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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울 Jul 01. 2023

<결혼 이야기> review

#3 연극인들이, 연극을 하는 이야기를, 연극적 연출로 그려내다

<결혼 이야기>는 연극이라는 테마를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영화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연극인들이, 연극을 하는 이야기를, 연극적 연출로 그려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1) 인물


극단에서 찰리는 감독이고, 니콜은 배우이다. 

찰리는 극단의 모든 것들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정리하며 지휘하는 사람이다. 

니콜은 그러한 찰리의 지휘에 충실히 따라 연기를 한다. 


이는 단순히 각자의 직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도 찰리는 감독이다. 질서를 추구하고, 지적하거나 가르친다. 아내나 아이의 의견이나 부탁은 무시하기 일쑤다. 애초에 찰리는 주장하고 이끄는 사람인 것이다. 

니콜 역시 가정에서도 철저히 배우처럼 행동한다. 가족생활이라는 연극에서 그녀는 감독인 남편이 지휘하는대로 따를 뿐이다. 자기 의견이나 욕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캐릭터 디자인은 생각보다 치밀해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디테일에도 속속들이 반영되어있다.


재판이 마무리 되어갈 때쯤, 판사가 임명한 전문 감정인이 각각 찰리와 니콜을 방문한다. 아이의 양육권이 누구에게 주어지는 것이 적합할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것이다. 


이 긴장되는 방문을 대비하여, 감독인 찰리는 화분과 아이의 그림 따위로 방(세트)을 꾸미고, 특별식(소품)을 준비한다. 헨리에게 미리 디렉션을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본인은 감정인 앞에서 계속 허둥대고, 아들 농구코치의 이름이 릭이니 론이니 하면서 자꾸 실수를 하고, 급기야는 실수로 자기 팔을 칼로 긋기까지 한다. 왜? 그런건 배우가 잘 하는거고, 어디까지나 감독인 찰리는 연기에는 젬병이다.

'좋은 아빠' 연극의 무대를 세팅하고 연출하는 감독

        

반면 배우인 니콜은 감정인이 할 것 같은 질문에 할 대답, 즉 대사를 연습한다. 감독 역할을 하는 변호사의 디렉팅을 받으면서. 이 장면은 마치 배우가 카메라 테스트를 받는 것처럼 보인다.             

'좋은 엄마' 역을 연기하기 위해 대사를 연습하는 배우

               


(2) 연출


이 영화는 마치 연극처럼 연출된다.

주요 장면들을 보면, 일반적인 영화적 촬영기법과는 달리 연극처럼 촬영한 것을 볼 수 있다. 


#무대


예를 들어 이혼서류를 전달하기 위해 준비하는 부엌씬을 보자. 카메라가 인물을 따라가며 배경이 바뀌는 일반적인 카메라 구도와는 달리, 이 씬에서는 배경은 부엌으로 고정되어 있고, 그 배경에 인물들이 등장하고 퇴장하기를 반복한다. 즉 여기서 부엌은 일종의 연극무대인 것이다.

          

찰리와 니콜이 극단의 파티에서 일찍 나와 집에 돌아왔을 때의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불 켜진 거실에서 둘이 대화하는 장면을 유심히 보자

찰리가 니콜의 연기에 대하여 "마지막에 감정을 쥐어 짜내더라"라고 지적하자

니콜은 "난 무대에서 못 울잖아"라고 말한다.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니콜은 불 꺼진 방으로 들어선다. 

밝은 거실을 등지고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눈물을 터뜨린다.


이 장면에서도 거실은 일종의 연극 무대이다. 무대에서는 눈물이 안 나오는 배우 니콜은, 무대 뒤로 퇴장하자마자 비로소 눈물을 터뜨린다.



#페이드아웃


한편 스토리의 주요 꼭지가 끝날 때마다 페이드아웃으로 마무리 되는 것 역시 연극의 장면전환을 연상케한다.


여담이지만 이 페이드아웃은 심지어는 인물이 직접 만들어내기도 한다.

찰리가 니콜에게서 이혼소송장을 받은 날 저녁, 니콜의 집을 떠나는 장면에서는

현관문을 닫기 전에 찰리가 불을 직접 끄고 나간다.

영화 초반에 찰리가 에너지를 절약하는 사람이라는 언급을 해놓은 것을 이렇게 재치있게 회수한다.


        



(3) 행동


이 영화는 이혼의 과정에서 서로가 끝없이 연극을 해야하는 부부의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동시에 미워하지만

부부인 동시에 부부가 아닐 수는 없는 두 사람은, 때에 따라서 연기를 해야한다.


아이 앞에서 평화로운 척 연기하고

평상시에는 서로에게 상처가 없는 것처럼 다정하고 배려심있게 연기한다.

만났을 때 반가운 척 웃어보이고, 모욕이 오가는 재판을 겪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한다. 

그러나 언쟁이 심화되어 서로에게 끔찍한 저주를 퍼부을때는, 일말의 사랑도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연기한다.

더럽게 꼬여버린 관계에서, 계속 본심이 아닌 말과 행동을 해야하는 과정이

바로 영화가 그리고싶은 이혼의 본질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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