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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울 Jun 03. 2023

7. 아이구 공포의 만두귀네?

이깟 게 뭐라고 유용한 구석이 있다.

그들은 그 아이의 새카만 머리카락 밑 이마 위에 번개 모양의 상처를 볼 수 있었다.
"이게 그...?" 맥고나걸 교수가 속삭였다.
"그래요." 덤블도어가 말했다. "이 아이에겐 이 흉터가 영원히 남을 거요"
"어떻게 좀 해볼 수는 없나요 덤블도어?"
"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하지 않을 거요. 흉터는 때로 유용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오. 내 왼쪽 무릎 위에도 꼭 런던 지하철 지도처럼 생긴 흉터가 하나 있지요"

-J.K. 롤링,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어렸을 때 지현이라고, 우리동네에서 나름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친구가 있었다. 골목대장답게 인기도 많고 축구도 잘 하고 욕도 잘하는 녀석이었다.

또 동네에서 나름 패셔니스타의 지위를 갖고 있었고, 그에 자부심도 대단했다. 자기도 안경을 쓰고 싶다며 멀쩡한 시력을 떨어뜨리고자 티비 모니터 바로 앞에 눈을 부릅뜨고 앉아있는 기행을 벌일만큼, 외모에 민감한 아이이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한번은 (그 나이때 애들이 으레 그렇듯이) 시시껄렁하게 서로 놀리고 시비를 걸면서 여럿이 걷고 있었다.

지현이가 먼저 나에게 내 눈썹을 가지고 놀렸다.(그 당시에 눈썹이 거의 없었어서 모나리자라는 놀림을 받곤 했다) 속으로는 약이 올랐으나 겉으로 그걸 티냈다간 완전 바보되는 상황이다. 나는 나대로 질세라 지현이의 작고 찢어진 눈을 소재로 기가막힌 농담을 한토막 만들어서 던졌다.

애들이 깔깔 웃었다. 웃음판정단에 의해 내가 이 한 판에서는 작은 승리를 거뒀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외모에 민감한 지현이가 너무 약올라서 화를 내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되기도 했다. 지현이는 조금 다혈질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내 예상과는 달리, 그저 피식 웃으면서 한마디 던졌다

"눈 작으면 좋지 뭐. 먼지 안 들어가고"

17년전 어느 날, 동네에서 유명한 그 14살짜리 철딱서니가 툭 던진 그 말을 나는 여지껏 잊을 수가 없다.





세상에 일방적으로 좋거나 일방적으로 나쁘기만 한 것은 없다는 것은 살면서 자연스레 터득하는 새삼스러운 지혜다. 새삼스러운 짓을 한번 해보자. 기형인 귀 덕분에 인생에서 덕본 것을 생각해본다.

이따위 것에서 무슨 장점이 있었겠냐마는, 하나 있긴 하다.


그것은 바로 '쎄 보인다'는 것이다.

(*표준어 '세다'는 '자장면'과 함께 폐기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줘야 한다.)


21세기 문명사회, 그것도 세계 선진국 순위에서 대략 열손가락 안팎에 드는 나라의 대도시에서 사는 교양인이, 품위, 지식, 성격도 아닌 '겉으로 쎄 보인다는 것'을 장점이랍시고 이죽거리면 볼 성 사나울 법도 하다.

그러나 당신이 숫자를 다루는 회계사이든, 섬세하고 여린 예술가이든, 아이를 달래는 유치원 교사이든, 당신이 만약 XY염색체를 갖고 태어났다면 일정 수준의 '거칠어 보임'은 인생에서 적이 유용하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 귀를 소위 만두귀의 일종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레슬링이나 유도 같은 그래플링을 오래 수련하여서 귀에 변형이 온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주로 남자들, 특히 싸우는 스포츠에 관심있거나 직접 배워본 상남자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에 만두귀 라고 검색해보면 나오는 글들이다



한번은 주짓수, 유도, 합기도 등 무술 도합 몇단이라던 형님을 어느 모임에서 알게 된 적이 있다. 처음에 나에게 뭔가 태도가 좀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다 싶었다. 그런데 나중에 조금 친해졌는데 그때 슬며시 내게 말했다. "사실 말이야. 너 처음 봤을 때 네 귀를 보고 우리끼리 그랬어. '와 쟤 귀 봐봐. 쟤 앞에서는 절대 깝치지 말아야겠다'"

그런가 하면 또 얼마 전에는 병원을 갔는데, 그 곳 의사선생님도 위에서 묘사한 그 익숙한 눈 굴리기를 몇번 하더니만, 나에게 대뜸 물었다. "어유 공포의 만두귀네? 싸움 좀 했어요?"

만두귀라는 것을 현실에서 본적은 없으나, 이런 얘기를 몇번 듣다보니 나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사진을 보았다. 만두귀는 정말 만두처럼 생겼다. 내가 보기엔 징그럽기만 한데 누군가에게는 또 강한 남자의 훈장처럼 여겨지는지, 누군가는 일부러 만두귀를 만들고 다니기도 한다는 것 같다.

엄밀히 말해 내 귀는 만두귀하고는 하나도 안 닮았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만두귀는 속에서 겉으로 부풀어 올라 커진 모양새인데, 내 귀는 겉에서 속으로 말려들어가 작아진 모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고 뭐고 할 것이 뭐 있겠는가? 어쨌든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매우 무서운 인간병기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준다는 것은 나처럼 싸움 못하는 사람에게 꽤 유용하다.


생각해보면 대중문화에서도 어떤 장애나 흉터, 신체의 변형 등은 강력한 포스와 멋을 더해주기도 한다. 토니 몬타나의 얼굴에 길게 그어진 칼자국이 주는 카리스마 때문에 그가 주인공인 영화의 제목이 <스카페이스>인 것 아니겠는가.


나의 작고 찌그러진 귀를 보고선 누군가가, 나의 거칠고 어두운 과거를 상상하고, 나라는 인간의 갱생과 구원에 감동하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두려움까지 느낀다면, 그래서 차 사고나 길거리에서의 어깨 부딪힘 등의 상황에서 내게 섣불리 욕부터 뱉기보다는 신사적으로 나오는 데에 일말의 도움이라도 된다면, 과히 나쁘지만은 않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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