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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키드니 Jan 05. 2024

라면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추억할 뿐이다

선생님, 라면 어떻게 드세요?
건면이 더 건강할까요?  

기억은 욕망을 부른다. 

자주 라면 먹는 것 때문에 식단 조절이 어렵다는 환자가 물었다. 순간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잠시 머뭇거렸다. 라면을 언제 먹었더라. 1년 중 라면 먹는 날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최근에 라면을 먹은 기억이 없었다. 기억은 욕망을 부른다. 아는 맛이 무섭고 아는 맛이라 더 당기고 먹고 싶은 법. 라면이 기억나지 않으니 욕망도 없다.


라면이 맛있기 때문에 라면을 멀리한다. 라면은 한번 맛보면 아니 스쳐만 가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대체 불가능한 맛을 가졌다. 냄새부터가 치명적이다. 분명 라면 먹을 생각이 없었던 한 밤 중. 남동생이 라면을 끓일 때마다 간절히 먹고 싶어지곤 했다. ' 딱 한 젓가락만 먹을게'라는 소리가 절로 났다. 


나는 라면을 기억하지 못한다. 라면을 추억한다.


혹자는 라면도 안 먹으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한다. 기억이 없으면 추억으로 살면 된다. 멀어진 기억은 추억이 되기도 한다. 라면을 습관적으로 먹지 않을 뿐 일부러 먹기도 한다. 가끔 특별한 날에는 일부러 라면을 사고 물을 올린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가장 마지막으로 라면을 먹은 순간이 떠올랐다. 석 달 전 친정 가족들과 캠핑을 갔을 때였다. 추억으로 남겨진 마지막 라면, 내가 기억하는 라면에는 그날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부스스한 얼굴을 마주하고 둘러앉은 식탁이었다. 아이는 빨간 라면 대신 면만 허여멀 건하게 끓여낸 맹숭한 라면을 먹었다. 남편은 라면 불는다며 주방에서 일하던 나를 재촉했다. 남동생은 봉지 라면보다 컵라면을 끓여 내는 게 더 맛있다며 굳이 따로 또 끓여냈다. 친정엄마는 마지막 남은 김치를 썰어내며 올해 김장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올케는 입맛 없어하는 조카에게 한 숟가락만 더 먹어라 하며 밥에 김을 싸 먹였다. 오랜만에 먹은 라면에 온 가족이 만족해하던 표정까지 기억이 난다. 그날의 라면도 역시 맛있었다. 나의 라면에는 감정과 느낌이 뒤범벅되어 있다. 그렇게 나는 라면을 기억하지 않고 추억한다. 


무언가를 끊어내고 싶다면 그것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멀리해야 한다. 

 


라면 자주 먹는 습관을 버리고 싶은 당신에게 
습관을 처방합니다.


나쁜 습관은 의지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다. 매일 간디 급의 강한 의지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라면을 끓이는 순간만큼 위험한 건 라면을 사는 순간이다. 라면 1 봉지 살 거 아니고 5개씩 번들로 사게 되니까. 라면을 사다 놓고 먹지 않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환경부터 손봐야 한다. 스스로 유혹하는 환경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습관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신호 - 열망 - 반응 - 보상이다. 라면 먹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신호) 배가 고픈데 라면이 보인다. 

(열망) 라면이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배도 부르고 맛있을 것 같다. 

(반응) 봉지를 뜯고 라면을 끓인다. 라면과 같은 초가공식품이 쉽게 습관화되는 이유가 조리 과정이 매우 단순하고 쉽기 때문이다. 

(보상) 배가 부르고 기분이 좋다. 


습관의 첫 번째는 신호로부터 시작된다. 라면이 보여서 라면을 먹은 것이고, 라면이 보였기 때문에 라면을 산 것이다. 가끔은 라면이 보이면 배가 고프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라면을 보는 순간 라면이 먹고 싶어 진다. 


그러므로 나쁜 습관을 없애려면 환경부터 손봐야 한다. 사지 않아야 먹지 않는다. '라면 쟁이지 않기. 특히 1+1 할인 코너 경계하기.' 그것이 내가 환자에게 제시한 첫 번째 습관 처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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