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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량음료 Apr 27. 2023

4월 근황

1. 부활절 칸타타

인생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가 처음 30년 만에 바이올린을 다시 잡아보리라 결심했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 개인레슨을 받고, 가볍게 조금씩 연습을 하고, 주일에만 교회 찬양팀과 함께 오케스트라를 하리라는 예상을 했다. 그런데 1월에 시작하자마자 큰 행사에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부족하지만 잘 수행했다. 그 큰 무대에서 혼자 실수하여 삑삑거리지 않기 위해서는, '잘 수행했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무거운 마음의 부담감과 뜻대로 되지않는 바이올린을 붙들고 씨름하던 나날들이 있었다. 힘든 일을 해내야 할 때 그것을 잘 성취하고 난 뒤 느낄 수 있는 뿌듯함과 보람에 대한 중독자인 나는, 그 뒤로도 몇 번 사서 고생을 했다. 그런데 그동안의 행사는 1월의 그 행사만큼은 아니어서 큰 부담은 없었다.


교회에서 4월은 매우 의미 있는 달이다. 부활절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규모 있는 교회에는 규모 있는 성가대가 있기에 부활절 칸타타를 준비한다. 그리고 우리 오케스트라가 올해에는 성가대와 함께 부활절 칸타타를 공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하지 않았음). 할 사람은 신청하라고 했다(절대 강요는 하시지 않는다). 사서 고생 덕후인 나는 이번에도 그 길을 택했다. 1월의 고생이 나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기에 이번에는 좀 고생스럽더라도 그러려니 했다.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다, 그것이 편안하든, 어렵든, 좋든, 나쁘든.


이번에 수행해야 할 곡은 모두 5곡. 처음 들어보는 곡들이었고 대곡이었다. 어떤 곡은 노래 부르시는 분들이 숨은 쉴 수 있으실까 걱정이 될 정도로 빨랐고, 자연히 바이올린의 활도 거의 신들린 듯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몇 주간 육퇴를 한 늦은 밤 지하로 내려가서 연습을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 아이들 부활절 방학을 맞이하여 3박 4일 영국 여행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온 그날이 본 공연 전날이라 예행연습이 있었다. 독일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아침 8시 반이었는데, 6시 반까지 공항을 가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났고,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점심도 굶은 채 바로 바이올린을 집어 들고 교회로 달려가서 연습에 참여했다. 그렇게 좀 고생을 했다…


다행히 이번에도 큰 무대에서 혼자 크게 삑삑거리지 않고(물론 내 귀에는 수도 없이 내가 내는 듣기 싫은 쇳소리가 들려왔다) 무사히 잘 마쳤다. 그리고 늘 그렇듯 나는 커다란 뿌듯함과 보람을 느꼈다. 앞으로도 사서 고생을 할 것이라 미루어 짐작이 되었다.


흰원 안에 보이는 검은 머리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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