여기에도 없어. 오늘 개고생 좀 하겠는데. (15:58)


근데 세민아, 너 살아 있긴 해?

내가 너무 늦은 건 아닌가 모르겠네.

아직 완전히 죽은 네 손을 잡아 본 적은 없는데…… 네가 살아 있어야만 트리거가 발동되는 건 아니겠지? 그럼 큰일나는데. (16:12)


좀 직관적인 방법을 쓸까 봐. 경찰서에다 그냥 네가 사라졌다고 알리고 CCTV 좀 보여 달라고 하려고. 일은 좀 귀찮아지겠지만 일단 널 찾는 게 먼저니까. (16:15)


아니, 경찰서 안 가도 되겠다. 네 친구한테 전화 왔어. (16:18)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16:19)


연화동 사거리에서 널 봤대. 너희 집 가는 길목이잖아. 그때까지는 집 가는 길 따라 얌전히 가고 있었다는 뜻이잖아? 중간에 샌 거 같은데 어디서 샌 건지를 모르겠네. 아무튼 찾아야 할 범위는 줄긴 했다. (16:21)


연화동 주변으로 좀 뒤져 볼게.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겠어. (16:22)


아, 박세민 진짜 (16:26)


연화동 사거리에서 편의점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나오는 약국 기억나지? 갑자기 그게 왜 눈에 띄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보자마자 느낌이 이상한 거야. 저길 꼭 짚고 넘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왜인지는 몰라. (16:38)


근데 거기 들어가서 네 사진 보여주면서 이런 애 본 적 있냐고 물어보니까, 카운터에 있던 약사가 말하더라. 봤다고. 바로 어제도 들렀다 갔다고. (16:39)


위화감이 들어서 다시 물어봤지. 혹시 뭘 사 갔는지 기억하냐고. (16:40)

수면제를 찾더래.

대놓고 물어본 건 아닌데 자기가 요새 불면에 시달린다고, 좀 도움이 될 만한 약이 없을까 물어보더래. 장난해? (16:41)


수면제는 처방전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알았다고 하고는 그냥 돌아서서 나갔대. (16:43)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16:44)


사진을 보냈습니다. (16:45)


참고로 저번에 네가 체육창고에서 발견됐을 때 옆에 나뒹굴고 있던 약은 이거야. 미리 좀 검색해 둬도 나쁘지 않겠네. 성분이라거나 증상이라거나? 증상이라도 알고 있으면 곧 죽겠구나 하고 좀 더 빨리 눈치챌 수 있을 거 아냐. (16:47)


9년 동안 안 와서 그런가 길도 가물가물하다. 연합 들어오면서부터는 이 동네랑 영영 안녕일 줄 알았지, 다시 오게 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벌써 두 번째야. 세 번째인가? 아무튼. (16:53)


세민아, 살아 있는 거 맞지? 답장을 못 받으니까 답답하네. 왜 미래에서 과거로 연락할 방법은 없는 걸까.

헛소리야. 잊어버려. (16:56)


아, 잠깐만. (16:57)


너 자주 쓰는 섬유스프레이 있잖아. 어릴 때도 썼고 지금까지도 계속 쓰는 거. 한 번 뿌리면 향기 너무 오래 남아서 내가 너보고 뭐라고 했었잖아. 냄새만 맡아도 너 지나간 줄 다 알겠다고. (16:59)


그 냄새가 나는데, 여기서. (17:00)


농담처럼 했던 말인데 진짜 향기로 찾게 생겼네. 네가 방금 여길 지나갔나? (17:01)


너 아직 안 죽었나 봐. 살아 있을 수도 있겠다. 시간 얼마 없으니까 빨리 쫓아가 볼게. (17:01)


문이 잠겨 있어. (17:08)


내가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 설명을 안 했구나. 너 가끔 가는 치과 건물 있잖아. 3층짜리. 거기 앞을 지나가는데 네 섬유스프레이 냄새가 딱 나더라고. (17:09)


그래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까 계단 따라 향이 쭉 이어지는 거야. 향이 남아 있다는 건 네가 방금 전까지 여기 있었다는 소리잖아? 얼른 따라서 올라왔는데 옥상까지 잔향이 남아 있고, 옥상 문은 잠겨 있어. (17:11)


문 앞에 서 있는데 여기 향 엄청 진해. 네가 이 안에 있는 것 같아. 분명해. (17:12)


아무리 해도 안 열려. 클립이랑 옷핀으로 따 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되네. 경비실에 물어보고 올게. (17:14)


지금 경비 아저씨가 문 여는 거 뒤에서 기다리는 중이야. 옥상 출입은 안 된대서 옥상에서 사람 실루엣 봤다고 통 크게 거짓말 쳤는데 손에 땀이 좀 나네……. 이 안에 네가 있어도 문제고 없어도 문제다 이젠. (17:25)


아, 세상에 (17:28)


여기 있어 (17:29)


-


어느 부분에서 정신을 잃었는지는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것은 서서히 숨통이 죄어 오는 것을 억지로 견뎌내며 문자를 읽어내려가다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눈앞이 흐려지고 머릿속이 희뿌옇게 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조금도 평온하지 않고 미칠 듯이 답답하기만 할 뿐인 졸음이 나를 덮쳤고, 쉬어지지 않는 숨을 가쁘게 들이쉬었다 내쉬기를 반복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


다시금 눈을 떴을 때 내가 앞서 보았던 문자들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고, 그 자리를 더 과거에서부터 온 문자가 채우고 있었다.


