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 협박, 과거로부터의

시리즈: 국제시간여행자연합 ITA

by 그린

리 치앙 씨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피하고 싶은 일이 생기거든 눈을 꽉 감았다 뜨라고.

눈을 다시 떴을 때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엿 같은 상황이 감쪽같이 변해 있게 해 달라고 빌면서.


그럼 기적적으로 세상이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순간에 그 말이 떠오른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우연이건 어쨌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이 감기기 직전에 나는 리 치앙 씨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속으로 빌었다.


내가 다시 눈을 뜰 때쯤이면 이 영문 모를 고통이, 내게 닥친 모든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 상태였으면 좋겠다고. 내가 다시 눈을 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리 치앙 씨는 허튼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긴 했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장기를 하나하나 사방에서 쿡쿡 찔러 대는 것만 같던 고통은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그러니까, 눈을 감았다 뜨자 세상은 다시 멀쩡하게 돌아와 있었다는 뜻이다.


물론 그건 기적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다현의 피나는 노력의 결실에 가까웠다.


-


눈을 뜨자, 아이러니하게도 눈을 감고도 그려 볼 수 있는 익숙한 천장이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내 방, 내 침대였다. 나는 멀쩡히 살아 있었다. 죽는 줄로만 알았는데. 정말 죽는대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의 고통이었는데.


천천히 몸을 일으켜 보았다. 소리를 지르며 온 힘을 다해 뒤틀어 대는 것만 같던 몸 안이 이제는 잠잠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 한쪽 벽에 걸린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입을 벌려 보았다.


입 안은 멀쩡했다. 혀뿌리, 혀끝, 입천장. 모두 혈색이 제대로 도는 평범한 분홍색이었다.


그대로 거울에 이마를 기댄 채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벌컥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박세민.”


놀람과 안도가 반씩 섞인 호명이었다. 조금 지친 얼굴의 다현이 거울 앞에 선 나를 보고는 놀란 표정을 했다.


“....... 멀쩡해?”


다현의 물음에 내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다시피.”


그제야 다현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방금 전 내가 내쉰 것과 같게 들리는, 금방이라도 땅을 향해 떨어질 것만 같은 한숨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이야?”


내가 조심스레 묻자 다현은 말없이 옆의 안락의자를 끌어당겨 쓰러지듯 그 위에 앉았다.


“얼마 전에 네 과거가 바뀌었잖아. 기억나지? 네가 당한 적 없었던 사고가 과거의 너한테 일어났잖아.”


따뜻한 물을 입에 머금은 채 한참이나 숨을 고르던 다현이 처음으로 꺼낸 말은 이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다현이 말을 이었다.


“그거 사고가 아니었던 것 같아.”


“뭐?” 내가 얼빠진 투로 되물었다.


다현은 다시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양손으로 컵을 쥔 채 흔들리는 수면을 내려다보던 다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놀라지 말고 들어.”


또 그 소리. 이렇게 시작하는 말의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놀라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한 번 경험한 바 있었다. 나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러나, 다현의 입에서 흘러나온 다음 말은 각오를 한 나로서도 귀를 의심케 만드는 내용의 것이었다.


“열일곱 살의 네가 살해당할 뻔했어.”


“....... 뭐라고?”


이번에야말로 정말이지 멍청한 투로, 내가 되물었다.


살해당할 뻔했다고? 누가? 누구에게?


“그게 무슨…….”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나를 향해 다현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열일곱 살의 네가 죽어 가고 있었어. 그래서 현재의 너도 같이 죽을 뻔했던 거야. 과거의 네가 죽으면 현재의 너는 없게 되니까.”


목구멍이 틀어막힌 것 같다는 표현은 이런 느낌을 두고 하는 말이었을까.


나는 말없이 눈을 깜빡였다. 한순간에 쏟아져 들어온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 왜? 누구 짓인데? 범인이 누구였는데?”


내 물음에 다현이 알 듯 말 듯한 찰나의 미소를 지었다. 차가운 그 미소는 내 질문이 지극히 옳은 동시에 지극히 그릇된 것만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너를 죽이려고 한 건,”


다현의 입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였어. 열일곱 살의 네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고 있었어.”



적막이 흘렀다.


다현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나는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고?


현재의 내가 이렇게 두 눈 뜨고 멀쩡히 살아 있는데, 과거의 내가 목숨을 끊으려 했다고?


