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서울애니메이션센터 폐관이라는 소식이 이토록 쓰린가에 대해 생각해 봤다. 이 공간을 가본 적도 없고,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자체를 엄청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공간이 사라지고, 이곳에 '창조산업허브'가 들어선다는 소식이 이렇게 탐탁지 않을까. '창조산업허브'는 웹툰과 게임 투자의 컨트롤타워를 목표로 만들어지는 '기업지원 공간'이라고 한다. 웹툰, 게임, 영상, 미디어, XR(확장현실)을 5대 핵심 분야로 지정해 집중 지원한다는 목표를 가진 공간(출처: 영화•게임을 경제성장 동력으로! 창조산업허브 조성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2009666)인데, 이곳도 어찌 보면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이 접목되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리도 마음이 불편할까?
창조산업허브의 소개글을 보면 과연 더 좋은 서비스와 쾌적한 환경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유는 아무래도 일반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 특정 산업 종사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남녀노소 예약만 한다면 약 4만 권의 도서를 무료로 열람할 수 있는 만화의 집과 저렴한 가격으로 어린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애니소풍이 사라진다. 이는 돈 없이도 마음 편하게 문화를 향유할 수 있고, 괜히 다른 사람들의 눈치 보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가 사라진다는 얘기다. 이건 조금 과장을 보태서 말해보자면, 문화를 향유함에 있어 다시 한번 계급이 나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시간당 얼마를 내야 하는 만화 카페에 가거나, 키즈 카페에 가야 할 텐데, 비용에 대한 체감은 언제나 상대적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얼마 안 되는 돈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비싸게 느껴질 것이다. 시간당 얼마의 금액이 비싸게 느껴지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문화를 향유할 기회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 전시‧컨퍼런스‧상영회 등의 ‘시민 참여 공간’도 생길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처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될지는 미지수이기도 하다.
두 번째 이유는 ‘창조산업허브’가 ‘지원 공간’이라고 말하지만, 본질은 ‘투자’를 위한 공간이란 생각이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원’은 지지하여 돕는 것이고, ‘투자’는 이익을 얻기 위하여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는 것이다(출처: 표준국어대사전). 돈이 안 되더라도 양질의 내용을 지닌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지원일 터인데, 창조산업허브를 소개하는 기사를 보면, 온통 돈 얘기뿐이다. 시장 규모가 어떻고, 얼마의 투자를 유치하고 얼마의 계약을 성사하고, 매출액은 얼마인지 등등. 마치 돈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5대 핵심 분야의 가치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것처럼 이야기한다. ‘창조산업허브’는 아무리 생각해도 진정한 지원의 공간이 아니라 수익을 내는 것에 더 치중된 공간이다. ‘투자’는 수익성이 확실히 보장되는 것일수록 받기 쉽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개인이거나 영세한 창작자는 더욱 지원받기가 어려워진다.
이 변화 속에서 우리 사회가 문화예술의 가치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는지가 명확해진다. 이 사회는 문화예술이 "얼마나 많은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따라 가치를 매긴다. 수익이 잘 나오면 좋은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이다. <도시인처럼>이라는 넷플릭스 시리즈에서 프랜 레보위츠는 피카소의 작품이 경매장에 등장했을 때는 고요하던 사람들이 낙찰가가 정해지면 박수를 친다는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은 그림이 주는 분위기나 메시지, 혹은 화풍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이 그림이 만들어낸 돈의 액수에 감탄하는 것이다. 돈의 액수가 높아질수록 그림의 가치가 높아진다. 그런데 정말 "문화예술의 가치 혹은 중요도가 돈의 액수와 같을 수 있을까?" 아니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기기도 한다. "문화예술이 창출해 낼 수 있는 것 중 가장 중요하고 좋은 것이 과연 돈 뿐인가?"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면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문장이 큰 돌에 새겨져 있다.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책뿐만이 아니라, 어떤 영화, 어떤 만화, 어떤 음악, 어떤 그림은 사람을 만든다. 다양한 문화와 예술작품을 접할 때, 생각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고,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이 더욱 풍부해진다고 생각한다. 이는 수익성이 높은 작품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큰 수익을 보장하는 작품이 전부 내용이 좋거나 작품성이 뛰어나지는 않다. 큰 자본을 들이지 못하는 독립영화 중에 웬만한 자본영화보다 좋은 작품이 많고 독립출판물 중에도 너무 좋은 내용을 담은 서적이 정말 많다. 음악도, 미술도, 모든 문화예술 분야가 마찬가지다. 문화는 궁극적으로 사람을 만든다. 사람을 만드는 것의 가치를 단순히 수익성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문화 예술 기관이나 지원 사업이 많이 폐지되었다. 돈은 안 될지언정 의미 있거나,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입지는 더더욱 좁아졌고, 이 중 많은 사람들은 문화 예술을 등질 것이라는 걱정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남 일이라 막말하는 것처럼 말하는 경향이 있어서 죄송하지만, “언제는 뭐 지원 많이 해줬냐?”하는 마음을 가지고 버텨주길 바란다. 또 어딘가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판을 꾸려주길 바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라져 버린 지원 제도들이 더욱 풍성하게 다시 실행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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