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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반찬을 먹지 않았다

by 닥터 키드니

나는 그 집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퇴직 후 하릴없이 집에만 있던 아빠는 어느 여름날 그 집을 덜컥 계약해 버렸다고 통보했다. 퇴직 무렵 즈음에 시골 내려가서 농사나 짓고 살겠다고 말하던 말을 끝내 지켰다. 말보다 행동으로 자신의 뜻을 보여주는 것이 아빠다웠다. 시골로 내려가겠다는 아빠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계약금을 넣었다는 그 집을 보러 갔을 때 먼 거리라 놀랐다. 다른 집들과 떨어진 외진 곳에 있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탁 트인 시골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디선가 장작 타는 냄새가 솔솔 나오길 바랐지만, 소똥 냄새만 가득했다. 100 미터 거리에 축사가 있다는 사실조차 나중에 알게 되었다.



‘괜찮네’라는 말은 했지만, 계약금을 넣었다길래 어쩔 수 없이 한 동의였다. 아빠는 빨리 달리면 2시간 안에 서울로 오갈 수 있는 거리라고 했지만 그건 차가 하나도 막히지 않다는 가정과 시속 100 km를 달려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야 가능했다. 서울 근교에도 시골스러운 곳이 많았지만, 굳이 먼 곳을 찾아 들어온 것은 돈 때문이었다. 적은 퇴직금으로 집을 알아보다 보니 서울과 먼 곳에 터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시골로 내려간 아빠는 그다음 해부터 감자, 고구마, 양파, 대봉 등 각종 농산물을 보내왔다. 그 농산물을 전해 받을 때마다 그 집이 떠올랐다. 시골이었지만 시골의 정을 느낄 수 없는 외딴집에서 아빠는 하루 종일 누구와 말을 하고 지낼까 싶었다. 그러므로 아빠가 보낸 농작물을 아빠의 고독의 산물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차를 이용해 먼길을 달려오던 아빠는 세 번째 해부터는 택배로 물건을 보내왔다. 택배로 보내는 통에 때로는 상태가 좋지 않을 것들도 있었다. 작은 텃밭을 가꾸는 이는 오직 아빠 혼자였으므로 하루에 수확할 작물은 많지 않았다. 한 번은 토마토를 보낸 적이 있었다. 택배 안에서 미리 따놓은 토마토가 물러 터져 버려 종이 박스가 젖어버렸다. 힘들게 키웠을 그 농작물은 그대로 쓰레기봉투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럴 때는 왠지 아빠의 고독을 모른 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가끔은 아빠의 고독을 그만 보내주었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었다.



가끔씩 그곳을 방문한다. 손녀들의 사진을 보는 낙으로 하루를 살아간다는 아빠를 위해서다. 아이에게는 아파트와 빌딩 숲 대신 시골 정취를 알려주고 싶기도 하다. 아이를 데리고 그곳에 내려간다는 소식을 전할 때면 아빠의 목소리가 한껏 들떠 있음을 느낀다.



토요일에도 출근하는 병원 근무자는 토요일 오후에나 그곳으로 출발할 수 있다. 도착하니 이미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꼬박 4시간 동안 한눈팔지 않고 차를 몰았음에도 한참 막힐 시간을 피할 수 없었다. 오전에 출발한 남동생네는 6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아빠는 혼자서 성인 5명과 2명의 손녀를 위한 식사를 차려냈다. 메뉴는 늘 한결같다. 저녁으로 그 지역에서 유명 한 한우였다. 별 다른 반찬 없이도 맛있을 음식이었지만, 아빠는 반찬이 가득한 한 상을 차려냈다. 물김치, 배추김치, 오이김치, 갓김치. 김치만 네 종류였다. 노각 오이지, 창난 젓갈까지 추가했다. 아빠는 평상시에는 이 중 한 두 개만 먹을 테지만 오늘은 있는 반찬 없는 반찬 다 꺼낸 것임이 분명했다. 예전에 친할머니도 그랬다. 온갖 김치를 다 꺼내놔야 속이 풀리는 할머니의 상차림에는 온갖 반찬이 다 뒹굴었다. 엄마는 그런 상차림을 질려했다. 아빠가 살고 있는 시골집 냉장고 속 반찬 종류를 그대로 보는 듯한 상차림이었다. 옹색한 아빠의 살림에 반기라도 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빠가 준비한 반찬에 도통 손이 가지 않았다. 김치를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반찬 통째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이 반찬들 모두 아빠가 이미 한 번씩은 다 먹었을 것 같았다. 바로 만들었을 것 같은 쌈장만 먹고 말았다.



식사를 마치고 먹다 남은 반찬들을 정리하며 나는 계속 머뭇거렸다. '아빠, 반찬은 덜어요.' 이 말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건 아닐까 염려했다. 결국엔 하고 싶었던 말을 뱉어버렸다. 아빠는 아마 모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덜어먹어야 하는 이유는 헬리코박터 균의 전염 위험성 때문이다. 헬리코박터 균은 위암의 주요 위험 인자 중 하나다. 한국인 10명 중 적어도 4명은 헬리코박터 균을 보유하는 것으로 보고 한다. 서양의 경우 평균 3명만이 헬리코박터 균을 보유하는 것에 비해 많은 편이다. 한국이 헬리코박터균의 보유율이 높은 이유로 찌개 국 등 반찬 함께 먹기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아빠의 식탁 차림은 어렸을 적 늘 보던 상차림과 비슷하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반찬통에 담긴 반찬을 먹고 다시 그 반찬을 냉장고에 넣었다. 반찬 통에 있는 반찬 그대로 먹기는 번거로운 일을 두 번 하지 않고 설거지 거리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또한 잔반 처리를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런 식사가 자연스러웠고 한 번도 반찬을 따로 접시에 담아 먹어본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내 살림살이가 생기자 달라졌다. 반찬을 예쁘게 담고 싶었다. 깨끗하게 먹고 싶었다. 반찬 나눠 먹기가 헬리코박터균의 감염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확고해졌다. ‘반찬 덜어 먹기’는 깔끔 떠는 일이 아니었다. 할머니,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몰랐으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차림상을 그대로 따라 했을 것이다.



용기를 내어 아빠에게 반찬을 덜어먹자고 말했지만, 아빠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먹다 남은 맥주가 아깝다며 한 곳에 모으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다음번에 만났을 때에도 똑같은 상이겠구나.' 한번 자리 잡은 습관은 좀처럼 바꾸기 힘들다.



앞으로는 내가 반찬을 만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나눔 접시를 준비해 찬장을 채우고, 식사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내가 직접 상차림을 도와야겠다. 함께 식사를 하며 정은 나누되 헬리코박터 균은 나누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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