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혓바닥

시리즈: 국제시간여행자연합 ITA

by 그린

경쾌한 음악이 사방에서 흘러나온다.


분홍색, 연한 하늘색, 노란색, 초록색. 눈길이 닿는 곳마다 파스텔 톤의 색들이 펼쳐진다.


뒤돌아 서 있는 남자의 옅은 갈색 머리칼이 바람에 부드럽게 휘날린다.


남자가 뒤를 돌아본다.


남자가 화면 가까이 다가오자 비로소 얼굴이 또렷이 보인다. 연수 형이다.


송출 상태를 확인한 연수 형이 화면을 향해 말한다.


“지금은 20XX년 6월 11일 오후 1시 3분입니다. 기록 시작하겠습니다.”


효신이 팔짱을 낀 채 연수 형 곁으로 다가온다. 그 뒤편으로는 주위를 슥 둘러보고 있는 해솔의 모습이 보인다.


“구제 대상 건 4. 홍콩 디즈니랜드 총격 사건. ……. 사실 한국 지부에 정식으로 내려온 사건이 아니니 구제 대상 건 넘버링에 포함시키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연수 형의 말이 길어지자 해솔이 정색하며 연수 형의 어깨를 툭 쳤다.


“형, 갈구는 건 나중에 해요. 지금은 녹화부터.”


“아 알았어. 무슨 말을 못 하게 해.”


툴툴댄 연수 형이 다시 화면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참여 요원은 허연수, 서해솔, 이효신입니다.

구비 물품은 놀이공원 내 상호 통신을 위한 소형 무전 장치 3대, 유사시를 대비한 테이저건 1정 및 전기충격기 2대, 요원 서해솔의 트리거 시행을 위한 물품 1종, 요원 이효신의 트리거 수행을 위한 물품 2종, 디즈니랜드 진입을 위한 티켓 3매입니다. 이런 것까지 말해야 하나?”


“형.”


“알았어, 알았어. 아무튼 진입 시작하겠습니다. 현 위치는 디즈니랜드 정문입니다.”


말을 마친 연수 형이 기록 장치를 옷에 부착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은 연수 형이 보고 있는, 아니 보았던 시선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나와 다현은 모니터링실에서 가장 널찍한 의자를 하나씩 차지한 채 큰 화면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참이었다.


책상에 엎드리다시피 하고 있던 다현이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예상은 했지만 진짜 장난 아닌 인파네. 저날 무슨 공휴일이야?”


“원래 관광지긴 하니까.”


과연 화면 너머로 보이는 디즈니랜드 속 인파는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수많은 가족 단위 나들이객, 무리지어 돌아다니는 친구들,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들…….


“저 많은 사람 틈에서 어떻게 찾지? 고생 좀 하겠네.”


다현이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정확히 같은 내용의 말을 내뱉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문 게이트 근처에 잠복해서 지침서의 인상착의와 유사한 남성들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정문 인근 인파가 생각보다도 더 심한 수준입니다. 사건 발생 현장 인근에서 수색 시작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네요. 투모로우 랜드 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연수 형의 목소리가 알록달록한 디즈니랜드 풍경 위로 덧씌워졌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있는 폭풍전야의 모습이라지만, 화면 너머로 비치는 6월 11일 디즈니랜드의 모습은 활기차기 그지없었다. 색색의 풍선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는 부모님의 손을 꼭 잡은 어린아이들, 캐릭터가 그려진 머리띠를 맞춰 쓰고 나란히 걷는 학생들, 아이스크림을 들고 사진을 찍는 데 여념이 없는 친구들.


“솜사탕 맛있어 보인다. 아이스크림도.”


턱을 괸 채 화면을 응시하던 다현이 툭 내뱉었다. 나는 다현 쪽을 보며 물었다.


“우리도 냉장고에 아이스크림 있을걸. 좀 가져올까?”


조금 죽은 듯 보였던 다현의 눈에 생기랄 것이 찰나간 돌았다. “그래, 그걸로 기분이라도 내자.”


나는 소리 없는 미소를 삼키며 아이스크림을 가지러 의자를 끌고 일어났다.


-


“캐릭터 분장한 사람은 많은데, 전부 애들 아니면 성인 여성인데요.”


화면 속 해솔이 연수 형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가 화면을 통해 보고 있는 시야 안에는 캐릭터가 그려진 옷을 자랑스럽게 차려입은 어린아이들, 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퀄리티의 의상을 갖춰 입고 지나가는 어린아이들에게 마치 만화영화 캐릭터인 양 인사를 건네는 스태프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보였다.


