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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뷰하는리타 Oct 17. 2021

맥주 한 잔의 기준 : 코젤 다크 시나몬

잔에 따라 달라지는 맥주 '한 잔'

그냥 맥주 한 잔 했어


담겨있는 잔에 따라 액체 '한 잔'의 용량이 달라지는 게 놀랄 일은 아니다. 술도 마찬가지인데 그중에서 제일가는 제멋대로 기준을 꼽아보자면 역시 맥주다. 종이컵이나 (맥주 마시는) 글라스에 따라 마시는 경우가 있어도 소주 1잔은 보편적으로 소주잔에 따른 한 잔 분량을 말한다. 주류회사에서 만든 게 아닌 소주잔도 대략적으로 크기는 비슷하다. 도수가 높을수록 한 잔이라고 칭하는 용량은 적어진다. 맥주와 도수가 비슷한 막걸리도 도자기, 양은, 플라스틱 등 잔의 재질은 제각각이지만 크기는 비슷하다. 반면 맥주는 병으로도 팔고 잔으로도 파는 주제에 한 잔의 양이 천차만별이다. 


병맥주는 별도로 잔에 따르지 않고 마시는 카프리 사이즈(330ml)부터 칭따오 큰 병(640ml)까지 모두 1병이지만 양은 2배가량 차이가 난다. 캔맥주도 마찬가지다. 아사히 135ml나 카스 250ml 등은 한입거리인 반면, 하이네켄 슈퍼캔(710ml), 밀러 라이트(946ml)는 한 손에 들고 마시기도 힘들다. 잔 맥주는 다를까? 똑같다. 이자카야에서 흔히 만나는 일본 맥주나 캔으로는 익숙하지만 생맥주로는 드물게 마주치는 블랑, 파울라너, 스텔라, 크롬바커 등은 값이 비싸면서 양은 적다. 이들에게는 전용잔이라고 부르는 자기네 로고를 새겨 만든 유리잔이 있다. 다양한 크기와 디자인으로 전용잔을 내놓는 스텔라 같은 브랜드도 있지만, 전용잔의 용량은 대부분 500ml 미만이고 330~350ml의 홀쭉한 잔이 많다. 파울라너에서는 대세를 거스르고 우악스러운 1리터짜리 전용잔을 내기도 했지만. 아무튼 칼스버그 한 캔은 500ml이지만 칼스버그 생맥주 한 잔은 330ml이고 뭐 이렇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사람마다 본인이 생각하는 한 잔의 기준도 차이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식당에서 병맥주 따라 마시라고 주는 글라스가 맥주 한 잔의 기준이다. 나는 카스나 테라처럼 한국인의 생맥주가 나오는 500cc를 맥주 한 잔으로 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가볍게 맥주나 한 잔 하자'라는 말을 할 때는 또 진짜 한 잔만 마시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맥주 네댓 잔쯤은 가벼우니 그 정도 선에서 마시겠고 너는 알아서 가벼운 수준으로 마시라는 뜻이다. 집에 귀가해 가족이 술을 얼마나 먹었냐고 물었을 때 소주는 몇 명이 몇 병이라고 답하면 깔끔하지만, 맥주는 500잔으로 몇 잔을 먹었든 (취하지 않았다면) '그냥 맥주 한 잔 했어'로 퉁치는 게 가능하다. 맥주 한 잔의 세계는 이토록 편리하고도 제멋대로다.


