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ardust Aug 14. 2023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꿨나요?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기로 했다.





"부부는 반드시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며 배려해야만, 아이들도 그것을 보고 인간관계를 배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존중과 배려를 하고 사는 것이 결혼생활이라고 생각했고, 이것이 안 되는 사람과 사는 삶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생기게 했다.

그러나 그 강박 속에 있으면 있을수록 희생의 시간은 더디게 갔고, 남편이 변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을 견디고 참아내는 일은 나를 갉아먹는 시간이 되고야 말았다.



7년간 매주 시댁을 만난 것도 이 사람에게 중요한 가치를 내가 먼저 행하여주면, 이 사람 또한 내게 중요한 가치인 "존중과 배려"를 행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번번이 무너졌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결혼의 정의는 '존중과 배려'였다. 어쩌면 내게 가장 중요했기에 그것은 반드시 서로 해야만 하는 '당연함'이었고, 내 인생의 가장 큰 난관의 봉착은 '존중과 배려'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과 결혼을 한 것이었다.




남편은 나보다 8살이 많았기에 본인이 나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내 말이 전혀 들리지 않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들리는 데도 불구하고 '존중과 배려'를 보고 자란 적이 없기도 하지만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스스로 만족감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보통 직장에서 일머리가 없는 사람들은, 주변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본인이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도 알아차리게 되어서 배울 생각을 하는데 반해, 남편의 "존중과 배려"를 모르는 그 부족함은 겉으로 드러나질 않아서 스스로 인지를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남편은 사회생활을 잘한다. 눈치가 빨라서 상황에 맞는 행동과 말주변으로 센스 있고 매너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인데, 문제는 "존중과 배려"를 알아서 매너를 행하는 것이 아니고, 말 그대로 "눈치가 빨라서" 그 상황에 필요로 하는 부분을 빠르게 캐치하고 문제가 생기기 전에 메우듯이 하기에, 겉보기엔 배려있고 매너 좋고 센스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데, 사회생활에서의 좋은 평판이 자신을 "배려와 존중이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게 한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본인의 사회생활 울타리 안에서는 인간관계 유지를 잘하기에 칭찬만 들어온 사람인지라 스스로 대인관계에 있어 만족감이 높은 편이고, '존중과 배려"가 없음을 아무리 말하고 설명해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라고 생각하기에 인정을 하지 못했고, 인정이 안되기에 배우거나 고칠 생각이 없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여기서 내가 결혼한 이유를 짤막하게 변론하겠다.

결혼 전의 나는 남편에게 '사회생활의 일부분'인 바깥사람이었기에 존중과 배려가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눈치가 빠른 것"을 그때는 센스 있고 매너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본인에게 스케줄이 생겨서 부득이하게 금세 헤어지게 될 때면, 나를 데려다주는 길인 운전 중에도 커피쿠폰을 내게 보내며 그 커피숖 앞에 나를 내려다 주고 갔었고, 데이트하다 발이 불편해 보인다고 바로 신발가게에 가서 편한 신발을 사서 신기는가 하면, 생리할 때가 안되었는데 피가 보인다고 하면 바로 산부인과에 예약해서 데려가는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아이 둘을 데리고 마트에 다녀오면 , 혼자 그 무거운 장본 것을 다 들고 아이까지 안고서 집에 왔고, 내가 밖에서 엄마와 밥 먹고 있다고 하면 음식값을 자기 카드로 계산하라고 전화오기도 하며, 커피 선불권을 보내며 장모님과 마시라고 한다.



사회생활과 접점이 있는 부분에서는 지금도 "존중과 배려'를 십분 발휘하지만, 그 외의 것에서는 있던 눈치도 사라지는데 문제가 있었다. 말 그대로 남편의 "눈치"는 때와 상황에 맞추어 100% 있던 것이 0%로 사라지는 것인데 그것을 내가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7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나는 그 긴 시간 동안 남편이 나를 가스라이팅한다고도 생각했으며, 무시한다고 생각했었다.

있던 눈치가 사라진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 눈치 없음으로 희생을 강요받는 것은 더욱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집안에서의 육아문제가 그랬고, 시어머니의 과도한 요구가 있을 때에 대처법이 그랬고, 시댁과의 만남에 있어서 당연시하는 부분이 그랬다.








20개월 차이 두 아이를 기르는 일은, 적어도 아이들이 태어나서 2-3세 정도일 때에는 집이 난장판 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임을 아이를 키우는 집이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런데 주말에 아침부터 적어도 5-6시간째 엉덩이 한 번을 못 붙이고 애들 먹을 거 만들고, 남편과 나의 먹을 것을 만들고 먹고 나면 설거지 하고, 3-40분 텀으로 끊임없이 청소기를 돌리며, 등과 허리가 굽을 정도로 청소기를 사용하기 어려운 아이들의 놀이 흔적들을 기어 다니며 줍고, 닦기 바빴고, "엄마 나 우유 줘, 과일 줘, 간식 줘, 티브이 틀어줘, 책 읽어줘" 등등 이 모든 것을 혼자 소화하고 있는 나를 쳐다보면서도 남편은 안마의자에 누워있거나, 안방 침대에 대자로 뻗어서 자거나, 누워서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존중과 배려의 문제라고 하면 남편은 불같이 화를 냈다.

본인이 배려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도 못하지만, 나를 무시한 적이 없는데 무시했다고 느낀 내가 자격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남편은 존중과 배려가 없음을 인지하지 못했었다. 어쩌면 그 단어를 읽을 수만 있는 것이지, 실제로 어떻게 행하여지는 것인지 모른다는 게 맞겠다.



그러나 이것도 이혼을 적어도 열댓 번은 입에 올리고 나자, 남편이 인정하는 순간이 오기는 왔다.

"내가 좀 그런 부족한 부분이 있어"라고 말이다.

그것도 싸울 때마다 으르렁 거리면서 본인을 나쁜 사람 취급하는 나에게 항변하듯 말이다.











남편의 그 부족한 부분은 유독 나에게만, 그리고 "우리 집"이라는 공간에서 발휘되었다.

남편의 눈치 on은 어디든 현관문을 닫고 나가면 장착되었고,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오면 눈치 off가 되었다.



집에서는 설거지가 뭔가, 자기가 먹은 그릇 하나도 옮기질 않으면서 시댁에 가면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어서 시어머니는 늘 남편 잘 만나서 좋겠다는 소릴 했다.

신기하게도 시댁과 친정은 "바깥사람들"이라서, 그 앞에서는 나를 늘 배려했고 우리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그 배려는 10%도 아닌 0%로 급락해 왔다.

남편은 내게 결혼을 결심하게 할 정도로, 내가 바깥사람일 때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본인이 늘 말해왔듯 밖에서는 있던 눈치 100%가 집에서는 0%로 급락하는 "부족한 면"이 있을 뿐이지 바뀔 생각은 없고, 고의가 아니기에 내가 본인의 부족함을 인정해 주길 바랐다.



그간 나는 남편이 '쇼윈도부부 증후군'이라도 앓고 있거나, 번번이 무례했기에 나를 아내가 아닌 사람, 그 자체로도 존중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그저 부족한 부분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부족한 부분이 나를 번번이 희생시켜오게 했음에 이 부분을 인정하기엔 "존중과 배려"를 먼저 행하는 내가 남편과 시댁식구들과 같은 "무례함"으로 무장해야만 가능해진다고 생각했으며, 아무리 내가 살기 위해서라는 말로 포장하여도 "그런 무례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이혼이 하고 싶었다.




그러다 방법을 찾아내었다.

나를 희생시키지 않고도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롤로그 : 지금, 이혼을 생각한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