그러나 그 많은 인파 중 어디에서도 ‘분장을 한 남성’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손목에 힐긋 시선을 준 뒤, 연수 형이 답했다.


“조금 있으면 퍼레이드 시작한다고 하니까 일단 그때까지 기다려 보자. 별 수 없지 뭐.”


효신이 물었다. “그러다 늦으면요? 퍼레이드 시작하자마자 총기 난사하면 어떡해요?”


“그럼 시간을 다시 돌리든가 해야지, 어쩔 수 없어. 사전 조사관도 작전 한 번으로 못 끝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잖아?”


연수 형의 말에 해솔이 시니컬한 표정으로 보탰다. “사실 이 인파 속에서 특정한 사람을 찾는다는 거 자체가 어불성설이야. 말이 안 돼.”


과연 말이 안 되어 보이기는 했다. 사방을 가득 메운 이 군중 속에서 겨우 ‘캐릭터 분장을 한 남성’이라는 단서 하나만으로 6명의 사람을 특정한다는 것은 말이 좋아 수사지 까마득한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화면을 응시하던 다현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월리를 찾아라’ 같은데.”


“걔는 인상착의라도 확실하지. 이게 더 질이 안 좋아.”


“그건 그렇네.” 다현이 딸기 맛 아이스크림을 스푼으로 떠 입에 넣으며 말했다.


나는 소다 맛 아이스크림을 조금 떠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우리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연수 형 일행은 펜스 근처에 자리를 잡고 멈추어 섰다. 퍼레이드가 지나갈 시간이 다가오자 주변의 사람들도 하나둘 길가의 가장자리로 물러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어, 온다.”


“온다.”


화면을 보고 있던 다현과 화면 속 해솔이 거의 동시에 말을 꺼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쾌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지 갈 수 있지.


분명 들어 본 적은 없지만 묘하게 익숙한 리듬의 노랫말이 화면을 타고 흘러나왔다. 무수히 많은 악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며 우렁찬 화음을 만들어냈다.


“효신아, 넌 저기 왼쪽 코너로 가 있어. 해솔이 너는 저기 파란 벤치 쪽으로 가 있고. 수상한 사람 보이면 나한테 오지 말고 바로 경찰에 연락 때려.”


연수 형이 저만치서 다가오는 색색의 퍼레이드 행렬을 보며 낮게 속삭여 지시했다. 효신과 해솔은 빠르게 눈빛을 교환하고는 곧장 자신이 맡은 방향으로 향했다.


- 눈을 감았다 뜨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지.


온 사위가 축제 분위기였지만 그 속에 우리만 느낄 수 있는 긴장감 한 줄기가 떠다녔다.


나와 다현은 마지막이래도 좋을 일촉즉발 직전의 고요함을 누리며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었다.


빨간 아이스크림을 스푼으로 떠 입에 넣는 다현의 입 안이 살짝 붉었다.


그 모습을 본 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다현아, 너 혓바닥 빨개.”


“알아. 너는 혓바닥 파래.”


그렇겠지. 나는 아이스크림을 녹여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스푼으로 남은 아이스크림을 뜨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그렇겠지, 라니.

그럴 리가 없는데.


지금 내가 뜨고 있는 이 옅은 하늘색의 소다 맛 아이스크림에는 색소랄 게 없는데.



내 혓바닥이 왜 파랗지?



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다현에게 다시 물었다.


“내 혓바닥이 파랗다고?”


이제 보니, 다현은 조금 당혹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 그렇다니까.”


“........ 이거 먹었다고 혓바닥이 파래져? 왜?” 나는 멍청히 되물으며 거울이 될 만한 것을 찾아 바삐 고개를 돌렸다. 그건 다현이라고 대답해 줄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탁자 위에 놓인 작은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거기에 얼굴을 비춘 뒤 얼른 입을 벌려 보았다.


혓바닥이 새파랗게 변해 있었다.


혀뿌리부터 시작해서 혀끝까지, 마치 독이라도 들이부은 것처럼 시퍼런 빛깔로.


그 푸른빛은 선명했고 섬뜩했다. 아무리 머저리라도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이건 색소 따위로 만들어낼 수 있는 푸른빛이 아니라는 걸.


당혹에 몸이 굳는 것이 느껴졌고, 동시에 화면 너머에서 익숙한 해솔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형.”


