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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량음료 Apr 27. 2023

4월 근황

2. 슈퍼 일타 강사 되기

3월의 어느 평일 오전, 바이올린 레슨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한국학교 교장 선생님의 카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혹시 전화 통화가 가능한가 하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겁이 났다. 웬만하면 문자 메시지로 필요한 말씀을 하실 텐데 굳이 전화로 말씀을 하시겠다니 뭔 일인가 싶었다. 교장 선생님이 문자를 보내시고 20분 후에 확인을 한 터라 바로 전화를 드렸더니 안 받으신다 불안하게.. 그때부터 운전을 해 가는 20분 내내 나의 과거를 헤집어 혹시 잘못한 것이 없나 복기해 보았다. 그동안 한국학교의 제자들과 잘 지내왔고 수업도 잘해왔다고 나름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기억을 뒤집어보니 뭔가 잘못한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괜찮은 게 아니었던 것도 같았다. 그렇게 불안하게 20분이 흐르고, 바이올린 선생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교장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최미선 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다름 아니고 4월 22일에 우리 교사 세미나가 자체적으로 있잖아요, 거기서 우리 작년 가을에 교사 연수에서 배운 것으로 선생님이 강의를 좀 해 주세요!”

다행히 잘못한 건 없나 보다. 그런데 교사 세미나 강의라니 웬 날벼락?!


난 교장 선생님과 내적 친분이 있다고 (나만) 생각한다. (교장 선생님께는 물어본 적이 없어서 그분의 생각은 잘 모른다) 그 이유는 작년 10월에 2박 3일 동안 삼시 세 끼를 함께 먹으며 한글학교 교사 연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30여 년 전 독일로 유학을 오셨다는 교장 선생님은 종교학과 여성학을 공부하셨다고 했다. 지적이고 우아하시며 따뜻한 초로의 여성이셨다. 좌충우돌의 40대를 보내며 지난 한 해 힘들었던 나는, 거의 처음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된 교장선생님께도 나의 힘든 마음을 주책맞게 토로했는데, 원래 40대는 힘든 거라며, 여성학을 공부하신 교장선생님은 말씀해 주셨다. 뭐 암튼, 아마 서로에 대해 좋은 인상을 그때 남겼던 것 같다.


이번 프랑크푸르트 한국학교 교사 연수의 주제는 ‘글쓰기를 통한 학습자의 잠재력 일깨우기’로, 지난 3개월 간 글쓰기 방과 후 수업을 준비해 왔던 나로서는 크게 어렵지 않은 주제라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과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법. 게다가 익숙한 학생들이 아닌, 나보다 경험도 많으신 선생님들 앞에서 강의를 하라니 그 부담감은 이루말할 수없었다. 학교의 규모가 커서 선생님도 40여 분이나 되는데, 같은 중고등부 선생님들을 제외한 분들은 오며 가며 교무실에서만 마주쳐 낯이 좀 익을 뿐 성함을 모르는 분들도 많았다. 어른들에게 강의를 하는 건 처음이라 더욱 부담이 되었다.


독일은 3주 간의 부활절 방학이 있다. 한국 학교도 함께 방학 기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작년 세미나에서 배웠던 데다 그간 수업을 준비한 내용이기도 했지만, 그중에서 재미있고 유익한 것만 추려서 50분 분량의 강의를 만들어 낸다는 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요구했다. 세미나의 강사로 오신 분은 경희여중 국어 선생님이시자 EBS 일타 강사인 강용철 선생님이셨는데, 워낙 강의를 재미있고 유익하게 잘하셔서 그분을 벤치마킹할 수 있을까 그것도 고민이었다. 뭐 암튼 세미나 준비로 한 달여간 폭풍 같은 시간을 보냈다. 강의 며칠 전에는 책상에서 움직이지 않는 날 보며 ‘너무 준비를 열심히 하는 것 같다’는 남편의 감탄도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난 다른 사람 앞에 서서 말하는 것을 아주 꺼려하지는 않는다. 먼저 나서지는 않지만, 상황이 주어지면 회피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마도 강의를 아주 망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기 확신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강의가 어떻게 됐냐고? 선생님들께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다. 최미선이 아닌 강용철 선생님의 아바타라고 생각해 달라는 나의 드립을 웃겨하셨다. 1분 글쓰기를 해 보자, 순환 글쓰기를 해 보자, 옆 짝 선생님과 공책을 바꿔서 글자 수를 세어보자, 시를 읽고 느낌을 나누어 보자 등등 귀찮을 법한 나의 요구를 감사하게도 잘 따라 주셨다.

50분의 강의가 끝난 후 그간 눈인사만 나누던 선생님들께서 다가오셔서 강의가 재미있었다(좋았다거나 유익했다가 아니라)라고 말씀해 주셨다.


세미나 전 교장선생님께서는, 방학도 반납하고 수고하고 계시니 외부강사에 준하는 강사료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정확한 금액은 말씀하지 않으셨다) 괜히 신난 나는 이제 강의로 당신을 먹여 살리겠다며 남편에게 장담했다. 그 말을 허언으로 받아들인 남편은 강의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말했다. “슈퍼 일타 강사님 오셨습니까!”


주어진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난 후에 오는 뿌듯함 중독자인 나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 테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세미나 강의는 그런 나의 중독을 더욱 부추기는 경험이었다. 좀 부담감이 있어도 좋으니 앞으로도 남편에게 슈퍼 일타 강사라는 놀림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지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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