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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울 Jun 02. 2023

6. 상호 모른척의 룰과 배려의 봉인

기형을 본 사람들의 반응

"얼굴 표정이라고 하는 것은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 사람에게 갖춰져 있어. 특히 자네 표정은 매우 정직한 것이니 말야."
"내 표정을 보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걸 알았단 말인가?"
"자네의 표정, 특히 눈 움직임으로 알 수 있었지. 자네는 자신의 몽상에 대한 시작을 기억하고 있지 않겠지?"
"맞아, 기억하고 있지 않아."
"그렇다면 설명해 주도록 하지."

- 아서 코난 도일, <셜롬 혹즈의 회상록> 中



사람을 새로 만나서 처음 대화를 나눌 때 자주 경험하는 것이 있다.

말하면서 내 눈을 보던 상대방의 눈동자가 내 오른쪽 귀로 향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3~4번쯤 반복하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10명 중 5~6명 쯤이 첫만남에 그러곤 한다.


아마 처음엔 눈을 너무 뚫어져라 보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 때문에, 본능적으로 코나 입 이마 등으로 시선을 한번씩 돌렸다가 다시 눈으로 돌아오려던 것이었으리라.


의식적으로 생각하는건 아닐 것이나 아마 상대방의 무의식에서는 대략 이런 작용이 순차적으로 벌어질 것이다.

'잠시 코 한번 찍고 다시 눈으로..... 그러다 입 한번 찍고 다시 눈으로..... 그러다 귀 한번 찍고 다시 눈... ? 방금 그건 뭐였지?'

그러면 그 눈동자는 다시 그 귀를 향한다.

'뭔가 이상하군' 그의 생각이 들리는 듯 하다.

눈동자는 빠르게 움직여 이번엔 반대쪽 귀를 체크한다. '여긴 안 그러네' 

눈동자는 한번 쯤 다시 그 찌그러진 귀를 향해서 재확인 한다. '아, 한쪽만 이렇구나'


드디어 모든 파악을 마친 눈동자는 다시 내 눈을 향한다. 이 사람은 이제 내 귀가, 그것도 한 쪽 귀만 찌그러져있으며 아마도 어떤 사고나 기형이라는 슬픈 사연에 의한 것이리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방금 전 자신의 눈알 굴림이 너무 티가 났을런지 뒤늦게 자신의 경솔함을 신경쓰면서, 마치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이 내 눈을 응시한다. 눈동자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매우 의지적으로.


모든 일은 약 2초 동안 벌어진다.

하도 많이 경험해서 이제 익숙하다.

어린 시절 좋아하던 여자애, 새 학년 담임선생님, 예비군 훈련에서 같은 조였던 아저씨, 출장가서 만난 거래처 직원들,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발견한 패턴이다.


이렇게 나의 귀를 발견하는 양상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그에 대해 겉으로 드러내는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반응, 모른 척물어봄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1. 모른 척 한다


가장 흔한 유형이며, 내 입장에서는 갈수록 흔해지는 유형이다. 갈수록 흔해진다 함은, 사람들이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접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에 기인한다.
어렸을 때는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나와 비슷한 어린애들이다. 어린애들은 보는 족족 '너 귀가 왜 그러냐'고 기어이 물어보고야 만다. 생각건대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1) 이상하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경험이 적은 어린 아이들로서는 인간다양성에 대한 데이터가 매우 부족하다. 그러니 눈에 걸리는 모든, '자신(+가족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지독히 이상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7살때였나, TV에 나온 홍석천님이 '동성애자'라길래 엄마에게 그게 뭔지 물어본적이 있는데, '남자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설명을 듣고서는 과장 좀 보태면 '세계관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2) 궁금하다 

어리고 늙고를 막론하고, 모든 이상한 것에 대해서는 궁금함을 갖기 마련이다.

(3) 주저없다 

물어보고 언급하는 행위가 상대에게 미칠 감정적 영향에 대한 학습이 아직 없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이 매년 한살씩 먹으면서는 위의 세가지 이유가 사라진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 그들의 심리는 다음과 같이 변한다.