-


[20XX년 6월 14일] 홍다현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11:12)


시간을 당겼어. 네가 조퇴하기 전으로. (11:13)


네가 조퇴하겠다고 하기 전에 내가 선수를 쳤어.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픈데 제발 병원 좀 같이 가 달라고.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겠다고. 사실은 진짜 하나도 안 아팠는데. (11:15)


너는 나를 엄청 걱정하더라. 눈동자가 떨리는 게 서너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도 잘 보였어. 삼 초마다 한 번씩 괜찮냐고 묻고, 아프다고 징징대는 건 난데 네가 더 아파 보이는 표정이고. (11:16)


그러니까, 이해가 안 되잖아. 나 진짜 울고 싶었어.


남 아픈 건 이렇게 자기 일처럼 잘 알아 주고 걱정해 주는 애가, 왜 자기 아픈 줄은 몰랐을까. 왜 자기 아픈 건 무서운 줄도 몰랐을까. (11:19)


내가 머리만 아프다고 해도 이렇게 오만 걱정을 다 해 주면서. 어떻게 자기 아픈 건 신경도 안 쓰고 그렇게 자기 손으로 직접…….

직접 목을 매달았을까. (11:21)


그래, 너 목 매달아서 죽으려고 했어. 죽기 직전에 내가 끌어내렸으니까 죽진 않았지만. (11:22)


왜 그런 거야? 대체 왜 그런 거야? 과거의 네게 내가 모르는 아픔이 있었던 거야? 너처럼 다정하고 유순하고 남 아픈 꼴은 죽어도 못 보던 애가, 왜 자기 자신한테는 그렇게 잔혹하기 짝이 없는 거야? (11:25)


괜한 소리를 했네. 어차피 너한테 물어도 모를 텐데. 차라리 여기 있는 과거의 너를 탈탈 털고 말지. (11:26)


이번에도 진짜 아슬아슬했어. 옥상 문을 열자마자 기절할 뻔했거든. 내가 거기서 정말로 기절했으면 너는 그대로 죽었겠지. 어쩌면 돌이킬 수 없어졌을지도 모르고. 죽은 네 손을 잡아 본 적은 없으니까. 네 시신의 손을 잡고도 트리거가 발현되는지 우리 중 누구도 모르니까. (11:28)


아…… 근데 이걸 잡아 본 적이 없다고 하는 게 맞나? 모르겠어. 아까 잡았던 네 손은 시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거든. 너는 꼭 죽은 사람 같았거든. (11:29)


방금 전에는 정말 시체 손을 잡는 것 같았어. 죽은 네 손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고. 미약하게 뛰는 맥박이 아니었으면 나는 네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거야. (11:30)


옥상 문 바로 위편의 좁은 천장에 네가……. 아니, 아니야.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아. 얼른 잊고 싶어 솔직히 말하면. (11:31)


얼른 잊고 싶어. (11:32)


그게 너라는 걸 처음에는 못 믿었어. 믿고 싶지 않았어. 새하얗다 못해 새파래진 얼굴에, 살짝 벌어진 입에, 축 늘어진 팔다리에…… (11:35)


사람이 너무 놀라면 비명도 안 나오더라. 헛웃음이 나왔어 그냥. 앞에 경비 아저씨가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냅다 너한테 달려들어서 네 다리를 밑에서 끌어안아 잡았는데. (11:38)


코끝에 네 섬유스프레이 향이 진하게 풍겨 오는 거야. 내가 너무 잘 아는 바로 그 향이. 당장 오늘 아침에도 네가 양치하면서 내 옆을 스쳐 지나가던 순간에 훅 풍겼던 그 향이. (11:39)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어……. (11:40)


시신의 손을 움켜쥐어 잡는 건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아.

그 시신이 네 얼굴을 하고 있다면 더더욱. (11:42)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그런 얼굴. 그 하얗다 못해 파란…… 싸늘하게 식어 있는 시체 같은, (11:45)


아, 못 하겠어. 안 하고 싶어. 다시는 안 하고 싶어. (11:45)


이만 돌아갈게. 현실에서 보자. (11:47)


-


나는 나도 모르게 목에 살짝 손을 대어 보았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붓기 따위는 없었다. 검푸른 멍 자국도 온데간데없었다.


그러나 입 안에선 어쩐지 쓴맛이 느껴졌다.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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