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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키드니 Oct 31. 2023

먹고 싶은 대로 살다가 죽을 거예요.

먹고 싶은 대로 살다가 죽을 거예요. 


환자는 말했다. 나에게 그리고 같이 온 보호자 딸에게 너 들으라는 듯이. 


체질량 지수 30 Kg/m2을 넘는 고도 비만에, 5년 전 당뇨와 고혈압을 진단받은 50대의 중년 여성이다. 다니던 병원이 폐업을 하는 바람에 나에게 왔다. 그녀가 먹고 있던 당뇨약은 4개였다. 통상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당뇨약의 조합이 3개임을 감안했을 때 한도를 초과한 약제 조합이었다. 최대치 이상으로 당뇨약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혈액검사 결과 당뇨 조절이 잘 되고 있지 않았다. 


당뇨약을 먹어도 혈당 조절이 엉망인 환자, 도대체 뭐가 문제 일까? 

그녀는 떡과 빵, 과자, 흰쌀 밥을 좋아했다. 평생 운동은커녕 일상생활에서 움직이는 것조차 싫어했다. 당뇨가 생기기 쉬운 나쁜 습관이었다. 예외는 없었고 결국 당뇨병을 불러일으켰다. 당뇨를 진단받고 난 이후에도 변함없이 이전의 식습관을 고수했다. 여전히 흰쌀밥을 즐겨 먹었으며, 간식으로 과자와 빵, 음료를 달고 살았다. 그녀는 특히 1일 1 과일 주스를 실천해오고 있었다. 그 어디에서가 하루에 한잔의 과일 주스는 당뇨병 환자에게 이롭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잘못된 정보다. 과일의 섭유질을 걸러내고 즙만 짜낸 과일 주스는 당뇨 환자에게 최악이다. 혈당을 치솟게 한다.) 당뇨에 도움이 되는 식단 정보는 넘쳐나지만 환자는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정보만 취사선택하고 있었다. 그것도 잘못된 정보를.     


당뇨병, 충격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질병에 대한 심각함을 모르고 있었다. 당뇨를 진단받았으니, 당뇨약만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뇨약은 당뇨를 치료해 주는 근본적인 치료 방법이 아니다. 당뇨약은 임시방편이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생각해 보라. 당뇨는 마른 장작에 불이 붙어 피어오르는 모습이 혈당이 솟구치는 형태다. 우리가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불이 붙는다. 당뇨약은 불이 주변으로 번지거나 불꽃이 커지지 않도록 그때그때 덮어주는 모래다. 당장 혈당이 올라가고 있으니 일단 당뇨약으로 올라가고 있는 혈당을 눌러주고 있는 것뿐이다. 매일 밥을 먹기 때문에 모닥불은 꺼질 리가 없다. 환자가 먹는 빵과 떡, 과자는 모닥불에 기름을 뿌리고 있는 셈이다. 각종 연료로 높아진 혈당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혈액이 있는 어디에든 영향을 미친다. 뇌에는 뇌졸중이, 심장에는 관상동맥질환이, 콩팥은 만성 신부전이, 다리에는 하지 절단의 위험이 도사린다.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 상태가 오래될수록 혈당 수준이 높을수록 합병증이 발생할 위험은 증가한다. 


어느덧 익숙해진 질병 

환자에게 식단 조절과 운동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에게 그런 조언을 하는지, 왜 그렇게 겁을 주는지 의아한 표정이었다. 당뇨병 5년 차는 당뇨 증상도 합병증도 나타나지 않을 애매한 시기다. 당뇨병 진단에 충격도 사라지고 없다. 그녀에게 당뇨는 1달에 한 번씩 병원을 방문하고 약을 먹으면 될 뿐이다. 자신의 생활에 조금 불편한 수준에서 어느덧 익숙한 질병이 되었다. 익숙함은 편안함을 제공한다. 매일 약을 먹고 병원을 방문하는 일이 익숙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병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그녀는 나쁜 생활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과거의 나를 바꿀 중요한 기회를 놓쳐 버렸다. 


먹고 싶은 대로 살다가 죽는다는 그녀의 말 

나의 조언대로 식단 조절을 시도했던 그녀는 곧 좌절에 빠졌다. 하루아침에 자신을 즐겁게 했던 것들을 중단함으로써 인생의 즐거움이 사라졌다. '이렇게 재미없게 사느니 먹고 싶은 대로 살다가 죽겠다'라고 했다. 환자들은 종종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이 말의 비논리성과 이기적인 면모에 대해 생각한다. 먹고 싶은 대로 먹고살든지, 절제하면서 살든지 죽는 건 모두 똑같다.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마음대로 하면서 살면 스스로 감당해야 할 사실들이 있다.  


시작은 창대했을지라도 마지막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 

인간은 스스로 죽음의 시기를 결정할 수 없다. 화려하게 먹고 싶은 대로 살다가 원하는 시기에 죽음을 맞이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자신이 언제 죽을지,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질병의 진행은 남들보다 빨리 늙어감을 의미한다. 나쁜 습관으로 인한 비만,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 질환은 가속 노화를 부추긴다. 안타깝게도 여러 합병증을 경험하며 마지막을 맞이할 가능성이 증가한다. 

 

마음대로 하고 사는 건 지극히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일이다. 지금 당장 자신은 행복할지 몰라도 뒷감당은 혼자 만의 몫이 아니다. 그녀를 즐겁게 했던 것들은 그녀에게 당뇨병만 준 것이 아니었다. 체중이 증가하면서 척추가 견뎌내야 할 부담감 또한 커졌다. 허리 디스크로 인해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 기간 동안 그리고 수술 후 그녀를 간병해야 했던 건 그녀의 딸이었다. 물론 누구나 환자가 된다. 환자가 되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과 관계없이 환자가 된 것과 스스로 환자가 되기를 자초한 것에는 차이가 있다.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만성 질병의 60%는 자신의 생활 습관이 만들어낸다.   


여기에 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더하고 싶다. 마음대로 하고 살면 행복하고, 절제하면서 살면 행복하지 않은가. 행복한 삶은 자유로움 에서 나온다. 내가 여행하고 싶을 때 여행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자유. 무엇이든 내가 원할 때 나의 의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당뇨 환자라도 어떤 환자는 비교적 자유로운 삶을 영위한다.  반면 어떤 환자는 먹을 자유뿐 아니라 여행할 자유, 심지어 움직일 자유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환자의 자유도는 질병의 심각도와 합병증에 달렸다. 처음에는 먹을 자유만 조금 빼앗겼던 당뇨 환자는 합병증이 발생하면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당뇨합병증으로 당뇨발이 발생하면 움직일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며, 말기 신부전으로 진행하게 되면 일주일에 3번 혈액투석을 받아야 한다. 장기간 여행할 자유도 잃게 된다. 


당뇨 환자에게 먹고 싶은 대로 먹고사는 자유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혈당이 올라가는 근본적인 이유가 음식을 잘 못 먹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잘못된 식사 습관을 지속한다면 그 끝은 자유의 박탈이다. 자유는 자유를 빼앗겼을 때에만 그 소중함을 인정받는다. 뒤늦은 후회를 해도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먹고 싶은 대로 살다가 가겠다는 말 하지 마세요. 


혼자서 자신의 몸을 감당할 수 있다면, 합병증이 발생해도 타인의 도움 없이 살아갈 자신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진정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면, 마음대로 먹고 싶은 대로 살아도 된다. 



※ 환자는 1명의 특정인이 아닙니다. 진료실에서 흔히 만나는 여러 명의 환자를 떠올리며 생각해 낸 가상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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