“내가…….”


뒷말은 완성되지 못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오른쪽 벽에 걸린 거울을 보았다.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도 잘 아는, 익숙하다 못해 지겹기까지 한 얼굴이었다.


아니, 아니다. 정말 저 얼굴은 내가 아는 얼굴이 맞나?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는 나 자신의 눈동자가 어째서인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묘하게 느껴졌다.


죽이려고 했다고?

네가, 나를?


“약을 먹으려고 하고 있더라. 아니, 독인가.”


입 밖으로 내어놓지 않은 의문에 답을 하듯, 다현이 덤덤히 당시의 상황을 읊조렸다.


“네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피를 토했으니까, 분명 과거의 너한테 문제가 생긴 거라고 생각했어. 어떤 시간대의 네게 문제가 생긴 걸까 생각해 봤는데 그 사고가 마음에 걸리더라고. 원래는 일어나지 않았던 사고를 겪은 열일곱 살의 네가.”


나는 거울에서 시선을 떼고 다현을 마주보았다. 차분하기 짝이 없는 그 얼굴은 언뜻 냉정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티나지 않게 꼼지락거리는 손이 불안을 얼핏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구 년 전으로 가 봤어. 우리가 열일곱 살이던 때로.”


다현은 내 눈을 피하며 시선을 살짝 내리깔았다.


“그때랑 똑같은 체육창고였어. 이번엔 옷장에 깔린 게 아니라, 약을 한 움큼 삼킨 상태였고. 너는 쓰러져 있고,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새파래져 있고, 옆에는 약병이 나뒹굴고 있고……. 손은 빳빳하게 굳어 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을 애써 태연히 주워섬기듯 다현이 조근조근 말을 이었다.


“그 빳빳하게 굳은 손을 내가 잡았지. 숨이 끊어질락 말락 하는 것 같더라. 굳어 있긴 해도 온기는 여전히 남아 있었으니까.”


나는 도무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반쯤 생기를 잃은 듯한 다현의 지친 눈길이 내게 잠시 머물렀다.


“네가 그 체육창고로 들어가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렸어. 너한테 뭐 하는 거냐고, 그 약은 다 어디서 난 거고 무슨 짓을 할 계획이냐고 다그쳤는데 너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굴더라. 너한테 약이 어디 있냐면서.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잡아떼면서.”


목구멍이 다시 한 번 단단히 틀어막혔다. 충격에 살짝 벌어진 입 사이를 힐긋 살피던 다현이 내뱉었다.


“........ 입 안은 멀쩡해 보이네. 세민아, 너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순서대로 읊어 봐.”


영문을 몰랐지만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내가 말하는 양을 잠자코 듣고 있던 다현이 뒤이어 내뱉었다.


“양쪽 팔 한 번씩 들어 볼래?”


“양쪽 팔?”


의문에 찬 목소리로 되묻긴 했지만 나는 또 다시 시키는 대로 했다. 아무튼 다현은 이유 없이 허튼 소리를 하는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왼쪽 팔을 들었다 내린 나는 오른쪽 팔을 들었다. 아니, 들려고 했다.


“어.”


오른쪽 팔은 왼쪽 팔만큼 높이 들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응시하던 다현이 말했다.


“후유증이 남아 있네. 내가 널 완전히 막지는 못했나 봐. 내가 없는 곳에서 또 약을 먹으려고 시도한 건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반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들 수 있는 높이가 다른 양쪽 팔은 다현의 말이 맞다고 소리를 지르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다시 다녀와야겠네. 아무래도.”


그렇게 말한 다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말 한 마디 없이도 나는 다현이 원하는 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다현에게 손을 마주 내밀었다. 다현이 내 양손을 꽉 붙잡았다.


다현이 속삭이듯 내뱉었다.


“여기 얌전히 있어.”


그리고, 다현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손을 쥐고 있던 작은 힘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허공에 뻗어진 내 손을 갈무리하며 나는 다현이 앉아 있었던 안락의자에 느릿하게 기대어 앉았다.


여기 얌전히 있으라니, 웃기는 말이었다. 내가 달리 어디를 갈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과거로도, 미래로도 갈 수 없는데.


-


친애하는 한국 지부께.


