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 키드니 Aug 04. 2024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나에게 진료를 받는 80세 중반의 두 할머니가 있다. 


한쪽 할머니는 침대에서 마주한다. 우리는 이틀에 한 번씩은 만난다. 혈액투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두 다리로 혼자 걸어오지 않는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에 실려온다.  


침대에서 만나는 할머니의 진료 기록은 복잡하다. 80 Kg이 훌쩍 넘는 거구다. 수십 년간 당뇨로 인슐린 치료를 받고 있다. 20년 전에는 유방암으로 수술을 했고 심장혈관에는 스텐트 시술도 받았다. 10년 전에는 무릎 관절 수술도 했다. 무릎에 염증이 생기거나 심장 혈관에 문제가 생겨 입원이 잦다. 어깨에 메고 오는 가방에는 약이 한가득이다. 


어렸을 적부터 야채를 싫어했다. 달고 짠 음식을 즐겼고, 고기를 먹어도 양념 고기만 먹었다. 운동은커녕 움직이는 것도 필요할 때에만 겨우 하는 정도였다. 그런 습관은 고스란히 남아 지금의 할머니가 되었다. 나쁜 습관 때문에 평생 당뇨병에 시달렸고, 끝내 합병증으로 혈액투석을 받았음에도 자신을 괴롭힌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여전히 과식을 하고, 입이 즐거워하는 음식들만 탐닉한다. 


할머니의 생활 반경은 집과 혈액 투석 병원뿐이다. 겨우 움직이던 몸이었는데 이제는 걷고 싶어도 걷지 못한다. 조금만 걸어도 무릎이 말썽이고, 숨이 찬다. 자유가 없다. 해야만 하는 일만 할 뿐이다. 


우리의 진료는 일방적이다. 지난 주말엔 혈당이 300 가까이 올라갔다. 자녀들이 집에 와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주말마다 자책과 후회의 연속이다. 나는 식단 조절을 하고 조금만 움직여 보라는 조언을 한다. 침대에서 만나는 할머니는 언제 응급 상황이 벌어져도 이상할 것 없는 상태다. 나는 인슐린 용량을 올리고 보호자에게 전화를 한다. 매일매일 아슬아슬하다. 


또 다른 할머니는 진료실에서 만난다. 우리는 2달에 한 번씩 마주한다. 늘 단정한 차림에 두 발로 걸어 들어온다. 손에는 직접 뜨개질한 손가방이 들려있다. 


할머니의 진료 기록은 심플하다. 표준 체중을 유지하고 있는 할머니는 혈압만 조금 높을  뿐 다른 문제는 없다. 우리의 진료는 상담에 가깝다. 다음 주에는 미국에 사는 딸네 집에 지내다 올 예정이라 조금 일찍 내원했을 뿐이었다.  

 

할머니에게 건강 비결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전쟁을 두 번이나 경험한 세대로 먹을 것이 귀했다. 나물이나 우거지, 청국장 같은 음식을 즐겼다. 웬만한 거리는 두 발로 걸어 다녔다.  지금도 비슷한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할머니의 생활 반경은 광범위하다. 매일 마트를 오가며 일년에 두번은 미국까지 오가니 나보다 더 넓고 자유롭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 과거의 건강한 생활 습관이 지금의 할머니를 만들었다. 


같은 나이라도 이렇게 삶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동갑내기 두 할머니의 말년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절제하며 살면 불행할 거라 생각하고 자유롭게 살면 행복할 거라 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내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과거에 살아왔던 결과를 현재에 고스란히 보여준다. 자유와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면 자유롭지 못했고, 반대로 절제하며 살면 오히려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된다.  


미래의 건강을 예측할 수 있는 눈 

현재를 살고 있는 환자를 통해 그들의 과거를 본다. 현재 습관을 보면 미래가 보인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건강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미래의 건강을 결정짓는 건 지금 내가 만든 습관의 결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