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난 여전히, 가슴이 머리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란다. 그러니까 내 말은, 어쩌면 넌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란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야."
박사가 웃었다.
"자란다는 건, 변한다는 뜻인가요."
"아마도 그렇겠지 나쁜 방향으로든 좋은 방향으로든."
주인공 윤재는 알렉시티미아(감정 표현 불능증)을 갖고 태어났다. 감정을 느끼는 아미그달라 편도체, 즉 통칭 ‘아몬드’ 가 남들보다 작게 태어났다. 그래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정서적 단서를 탐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보처리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위협적인 상황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이 느끼는 아픔, 고통, 분노, 슬픔 등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남들과는 다르게 태어난 윤재를 정상적인 아이로 기르기 위해 엄마와 할머니는 지극정성으로 윤재를 돌본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이브, 운재의 열여섯 생일날, 비극적인 사고로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고 할머니는 돌아가신다. 세상에 홀로 남았지만 윤재는 슬픔도 아픔도 분노도 느끼지 못한다.
평범하게 살아가기 원했던 엄마의 말을 따라 학교를 계속 다니기로 한 윤재는 저녁마다 엄마를 간호하기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 윤 교수를 만난다. 윤 교수는 자신의 아내가 죽기 전 납치 당해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자기 아들 역할을 대신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 부탁을 들어준 뒤 윤 교수의 진짜 아들이 나타나면서 윤재는 이전과는 다른 파동이 이는 것을 느낀다.
윤 교수의 진짜 아들의 이름은 윤이수, 현재 곤이라 불리며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소년원을 가기도 하며 불량한 생활을 하고 있다. 진짜 아들을 찾은 윤 교수는 현재 아들이라고 찾아온 곤이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친아들이 아닌 것 같은 낯선 감정을 느낀다.
곤이는 자신 행세를 한 윤재가 탐탁지 않아 괴롭히지만 윤재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윤재에게 호기심이 생긴 곤은 매일 윤재가 있는 헌책방을 방문하며 서로 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곤이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단순하고 투명했다. 나 같은 바보조차 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세상이 잔인한 곳이기 때문에 더 강해져야 한다고, 그 애는 자주 말했다.
그게 곤이가 인생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우린 서로를 닮을 수는 없었다.
나는 너무 무뎠고, 곤이는 제가 약한 아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센 척만 했다.
사람들은 곤이가 대체 어떤 앤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단지 아무도 곤이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정상적인 아이로 만들기 위해 엄마는 계속해서 주입식으로 윤재를 가르친다. 일일이 종이로 그려진 감정을 통해 윤재는 그저 감정을 암기할 뿐이다. 윤재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에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아픔도 고통도 그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는 윤재에게 엄마의 그러한 모습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난제일 것이다. 학교에서는 윤재를 병신으로 부르고 그 누구도 윤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그렇게 살아가는데 힘들지 않다면 굳이 바꿀 필요가 있을까? 인생에서 가장 많은 감정을 배우고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는 시기가 청소년 시절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으며 정리되지 않은 감정에 힘들어하고 울기도 했다. 남들과는 다른 ‘나’가 되지 않기 위해 수업을 들었다.
지금은 남들과 다른 ‘나’가 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 남들처럼 살 수 있을까? 나는 나일 뿐인데, 감정에 충실하든, 감정을 모르든, 나는 나대로 성장한다. 그것이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말이다.
“남들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해서 꼭 정해진 대응을 할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모두 다르니까, 나같이 정상에서 벗어난 반응도 누군가에겐 정답에 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곤은 풍부한 감정을 지녔지만, 윤재처럼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 인물이다. 그래서 늘 강해지고 싶어 하지만 그만큼 남들의 눈치를 엄청 신경 쓴다. 처음에는 윤재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지만 점차 윤재를 이해하고 윤재에게 고통, 죄책감, 분노를 알려준다.
윤재는 그 감정을 배우지 못하지만 곤이를 통해 윤재는 분노의 감정을 본다. 누구보다 강해지고 싶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린 마음을 가진 곤이는 윤재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그것이 강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도 강해지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 인물이기도 하다.
감정을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난관이다. 그래서 윤재와 곤은 절대로 친구가 될 것 같지 않았지만 서로 친구가 되었듯이, 삶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마주하고 서로에게 배운다. 그리고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