ITA 아시아 연합본부에서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비록 2회 이상의 작전 참여를 필요로 했던 지난한 사건이었지만, 한국 지부의 실행력 덕에 성공적으로 홍콩 디즈니랜드 총격 사건을 구제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공동체의 일원을 위해 기꺼이 솔선수범하는 자세는 오래도록 귀감이 될 것입니다.


누구의 부상도 없이 무탈히 구제 작전을 수행하고 귀환한 여러분의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 ITA 아시아 연합본부 본부장, 리 치앙.



누구의 부상도 없이 무탈히라.

그건 까 봐야 알겠는데요. 서신을 읽으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파래졌던 혓바닥은 선홍빛으로 돌아왔고, 잘 들리지 않았던 오른쪽 팔도 멀쩡하게 들었다 내렸다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위장이 뒤틀리며 기도를 찢고 터져나오던 그 피 섞인 기침의 맛은 아직 혀끝에 생생했다.


그건 일종의 죽음의 맛이라면 맛일 것이었다.


-


“이제 진짜 여름 가기 전까지는 작전 없다. 작전 끝!”


식탁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앉은 효신이 맥주잔을 들고 신나게 외쳤다.


“그게 말처럼 되겠냐.” 핀잔을 주기는 했지만 해솔은 함께 맥주잔을 들고 효신의 잔에 맞부딪혀 주었다.


“근데 너 술 마셔도 돼?”


“아니 오빠, 나 성인이라니까 몇 번을 말해?”


해솔과 효신이 투닥거리는 소리를 안주 삼아 연수 형이 잔을 깨끗이 비웠다.


“양심이 있으면 적어도 올해 남은 기간 동안에는 또 짬처리 해 달라 소리 못 하겠지. 고생했어 얘들아.”


연수 형의 공치사에 효신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래요, 또 뭐 대신 처리해 달라고 하면 오빠 선에서 확 끊어요 그냥.”


“노력할게.”


“아, 이제 진짜 당분간은 사건사고 안 터졌으면 좋겠네. 대한민국이 이렇게 시끄러운 곳인 줄 몰랐어 나는.”


해솔이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으며 심드렁하게 내뱉었다.


“진짜. 몸 편하자고 연합 들어온 건데 어째 들어온 이후가 더 빡센 거 같네.” 효신이 거들었다.


연수 형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상 선택권은 없었으니까 뭐. 연합에 등록 안 된 미허가 타임워커로 사는 게 얼마나 고달픈데.”


“그건 그렇지만.” 해솔이 우물거리며 내뱉었다.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드리운 채 모두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양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연합에 등록은 되어 있어 ‘미허가'는 아니었지만, ‘타임워커'도 아닌 나는 딱히 할 말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왜 그래? 혀 씹었어?”


순식간에 느껴진 고통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자, 효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나는 입을 가린 채 답했다.


“아……. 입 안에 상처 났는데 그걸 건드렸나 봐.”


“입 안에 상처 났어? 피곤한가 보네.”


쌈채소에 고기를 야무지게 올리며 효신이 걱정 아닌 걱정의 말을 내뱉었다. 나는 태연히 웃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잠깐 화장실 좀.”


마음이 급해졌다. 모두가 둘러앉아 있는 다이닝 룸을 잰걸음으로 빠져나온 나는 그 길로 곧장 위층의 화장실을 향해 달렸다.


입 안에 느껴지는 이물감이 선명했다. 동시에 타는 듯한 갈증이 일었다.


벌컥.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화장실 문이 열렸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세면대로 달려가 몸을 숙였다.


“콜록!”


기침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입 안에 고인 것을 세면대에 뱉어냈다.


불그죽죽한 피가 흰 세면대 위에 방울방울 쏟아졌다.


거울을 노려본 채 입가를 닦아내며 나는 생각했다.


독인가?


입을 살짝 벌려 보았다. 입 안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선홍빛이었다.


저번과 같은 독은 아닌가.

그럼 이번에는 뭐지?


숨이 점점 막혀 왔다. 숨통을 죄어 오는 답답함에 나는 가슴을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다현에게 캐물어서 지난번의 자살 시도에 쓰인 독, 아니 약이 정확히 무슨 종류였는지 확인해 둘걸. 찰나의 후회가 뇌리를 스쳤다.


거울을 다시 들여다보는데, 나도 모르게 입이 절로 열렸다.


“아……. 독이 아니네. 뭐 이렇게 철저해?”


내 목을 둥글게 둘러싸고, 검푸른 멍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질식사인 모양이었다.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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