연수 형이 착용한 소형 무전 장치 너머로 해솔이 말했다.


“이쪽에 스크림 가면 쓴 남자 보여요. 손에 딱히 들고 있는 건 안 보이는데, 일단 신고할게요.”


그 말을 듣는데 어째서인지 속이 불편했다. 금방이라도 무언가 올라올 것처럼 위장이 요동치는 느낌이었다.


배탈이라도 난 걸까? 역시 아이스크림이 이상했나?


나는 입을 막은 채 화면 너머 해솔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형, 그런데.”


잠시 망설이더니 해솔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스크림 가면이 하나가 아닌데요.”


“뭐?”


“스크림 가면 쓴 사람이 하나 더 있어요. ……. 아니, 방금 다시 하나 더 생겼어요.”


- 우린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지 갈 수 있지. 우리들은 어디에나 있지.


북 소리, 아코디언 소리, 트럼펫 소리가 섞인 유쾌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 마음이 불안할 때는 눈을 감았다 떠 봐. 세상이 바뀌어 있을걸.


귓가를 찌르고 들어오는 노랫소리에 머리가 아팠다. 어쩐지 어지러운 것도 같았다.


발랄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조금 당황한 것 같은 해솔의 급한 목소리가 노랫소리를 가르고 흘러나왔다.


“스크림 가면이 또 있어요……. 벌써 네 명째야. 아, XX. 확실히 수상하네. 일단 신고-.”


탕-.


해솔의 말을 자르고, 귀를 찢는 듯한 거센 파열음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나는 저 목구멍 너머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울컥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목구멍을 가르는 듯한 기침이 거칠게 터져 나왔다.


“콜록!”


예상 밖의 소리에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던 다현은 그 기침 소리를 듣고 다시 내 쪽으로 몸을 휙 돌렸다.


“왜 그래?”


“큽…… 쿨럭!”


참아 보려 했으나 기침이 목구멍 벽을 타고 올라오는 듯 연이어 터져나왔다. 속이 뜨거웠다.


탕-.


“쿨럭!”


탕-.


기침 소리와 총성이 연이어 울렸다.


입가를 타고 뜨끈한 무언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입을 막았던 손을 내려 확인했다. 피가 묻어나와 있었다.


꺄아악! 아악!


내가 보고 있는 광경에 화답이라도 하듯, 피를 토해낸 나를 보고 경악이라도 하듯 화면 너머의 사람들이 소리 높여 비명을 질렀다.


탕, 탕.


연수 형이 달려나가며 화면 앵글이 정신없이 흔들렸다. 연수 형이 소리 높여 뭐라고 외치는 것 같았지만 영상이 자꾸만 끊기는 통에 무슨 말인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무어라 외치는 소리,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쿨럭!”


“왜 그래? 괜찮아?”


내가 다시 한 번 거세게 기침을 뱉어내자 다현이 다가왔다.


영상 너머로 사람들의 비명이 뒤엉켰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갉아먹었다.


끔찍한 음질의 소음이 한데 엉켜 스피커를 부술 듯이 몰려나왔다.


- 도망쳐!


- 해솔아, 효신아, 트리거-. ……. 1시간 전 과거로 다시-. …….


- 엄마! 아아악!


화면 너머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흔들리는 앵글이 가닿는 곳곳마다 선혈이 보였다.


쓰러진 사람들, 쓰러진 사람을 붙들고 경악하는 사람들……. 그리고 총을 든 채 활보하는 스크림 가면. 아니, 가면들.


족히 대여섯 개는 되어 보일 것 같은 스크림 가면이 일제히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닿자 순간적으로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


그 느낌은 착각이 아니었다.


창자가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위장이 거꾸로 요동치는 느낌에 나는 그대로 입을 막은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왜 이래? 박세민! 정신 차려!”


사색이 된 다현이 내 상태를 살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화면 너머로 흘러나오는, 과거의 아수라장에서부터 온 아우성과 괴성이 그렇잖아도 끔찍한 고통을 배가시켰다.


- 살려주세요!


누구의 목소리일지도 모르는 그 단말마가, 그렇게 내 이야기 같을 수가 없었다.


시야가 희뿌옇게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박세민,

박세민!


다현의 목소리가 점차 희미해졌다.


눈이 절로 감겼다.


막 닫히려는 눈꺼풀 사이로 내가 보았던 마지막 모습은, 나를 향해 달려와 손을 움켜쥐는 다현의 모습이었다.


그 뒤로는 암전이었다.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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