420cc냐 630cc냐


남들에겐 별 것도 아닌 맥주 한 잔의 세계를 파고들게 된 건 코젤 다크 시나몬 때문이다. 우리 동네에는 코젤 다크를 메인으로 파는 맥주집이 하나 있다. 2층에 있어서 눈에 띄지 않지만 한 번 방문하면 계속 찾게 되는 집이다. 2차로 맥주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한 술과 안주 구성을 갖추고 있어서다. 안주에도 사이즈가 있어서 2차로 간단히 마시고 싶다면 1만 원이 채 안 되는 작은 안주를 시키면 된다. 문제는 술이다. 보통 2차에서는 배가 불러서 안주를 먹더라도 간소히 먹고자 하게 된다. 이 집에서 간소한 안주, 가능하다. 그럼 맥주도 간소하게 먹을 것인가? 종류는 코젤 다크 시나몬으로 정해져 있고 사이즈는 420cc와 630cc 두 가지다. 나는 갈등의 기로에서 매번 진중하게 고민을 했다. 배는 부른데... 420cc를 시킬까, 630cc를 시킬까? 


그리고 늘 똑같은 선택을 한다. 배는 부르지만 술만 먹기는 좀 그러니 작은 안주를 시키고, 안주도 시켰으니 술은 420cc짜리 작은 잔으로 주문한다. 잔을 비우고 나면 안주가 살짝 남는다. 배는 여전히 부르지만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 마음을 담아, 이번에는 아쉬울 일을 만들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630cc를 주문한다. 결국 맥주 500잔으로 두 잔쯤은 먹어야 배가 터지네 어쩌네 하면서 만족스러워한다. 이 현상을 나름대로 분석한 결과가 바로 맥주 한 잔의 기준이다. 배가 얼마나 부르든 2차를 갔으면 맥주 한 잔은 먹어야지. 그러나 잠깐의 배부름에 못 이겨(어차피 술은 마시면 마실수록 포만 중추가 마비되어서 더 마실 수 있을 텐데) 겸손히 작은 잔을 시킨다. 420cc는 내 기준 맥주 한 잔이 안 되는 양이니 당연히 부족함을 느낀다. 기어이 욕망을 담아 큰 잔을 다시 시킨다. 결국 도합 두 잔을 마시고야 심리적으로 만족하며 엉덩이를 일으킨다.


술 아직 남았는데 어디 가?


술을 남기고 자리를 뜨면 악령이라도 따라오는 줄 아는 평소 습관도 한몫한다. (그럴 일이 없으리라는 걸 분명히 알면서도) 혹시나 630cc를 시켜서 배가 불러 남기게 되면 큰일이라는 걱정을 놓지 못한다. 코젤 다크 시나몬을 먹고 싶을 때 남긴 술이 생각나면 후회할지도 모르잖아? 아직도 자기 자신을 모르고 은연중에 맥주 1잔이 넘는 큰 잔의 양은 너무 많아서 남길 수도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나에게 (최소한의 용량이라고 볼 수 있는) 맥주 한 잔은 500cc임이 증명됐다. 이미 알코올을 끼얹은 머리라면 2차의 맥주 적정량은 500cc로 2잔이라는 사실도 덩달아 증명되었다. 다들 술 마셨을 때와 안 마셨을 때 판단 기준이 다르잖아?


이제 와서 탓하자면 이게 다 코젤 다크의 상술 탓이다. 애초에 500cc 잔이 있었으면 한 잔만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술자리를 마쳤을 게 아닌가. 반박은 넣어두자. 술꾼에게 논리로 기분을 컨트롤하라는 말은 소용없다. 처음부터 620cc를 시켜서 적당히 먹고 남기면 되잖아? 라든가. 420cc가 500cc랑 얼마나 차이 난다고, 한 모금 부족하게 먹으면 되지! 라든가. 그런 걸 못하기 때문에 인생에 숱한 이불킥 에피소드를 만들어가며 술꾼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단 말이다. 한 모금 차이를 개의치 않으며 쿨하게 아쉬운 마음을 떨쳐내는 건 술꾼에게 불가능하다. 마지막 한 잔만 안 마셨으면 되는데 기어이 술병을 탈탈 털어마시고 다음 날 앓아눕는 미련한 종족이니까. 어쩌면 술꾼에게 맥주 한 잔의 끝은 내 앞에 놓인 모든 병, 모든 잔이 끝나는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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