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내내 무지하게 바빴다. 해외에 있는 며느리는 명절의 집안일에 슬쩍 비켜가는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지 오래이므로 명절 때문은 아니었다. 지난주 토요일 드디어 음악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만 해도 도저히 합류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오케스트라였는데, 그래서 주위의 여러 분들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징징댔는데, 노력도 해보지 않고 바로 백기를 드는 것은 나 자신에게 두고두고 후회로 남을 것 같아서 나 나름의 노력을 해 보았다. 내가 참여를 권유받았던 음악회는 ‘밀알 선교 합창단’의 찬양 콘서트였다. 백 명에 가까운 분들이 합창에 참여하시고 오케스트라도 대대적으로 모여 반주를 하는 그런 큰 행사였다. 남은 시간이 겨우 일주일이었는데 해야 하는 곡은 7곡, 그중에 내가 아는 곡이라고는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 밖에 없었다. 파트별로 연습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올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전체 연습을 맞춰본 것도 겨우 2번에 불과했다. 악보를 세심히 챙겨주시는 분들도 없었고, 박자를 봐주시는 분도 없었고, 그야말로 각자도생이었다. 그런데 오케스트라에 참가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전공자였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 연습을 하지 않아도 이런 연주쯤은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그런 분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하고 싶었어도 그렇지 이 자리는 내가 도저히 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변분들이 자꾸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분들이 사랑이 넘치는 분들이라 슬픈 영혼에게 위로를 주려고 그렇게 아름답게 이야기해 주시는 것은 고마웠으나 사실 하등 도움이 되지는 않는 말이었다. 칭찬이 나의 실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이미 잘한다고 더 잘할 수 있다고 계속 그런 말들을 여기저기서 들으니 더 포기를 하면 안 될 것 같은 거였다. 그래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이신 분께 부탁을 했다. 내 파트 악보를 좀 쉽게 고쳐주실 수 있냐고, 그리고 내 파트만 바이올린으로 연주하셔서 녹음하셔서 보내주실 수 있냐고. 참 어렵고 귀찮은 부탁이었는데 그분은 흔쾌히 들어주셨다. 복잡한 악보를 쉽게 바꿔주셨을 뿐 아니라 그 곡을 음원으로도 만들어주셔서 연습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하지만 아무리 쉽게 바꿔주셨다 하더라도 플랫이 5개 달려있고, 박자도 헷갈리는 생소한 그 곡들을 혼자 연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글쓰기와 책 읽기와 집안일과 자녀양육을 끝내고 나면 12시. 그때부터 연습이 시작되었다. 매일밤 그렇게 바이올린과 씨름했다. 그렇게 사흘을 열심히 연습을 하고서 전체 연습을 하러 갔는데 오! 음악이 조금 되는 것이었다! 그때의 기쁨과 희열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아름다운 선율의 일부가 되어 함께한다는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그렇게 나는 음악회에 발을 빼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남은 시간 더 열심히 하여 실전에서 음을 이탈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기로 했다. 그렇게 지난주 내내 내 마음과 정신은 글쓰기와 책 읽기와 바이올린으로 꽉 차서 허덕였다.
금요일은 음악회 총연습날이었다. 이제껏 오케스트라만 모여서, 그것도 멀리 사시는 분들을 제외한 소수의 인원만 모여서 연습을 해왔다면, 금요일은 모든 합창단원과 오케스트라 단원들, 어린이들, 청소년들이 모여서 순서대로 공연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큰 행사에 참여해서 내가 공연연습을 하기도, 다른 이들이 하는 순서를 지켜보며 오랜 시간 기다리기도 해 보았다. 대학 이후 처음인 것 같았다. 피곤했지만 설레었다. 저녁 6시에 시작된 공연 연습은 10시가 넘어서 끝이 났는데 집에 오자마자 내 눈의 실핏줄이 터졌다. 나의 긴장과 피로와 부담감을 내 눈이 먼저 알고 견디지 못했구나 싶어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고 있었는데, 그다음 날 같이 공연하시는 바이올린 연주자 중에 안과 의사 선생님이 계셔서(완전 엄친딸인 그녀는 사실 고등학교까지 바이올린 전공을 준비했었다고 한다) 물어보니 피로와 눈의 핏줄 터짐은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말로 나의 스스로 불쌍히 여김을 민망하게 만드셨다.
드디어 공연날이 되었다. 공연은 오후 5시, 연습은 1시부터였는데, 나는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한국학교 수업을 해야 했다. 정말 피곤한 인생이었다. 붉은 눈을 한 채 학생들을 만났는데, 선생님 눈이 왜 그러시냐는 세심한 한 남학생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선생님이 오늘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되었다는 말로 아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뭔가 선생님을 멋지게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에 어깨가 으쓱했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미리 확보한 학교 매점의 김밥 한 줄을 먹으며 25분쯤 떨어진 공연장으로 달려갔다. 이미 다들 와 계셨다. 낯을 익힌 모든 분들과 전우애가 가득 담긴 인사를 나누며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결코 민폐가 되지 않으리라.
드디어 5시가 되고.. 생각보다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다. 한국분들이 많이 오실 줄 알았는데 독일분들이 훨씬 많이 오셨다. 첫곡부터 빠른 리듬과 복잡한 음표 변화로 나의 멘털의 붕괴를 불러일으킨 어려웠던 곡이라 긴장했는데, 나에게 쉬운 악보와 음원을 만들어주셨던 고마웠던 분이 옆에서 함께 연주를 해 주셔서 잘 넘어갈 수 있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그 이후로도 2시간 가까운 공연은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맨 마지막 곡으로 연주한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를 연주할 때는 장엄하고 위엄한 음악에 나도 압도된 데다가 모든 분들이 일어나서(이 곡은 연주될 때 청중들이 기립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감상을 하시는 센스를 보여주시는 바람에 연주하면서 울컥할 뻔했다. 그렇게 음악회는 아름답게 잘 마무리되었다.
사실 이 글의 제목과는 달리 오케스트라 연주는 나의 버킷리스트에 올릴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난 전문 연주자도 아니고,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기에도 턱없이 실력이 부족한 데다가 바이올린 연주를 한지도 30년이 훌쩍 넘었기 때문에 꿈에조차 감히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클래식 음악을 옛날부터 좋아해 왔으므로 저기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 음악을 연주하면 기분이 어떨까 잠시 상상해 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꿈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사실 꿈같은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기회를 잡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지어버리고 내가 교회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지 않았다면, 함께 음악회에서 공연을 하자는 여러 좋은 분들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처음 연습 때 받은 심한 마음의 충격으로 그냥 첫날 포기해 버렸다면, 바쁘신 분을 붙잡고 음원과 쉬운 악보를 부탁하지 않았다면, 12시만 되면 지하실로 내려가 바이올린 연습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꿈같은 일을 경험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주신 모든 분들께, 실질적인 도움을 주신 그분께,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던 용기 있는 나에게 참으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