(1) 안 이상하다

물론 이상하기야 하지만, 살다보니 별의별 인간들의 사연을 다 겪게 되다보니, 이 정도의 이상함은 평범해진다. 같은 반에 틱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었다던지, 홍대에서 온몸과 얼굴을 뒤덮는 문신을 한 사람을 봤다던지,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오체불만족>을 읽어봤다던지 하면서, 한 인간의 사고에 새겨지는 이상함의 기준에도 인플레이션이 생긴다. 세상의 허다한 이상함들과 매일매일 싸우느라 갈수록 피곤해지는 성인들로서는 '한쪽 귀가 반쯤 찌그러짐' 정도에 의식을 소모할 여유가 없다

(2) 안 궁금하다

물론 궁금하긴 하다. 그러나 충분히 궁금하지 않을 뿐이다. 숱한 경험을 통해 이제는 처음 보는 어떤 것을 보고도 그 원인이 뭐였을지 상상하는 능력이 생긴다. 예를들면 "뭔 사고가 있었나보지"하는 식이다.

(3) 주저한다

성인이 된다는 것의 성취 중 하나는, 어린 시절과는 달리 이제 상대에 대한 악의없는 호기심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는 것이다. 문명사회의 교양인답게 사람들은 남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리스크를 굳이 지면서까지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들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른척한다. 취직하여 회사를 다닌지 2년 4개월이 되었는데, 여지껏 나한테 "귀가 왜 그래?"를 물어본 사람은 단 한명 밖에 없었다.

그러니 나 역시 이 회사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몸에서 나는 악취,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 어제보다 사뭇 늙어보이는 얼굴, 새로 사 입고 온 자켓이 촌스럽다는 사실 등에 대하여 함구하기로 한다. 상호 모른척의 룰이 만들어준 균형점에서는 나도 편하고, 그 사람들도 편하다.




2. 어본다


모두가 모른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듯,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왜'를 물어본다. 그 안에 담긴 심리에 대한 내 나름의 쓸데없이 세심한 분석에 대해서는 이미 구구절절 써놨으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물어보는 말투에는 물론 연령에 따른 변화가 있다.
초등학교 즈음엔 "너 왜 한쪽 귀가 삐꾸야?"고들 물어봤다.

애들 입이 슬슬 거칠어지는 중학교 즈음부터는 "너 왜 한쪽 귀가 병신이야?"라고, 다소 터프하게들 물어봤다.

고등학교 쯤 되어야 비로소 아이들이 어느정도 점잖아져서, "너 한쪽 귀가 왜 이래?" 정도로 물어보기 시작한다.


물어보는 사람들이 '상호 모른척의 룰'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특별히 교양이나 배려가 부족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뭔가 진실된 구석이 있다.

나는 사실 사람들이 대놓고 물어보고 언급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모른척해주는 것도 편하긴 하지만, 그건 '굳이 설명해야하는 귀찮음이 없다'는 데에서 오는 편함일 뿐, 마음이 편하진 않다.

왜냐면 나는 내 귀에 대해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싶은데, 상대방은 속으로 '이것은 아마 콤플렉스겠지, 내가 언급하면 상처받을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비非 언급의 배려'를 제공한다는 것이, 오히려 나의 당당함을 무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를테면 자신은 아직 젊고 건강하다고 생각하는(그리고 그것에 자부심까지 갖고있는) 어느 중-노년이, 지하철에서 어느 예의바른 젊은이의 자리 양보를 받을 때의 기분과도 같다. 그 마음은 참 고맙고, 몸은 편하게 됐는데, 이게 참....


그래서 나는 그냥 초장에 터놓고 얘기하는 사람이 마음은 더 편하다.

그래서 가끔은 묻지도 않은 사람에게 내 귀 얘기를 먼저 꺼낼 때도 있다. 그러면 가끔 당혹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거나, 말끝을 흐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이런 것이다.

그래 얼마나 궁금하겠습니까. 물어보십쇼 그냥 좀. 시원히 대답해드릴게요.  이거, 솔직히 별것 아니거든요? 그러니 그 호기심을, 배려의 봉인 속에 영원히 가둬놓음으로써 오히려 영원한 호기심으로 남게 만들지는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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